-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남산리에서 부러진 바늘을 위로하며 부르던 비기능요. 바늘은 실·가위·인두·자·골무·다리미 등을 일컫는 규방칠우(閨房七友)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관습은 의·식·주 중 의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으며, 바느질은 부덕(婦德)의 척도로 여겨 옷을 지을 때 바늘 한 땀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바늘 노래」는 바느질을 하다가 부러진 바늘의 아픔을 노래한...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육지 이외에 짠물이 괴어 하나로 이어진 넓고 큰 부분. 창원시는 마산, 진해 지역과 통합되면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지역 중 한 곳이 되었다. 2011년 기준 창원시의 해안선은 321.14㎞이다. 이는 제주도의 해안선보다도 약 17㎞ 더 길다. 창원의 해안선 중 마산 합포구의 해안선이 173.76㎞로 가장 길고, 진해구가 127...
-
석교마을은 마산항으로 드나드는 각종 크고 작은 선박들을 볼 수 있는 마산항의 아가리에 해당한다. 현재 창원공단에서 생산되는 각종 상품의 대부분도 이곳을 거쳐 전 세계로 수출되는 등 물류 이동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바닷길이 일제강점기에는 황포돛배의 뱃길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석교마을 사람들은 황포돛배를 ‘장배’라고도 불렀는데...
-
정차종 할아버지는 올해로 바지게를 만든 지 20여 년이 넘는다. 한 해에 20여 개가 넘는 바지게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만든 바지게의 수만 해도 500여 개가 넘을 것이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아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방문하면서, 손님이 들고 온 바지게를 보고 바지게 만들기에 흠뻑 빠지게 되었단다. 정차종 할아버지의 삶은 그때부터...
-
경상남도 창원시 귀산동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류. 껍데기 길이 4㎝, 높이 3㎝ 정도이다. 껍데기는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 모양이며 딱딱하다. 표면에는 방사상 무늬가 있다. 표면은 거칠고, 서식지에 따라 크기·색깔·무늬·형태 등이 조금씩 다르다. 촉수에는 돌기가 없고, 3개의 이빨이 있다. 창원 지역에서는 바지락을 주로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국...
-
경상남도 창원시 귀산동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류. 껍데기 길이 4㎝, 높이 3㎝ 정도이다. 껍데기는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 모양이며 딱딱하다. 표면에는 방사상 무늬가 있다. 표면은 거칠고, 서식지에 따라 크기·색깔·무늬·형태 등이 조금씩 다르다. 촉수에는 돌기가 없고, 3개의 이빨이 있다. 창원 지역에서는 바지락을 주로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국...
-
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박홍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처음 이름은 박경립(朴敬立)이다. 박홍미는 15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611년(광해군 3) 병조좌랑, 1614년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 후 정언·지평·수찬·교리·헌납 등을...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곧고 맑은 품성으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남편 박경천이 해괴한 병에 걸려 앓게 되자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자신이 그 병을 앓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남편은 효력도 없이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배씨는 그날 밤 남편 박경천의 시신을 안고 따라 죽었다. 박경천 처 분...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대근은 경상남도 창원시 중동 616번지에서 태어났다. 1931년 만주 침공과 1937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우는 상황 속에서 일본은 우리 민족의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했다. 이에 박대근은 1942년 7월경 당시 경상남도 창원면 동정리 창원신사(昌原神社) 뒤에 있던 창원보통학교 출신 급우들과 청년독립...
-
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박명훈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813년(순조 13) 6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에 교체되었다. 1814년에 창원부사로 재임 중 박명훈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박후명훈영세불망비(大都護府使朴侯明勳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 부임하여 자리도 굳...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박무열은 현 창원시 동정동 정계(井界)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1등공신에 녹훈되고, 향직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수문장에 이르렀다....
-
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문중 처 김씨는 창원 지역 사람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로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문중이 병에 걸려 죽자 3일 만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박문중 처 김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무신. 박문흥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문박(文博). 아버지는 박선길(朴善吉)이고, 어머니는 충주석씨(忠州石氏)로 석자헌(石自巘)의 딸이다. 박문흥은 현 창원시 북면 무동리 사람으로, 1722년(경종 2) 무과에 급제하여 1723년(경종 3) 충순위 부사과(忠順衛副司果)가 되었고, 1754년(영조 30)에는 월곶첨사가 되었다. 묘소는...
-
통일신라시대에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달달박박(怛怛朴朴)의 아버지는 수범(修梵)이고, 어머니는 범마(梵摩)이다. 달달박박은 노힐부득(努肸夫得)과 함께 출가하여 법적방(法積房)에 머물렀으며, 그 뒤 치산촌(雉山村) 법종곡(法宗谷) 승도촌(僧道村) 유리광사(瑠璃光寺)에서 수행하였다. 어느 날 밤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에서부터 오더니 금색의 팔이 내려와 이마...
-
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상규의 호는 우정(愚庭)으로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1931년 만주 침공과 1937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우는 상황 속에서 일본은 우리 민족의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했다. 박상규는 당시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에 있던 창원보통학교 출신의 급우들과 청년독립회를 조직하여 일제가 강...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지주이자 자선가. 박수석은 창원군 북면에 살았는데, 3대째 내려오는 대지주였다. 가뭄과 홍수 등으로 흉년이 들자 소작료를 감면하는 제도를 정하여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였다. 1938년 12월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무곡리 갈곡고개를 넘어 신촌리로 향하는 지방도 1045호선 변에 소작인들이 마음을 모아 박수석의 덕행을 기리는 사인박수석송덕비(士人朴...
-
조선 말기 창원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 박수진은 어진 인품으로 창원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쳤다. 1909년(순종 3) 윤2월 8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정동 주민들에 의해 박수진의 공덕을 기리는 전감찰박수진혜민불망비(前監察朴叟鎭惠民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날 우리 동정동이...
-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시명은 1400년대 후반 창원도호부 사화(沙火)[현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살았는데, 당시 참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받들어 효를 다하였다. 27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출사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어 출사의 뜻을 접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93세에 죽자 매우 애통...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선비. 박신윤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경(德卿), 호는 우곡(愚谷).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박홍정[1541~1619]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박이경(朴而慶)이다.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박신윤은 처음에는 낙빈(洛濱) 이시장(李是樟)[1628~1683]에게 배웠고, 나중에는 허재(虛齋) 신몽삼(辛夢參)[1648~1711...
-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신윤의 위패를 봉안한 묘. 묘는 우곡 박신윤을 배향하는 운암서원 옆에 있다. 운암서원은 원래 운암사(雲巖祠)로 국가에서 향을 내려 제사를 지내게 하는 향현소(香顯所)였다가 1844년(헌종 10)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2004년에 다시 세웠다. 이 과정에서 박신윤의 위패가 오래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신축년...
-
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익천 처 배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 출신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라고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익천이 죽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박익천 처 배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정견은 조선 성종·연산군조에 창원도호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산군 때 상기(喪期)을 짧게 제한하는 법이 엄하였음에도 연이은 부모상에 3년간 최복(衰服)을 입어 애도했으며, 상을 마친 후에도 초하루와 보름에 전(奠)을 올리는 예를 그만두지 않았다 한다. 1510년(중종 5) 경상도관찰사 강혼(姜渾)의 장계에 의해 정려가 내려졌다....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박진종(朴振宗)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양저(陽著), 호는 오로정(吾老亭). 아버지는 녹도만호를 지낸 박용남(朴龍南)이다. 박진종은 임진왜란 때 동생 박흥종(朴興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훈련원첨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뒤에 장복산 아래 남지(南枝)에 정착하였는데, 남지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웅남동에 속한 남지동(南支洞)...
-
경상남도 창원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노동운동가. 박창수는 1990년 7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에 당선되어 활동하였으며,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거제의 대우조선 전면 파업(1991년 2월 8일)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기 위하여 1991년 2월 9일~1991년 2월 10일에 열린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동조합회의의 간부수련회에 참석한...
-
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박홍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처음 이름은 박경립(朴敬立)이다. 박홍미는 15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611년(광해군 3) 병조좌랑, 1614년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 후 정언·지평·수찬·교리·헌납 등을...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재숙(再淑), 호는 의와(義窩). 증조 할아버지는 박신윤[1661~1698]이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낸 박충준(朴忠俊)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승지를 지낸 윤경수(尹敬守)의 딸이다. 박홍정(朴弘貞)[1541~1619]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
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평산리와 죽전리 사이를 흐르는 반계천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보인다. 반계동은 1917년 간행된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 처음 등장한다. 현재 반계동의 자연마을인 죽전과 평산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처음 등장한다. 평산(坪山)의 경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평산리(...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서 발굴되어 창원 대학교 내에 이전 복원되어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기념물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1996년 창원 대학교 박물관...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 옛 부곡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던 나무. 반계동 부곡 당목은 130여 년 전 부곡마을이 자연마을의 형태를 유지하던 시기에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공동으로 지내던 당산나무이다. 옛 창원시 반계동은 평산마을·죽전마을·부곡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재 이 반계동은 모두 철거되어 군부대 또...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삼국시대 수전지. 반계동 수전 유구는 창원 반계동 유적 내에 포함된 삼국시대 계단식 논이다. 창원 반계동 유적은 1996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유적으로, 청동기시대 고인돌, 삼국시대의 수혈유구, 고상 건물지, 우물, 수로 등의 생활 유적과 분묘군, 생산 유적으로서 수전지 등이 조사되었으며, 600여 점의 유물이 출...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청동기에서 가야시대의 유물산포지. 창원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팔룡산(327.7m) 북쪽 비탈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창원대로에서 마산시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1994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반계동 주거지군, 민무늬토기 산포지로 명명하였다. 2002년 경남발전연구원에서 실시한 중앙초등학교 터 발굴 조사에서 삼한시대 원형...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삼한시대 유물산포지. 팔룡동 웰빙플라자 뒤쪽 야산에서 시작하여 39사단 철책선을 따라 운암서원까지 이어지는 지역으로 사화 조개더미도 포함한다. 즉 조개더미 위쪽 땅깎기가 이루어진 뒤쪽 능선 대부분의 지역에 해당한다. 예전에 민가가 있었으나 철거되었고, 지금은 주로 과수원과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2000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고분군. 반계동 죽전 고분군은 반룡산의 북동쪽에 있는 중골 늪지 동쪽으로 평탄하게 형성된 대지에 위치한다. 1994년과 2005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으며, 1995년 반계동 39-1번지 북쪽 구릉 비탈면의 경작지에서 채집된 압형토기를 확인하였다. 토기 조각들이 주로 채집된 논밭 등 경작...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삼한시대 생활 유적. 반계동 중앙초등학교 부지 유적은 2001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시굴 조사에서 주거지가 확인되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삼한시대(三韓時代) 주거지 4동, 구상유구(溝狀遺構) 3기, 근대 묘 1기가 확인되어 삼한시대 주거지가 분포하는 취락 유적임이 밝혀졌...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삼한에서 가야시대 조개더미. 창원시 반계동 산49-1번지 일대의 마을 뒤 능선인 일명 조개등에 있다. 1994년 초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산49-1번지 일대의 민묘 이장을 위해 남겨 둔 지점의 단애 면에서 중심부는 파괴되고 일부분만 남겨진 조개더미 일부를 확인하였다. 지표 조사 후 조개껍데기와 토기 조각들을...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과 마산회원구 봉암동·구암동에 걸쳐 있는 산. 국토 정보 지리원에서 1961년 4월 22일 마산시 회원구 봉암동의 팔룡산[해발 327.7m]으로 고시하였다. 팔룡산(八龍山)의 앞선 이름은 반룡산(盤龍山)이다. 반룡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처음 기록이 보인다. 『창원 도호부 권역 지명 연구』[...
-
경상남도 창원시 반림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스스로 공부하고 꿈을 만들어 가는 학생, 연구 분위기 조성과 건전한 교직상의 정립으로 신뢰받는 교사, 쾌적한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한 열린 지원 행정 등을 통하여 꿈과 희망을 가꾸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자율, 성실, 창의’이다. 1992년 5월 27일 반림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반림동은 한자말 명명으로 생각된다. 반림동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반송동(盤松洞)에서 ‘반(盤)’을 취해 그와 같이 명명되었을 것이다. 반송동은 마을 안에 반송나무[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반림동은 옛 반송리(盤松里) 지역으로, 반송리(盤松里)는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조선 후기 사회는 봉건적 지배 체제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봉건 사회의 모순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졌다. 봉건 사회의 중요한 생산수단인 토지가 상품화됨에 따라 토지의 소유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밀집되었고, 따라서 지주와 소작농 간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이에 조세 납부를 거부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빈번...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산에 있던 세곡 보관 창고. 조창(漕倉)은 조운창(漕運倉)의 약칭으로, 조선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세곡 보관 창고이다. 창원도호부 관할하의 반산창(盤山倉)은 좌조창(左漕倉)이라고도 부르며, 반룡산(盤龍山) 밑의 해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반송동과 퇴촌동 일원에 있는 공원. 1983년 7월 공원지정고시(건설부 제220호)가 있었으며, 1990년 12월에 조성계획 결정고시(건설부 제950호)가 있었다. 2005년 6월에 조성계획 변경고시(창원시 고시 제2005-29호)가 있었으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 신축공사가 있었다. 2006년 10월에는 500㎡ 규모의 어린이놀이터가 설치되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에 있는 천주교 마산 교구 소속 천주 교회. 지역 발전과 인구 증가로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원활한 신앙생활과 지역 선교를 위하여 1981년 용지 성당[현 가음동 성당]에서 분리하여 설립하였다. 1981년 1월 26일 용지 성당에서 분리된 후 9월 26일 본당 헌당식을 하고 초대 주임으로 김용호 신부가 부임하였다. 1982년 성모 유치원을 개원...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에 있는 상설 시장. 반송 시장은 1988년에 개설된 상가 건물형 상설 시장이다. 2005년 6월 2일 시장 인정을 받았으며, 8월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장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상인들은 10여 곳의 점포로 구성된 일명 ‘국수 골목’의 천장을 돈을 모아 개선하였다. 또한 사업비 5000만 원을 들여 화재 위험 등이 있는 비...
-
경상남도 창원시 반림동에 있는 공립 여자중학교. 훌륭한 인성과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갖춘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1984년 1월 31일 반송여자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84년 3월 5일 개교와 함께 제1회 신입생 243명의 입학식을 하였다. 2010년 9월 1일에는 제11대 김광례 교장이 부임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반림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쾌적한 교육환경 조성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학교 경영, 독서 활성화를 통한 창의성 교육, 수준별 학습을 통한 기초 학력 신장 등을 통하여 미래사회를 주도할 창의적 사고와 올바른 인성을 갖춘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84년 1월 30일 반송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84년 3월 1일 초대 노태연 교장이 부...
-
경상남도 창원시 반림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질서를 잘 지키는 예절 바른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력이 높은 창의적인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활기찬 어린이, 배움을 이웃 사랑으로 실천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77년 6월 4일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80년 3월 1일 10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83년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
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마을에 반송나무(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소나무)가 많이 있으므로 반송리라고 이름 붙였다. 본래 창원부 지역으로 1910년 마산부 상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남면의 두대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반송리라 하여 창원군에 편입하였다. 1973년 7월 1일 마산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치고 동부출장소 관할이...
-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에서 명곡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창원시청 앞 창원광장에서 명곡동 명곡광장에 이르는 도로로서 주택가를 통과하는 대표적인 도로이다. 창원의 대표적 간선도로인 창원대로와 나란한 북서-남동향이다. 도로의 양쪽으로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국도 25호선 구간과 겹친다. 반송동을 경유한다고 반송로라고 불리는데, 구간...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에 있는 천주교 마산 교구 소속 천주 교회. 지역 발전과 인구 증가로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원활한 신앙생활과 지역 선교를 위하여 1981년 용지 성당[현 가음동 성당]에서 분리하여 설립하였다. 1981년 1월 26일 용지 성당에서 분리된 후 9월 26일 본당 헌당식을 하고 초대 주임으로 김용호 신부가 부임하였다. 1982년 성모 유치원을 개원...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 있는 자연마을. 월산(月山)의 ‘월(月)’은 북을 뜻하는 ‘’을 뜻하는 말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이다. ‘산(山)’은 뫼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일 것으로 생각된다. 월산마을은 ‘북쪽에 있는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북쪽에 있는 산은 백월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는 반야동리(班也洞里)라는...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 반야암은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김춘자를 위하여 김춘자의 9형제가 수양처로 건립한 곳이다. 처음에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등록되었지만, 3년 뒤 대한불교 법화종에 재등록되었다. 김춘자는 1973년 마산 원각사에서 구족계를 받아 도해(度海)라는 법명을 받았지만, 지금은 환속하여 교임(敎任)으로 활동하고 있...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노연리의 낙동강 가에 있던 나루터. 반월나루는 동읍 노연리 옥정마을과 밀양시 초동면 반월마을·새개마을을 연결해 주던 나루터이다. 옥정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1950년대까지는 나룻배가 운행되었으나 현재 반월나루였던 노연리 옆의 본포리와 밀양시 초동면 학포리 사이를 이어주는 본포교가 준공되고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행정구역 개편 전에 반송동(盤松洞)에서 ‘반(盤)’자와 지귀동(知歸洞)에서 ‘지(知)’자를 따서 반지동이 되었다. 반지동은 본래 반송리에 속하였는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반송리라는 이름이 처음 나온다. 당시 남면(南面) 도상일운(道上一運)에 속해 있었다. 지이포는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처음으로...
-
경상남도 창원시 귀산동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류. 껍데기 길이 4㎝, 높이 3㎝ 정도이다. 껍데기는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 모양이며 딱딱하다. 표면에는 방사상 무늬가 있다. 표면은 거칠고, 서식지에 따라 크기·색깔·무늬·형태 등이 조금씩 다르다. 촉수에는 돌기가 없고, 3개의 이빨이 있다. 창원 지역에서는 바지락을 주로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국...
-
경상남도 창원시 귀산동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류. 껍데기 길이 4㎝, 높이 3㎝ 정도이다. 껍데기는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 모양이며 딱딱하다. 표면에는 방사상 무늬가 있다. 표면은 거칠고, 서식지에 따라 크기·색깔·무늬·형태 등이 조금씩 다르다. 촉수에는 돌기가 없고, 3개의 이빨이 있다. 창원 지역에서는 바지락을 주로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국...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대용식으로 이용되는 특산물. 감서·단고구마라고도 하는 고구마는 한국 전역에서 널리 재배되는 식물로서 줄기는 길게 땅바닥을 따라 뻗으면서 뿌리를 내린다. 잎은 어긋나고 잎의 모양은 심장 모양으로 얕게 갈라지며, 잎과 줄기를 자르면 즙이 나온다. 줄기 밑쪽의 잎자루 기부에서 뿌리를 내는데, 그 일부가 땅 속에서 커져 덩이뿌리인 고구마가 된다. 이 뿌리...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신방리 지역에서 방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비기능요. 방구는 방귀의 방언이다. 「방구 타령」은 소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방귀 소리를 타령으로 읊은 노래이다. 「방구 노래」라고도 한다. 1994년 창원군에서 간행한 『창원군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창원군 동면 신방리 신방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문필옥·김기미 등으로부터 채록...
-
경상남도 창원시 두대동에 있는 민간신앙의 대상물. 두대동 알바위는 지역 주민(옛 두대동 원주민)들에게 ‘방구티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기자석이다. 바위의 표면에 알[卵] 모양의 구멍들이 패어 있는데, 이 구멍들은 작은 돌로 문질러서 둥글고 오목하게 패인 것으로, 일명 성혈(性穴)이라고도 한다. 성혈은 고인돌의 덮개돌에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바위...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음성이나 영상을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해 일반 대중이 청취 및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방송은 지상파 방송[공영 방송·민영 방송·특수 방송·지상파 DMB], 종합 유선 방송, 위성 방송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경상남도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은 KBS 진주 방송국·KBS 창원방송 총국·MBC 경남[경남 문화 방송] 이상 공영...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화천리 시화마을에서 밭매기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밭매기 노래」는 부인들이 밭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이며, 내용은 시집살이 사는 여인의 고된 일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밭일을 열심히 하고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더니 어제 먹은 식은밥을 사발 눈에 붙여 주는 등 시집살이가 고단하니 집을 떠나 승려가 되려고 한다. 「밭매기...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동전리 서쪽에 있는 고개. 고개라고 함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배낭골은 동전리에서 서쪽에 있는 무릉산(568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무동리까지 완만하긴 하나 오르막길만 있다. 그러나 무동리에서 동전리로 향하게 되면 계속해서 내리막길로만 내려가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무동리의 북쪽에 있는 무곡리 사람들은 무릉산 동쪽 기슭을...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장실은 1942년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의 신사 뒤에서 창원보통학교 출신인 박상규·박대근·백정기 등과 우리 민족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단체인 청년독립회를 조직하였다. 이때는 중일전쟁이 끝나고 이어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전세가 꺾이고 있는 상황이라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
해방 이후 활동한 창원 출신의 민족운동가. 배정세의 아버지는 배홍기이고, 형은 의열단원이었던 배중세이다. 배정세는 상남면 건국준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일본 해군경비대 군인들에 의해 바다에 던져져 억울하게 죽었다. 미군 관여 하의 일본 해군군법회의에서 이 사건을 저지른 일본 군인들의 재판이 열렸는데, 10여 명의 일본인들이 죄질에 따라 형이 언도되었다. 10년형을 언도...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중세는 1895년(고종 32) 12월 18일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동에서 아버지 배기홍(裵基洪)과 반남박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1910년에 김해김씨 김달근(金達根)의 딸과 결혼했다. 배중세는 1919년 3·1운동 당시인 4월 3일 진전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경찰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
고려 말 조선 초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공(伯恭), 호는 어촌(漁村)·수선(修仙). 할아버지는 공소(孔紹)이고, 아들은 공달(孔達)이다. 공부는 1376년(우왕 2) 과거에 급제하여 전의부령(典儀副令)과 예조총랑(禮曹摠郞)을 거쳐 집현전태학사가 되었다. 그 무렵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조선 왕조에 참여하여 문서응봉사(文...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과 대산면에 걸쳐 있는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나는 황새과에 속하는 새. 예전에는 텃새였으나 현재는 한반도 일정 지역인 창원시 주남저수지에 한하여 매년 소수의 개체가 도래한다. 몸길이는 112㎝이고, 몸무게는 3.1~3.5㎏ 정도이다. 날개는 검은색을 띠며 머리와 온몸은 흰색이고, 눈 가장자리와 턱밑은 붉은색의 피부가 나출되어 있다. 부리와 날개깃은 검...
-
외감마을의 정월 대보름 풍속 중에는 몇백 년 이상을 이어져 온 줄다리기 행사가 있다. 마을의 당목(당산나무)에 약소하게 동제를 지내고 난 뒤 마을회관 앞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풍물을 치고는 곧장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마을을 흐르는 신천천을 중심으로 줄을 당기는데 윗마을(큰깍단)이 이기면 그 해 농사가 흉년이 들기 때문에 반드시 아랫마을(작은깍단)이 승리해...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 정기헌의 호는 백당(白堂)이며, 1886년 현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면 봉림리 62번지에서 정규엽(鄭珪燁)과 이근수(李根秀)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배일사상이 철저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일제에 협력이 되는 일이라면 아예 손대지 않았다. 아울러 일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개인이나 단체하고는...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신촌리에 세워진 대승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풍수상 천마산은 말의 형상을 나타낸다. 1934년에 비구 춘해(春海)가 말의 엉덩이에 해당하는 곳에 백룡암을 건립하였다. 1950년대에 대웅전·산신각·요사채를 건립하고, 1985년부터 비구 정파(속명 이을용)가 춘해를 도와 절을 관리하였다. 1996년 춘해가 입적하자 현재까지 정파 혼자 포교 활동을 하고...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신촌리에 세워진 대승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풍수상 천마산은 말의 형상을 나타낸다. 1934년에 비구 춘해(春海)가 말의 엉덩이에 해당하는 곳에 백룡암을 건립하였다. 1950년대에 대웅전·산신각·요사채를 건립하고, 1985년부터 비구 정파(속명 이을용)가 춘해를 도와 절을 관리하였다. 1996년 춘해가 입적하자 현재까지 정파 혼자 포교 활동을 하고...
-
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백선남은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636년(인조 14) 2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11월 인조를 구하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쌍령(雙嶺)에서 진을 치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637년 10월 백선남이 창원부사로 있으면서 청렴결백하게 공무를 수행한 것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백후선남청정비(大都護府...
-
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기생이자 자선가. 백영월의 양아버지는 하유언이며 양오빠는 하성복이다. 후사가 없어 하씨 집안의 하소두를 양자로 삼아, 현재 하찬석으로 대가 이어지고 있다. 백영월은 3~4세 때 당시의 창원군 북동마을의 유지였던 하유언의 집 대문 앞에 버려졌다. 이에 하유언이 양녀로 받아들이고는 수소문하여 백영월의 본 수원백씨(水原白氏)를 찾아주었다. 1...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강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암자. 백운암은 1980년대에 문복순이 봉강리 뒷산 기슭에 건립하였다. 암자는 마을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립 당시부터 ‘백운’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졌다. 2005년 문복순이 사망하고 현재는 이명암(문복순의 남편)이 거주하고 있지만 거의 폐암이 된 상태이다. 이명암이 조석(朝...
-
통일신라시대 때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 세워진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백운암은 통일신라시대의 고찰(古刹)이지만 근대까지 장기간 폐사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60년대 초반 월백리 마을 사람들이 중건을 했고, 처음에는 대한불교 법화종에서 관리를 하였다. 이 후 1980년대 초반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변경되어진 암자이다. 백운암이 위치한 백월산...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와 동읍 봉곡리·석산리에 걸쳐 있는 산. 백월산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초엽(707~709년)에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이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성도한 유적지이다. 정상은 사자암(獅子巖)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그 연원이 실려 있다. 원래의 이름은 화산(花山)이었는데, 당나라 황제가 백월산이라...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서 백월산과 사자암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삼국유사(三國遺事)』 탑상편의 남백월 이성(二聖) 노힐부득 달달박박조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62년 국제신보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종하의 『창원군지』와 1966년 창원향토사연구회에서 출간한 『창원의 숨결』, 1993년 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남도지회에서 출간한 『경남민속자료집』에...
-
상산김씨가 석산마을로 들어오기까지 흐름을 살펴보면, 경상북도 상주시→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법물리→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김해시 대동면 수안리→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로 들어온다. 상산은 경북 상주의 고지명으로, 상산김씨의 시조 김수가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이 후 거주했던 곳이다. 그 후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사이 11세손인 김유화가 경상남도...
-
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계리에 세워진 대한 불교 일붕 선교종 소속 사찰. 백월암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전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천년 고찰이지만 관련 자료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다만 1300여 년 전인 통일신라시대에 백월산의 두 성인 중 한 사람인 달달박박(怛怛朴朴)이 아미타불 염불의 수행을 위해 거주했던 북사(北寺)라고 전한다. 조선 후기에 백월암의...
-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백윤(伯胤). 할아버지는 김수광(金秀光)이고, 아버지는 김석공(金錫貢)이다. 어머니는 태종(太宗)의 증손 제천군(堤川君) 이온(李蒕)의 딸로서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처는 세종의 손자 부림군(富林君) 이식(李湜)의 딸이다. 김맹손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산남리에 살았다. 음사(蔭仕)로 벼슬에 나아가 장사랑...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불리는 백중의 다른 이름. 창원 지역에서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을 ‘꼼배기날’로 부르는데, ‘꼼배기 먹는 날’이라도 한다. 이것은 농경 사회에서 일꾼을 대접하는 독특한 전래 풍습이다. 농가에서는 꼼배기날이 되면 머슴과 일꾼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다. 백중의 유래는 도가와 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원(中元)은 도가(道...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시인. 황선하는 1964년 2월 마산대학[현재 경남대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박두진 시인에 의해 시 「벽(壁)」(1955년), 「거울」(1958년), 「밤」(1962년) 등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 후 방창갑·박재두·고연규·김상력·이상개·배기현 등과 진해시 문학회를 조직하고 모임을 주도하였고 한국예술문...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유생이자 학자. 김기호의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문범(文範), 호는 소산(小山),소파(小坡)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성철(金聖哲)이고, 어머니는 김하윤(金夏潤)의 딸로서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김기호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파정동에 살면서 홀로 학문에 전념하다가 1865년(고종 2) 성재(性齋) 허...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서 뱃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금동마을 주민 김정환(45)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2년 의창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의 전통』에 수록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양교마을(예전의 경상남도 의창군 동면 금산리 양교마을)을 ‘뱃다리’라 부르는데, 이 말은 배다리, 즉 주교...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길쌈노동요. 「베틀 노래」는 지역을 막론하고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이를 「베 짜는 노래」라고도 한다. 길쌈이란 일의 특성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일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부르게 된 노래이다. 사설을 보면 베틀을 설치하고, 베를 짜는 행위 및 베틀 기구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길쌈노동요. 「베틀 노래」는 지역을 막론하고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이를 「베 짜는 노래」라고도 한다. 길쌈이란 일의 특성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일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부르게 된 노래이다. 사설을 보면 베틀을 설치하고, 베를 짜는 행위 및 베틀 기구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벽계정은 성재(省齋) 김학두(金鶴斗)를 향사하고 후손들을 강학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문중 재실로서 김해김씨 집성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담을 사이로 원모재·상현사 등 문중의 또 다른 재실과 한 영역을 이룬다. 김학두는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문집을 남긴 선비였는데, 그의 사후 둘째 아들인 김용도(金容道)가...
-
일제 강점기 창원 출신의 저술가이자 독립운동가. 변지섭은 1926년 지금의 마산시 진전면에서 태어나 1999년 6월 17일 타계하였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었던 변상태(卞相泰)이다. 큰형은 변성섭(卞晟燮), 작은 형은 변경섭(卞坰燮)이다. 창원시와 마산시 지역에서 저술과 서예가로 활동하였다. 1985년 진주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변지섭은...
-
삼한시기 창원 지역에 있던 정치 집단. 변한은 서력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3세기에 걸쳐 경상남도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정치 집단이었다.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변한에는 12개의 나라가 있었다. 현재 지명 비정이 가능한 곳이 다섯 나라 정도인데,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현 경상남도 밀양]·고자미동국(彌離彌凍國)[현 경상남도 고성]·구야국(狗耶國)[현 경상남도 김...
-
삼한시기 창원 지역에 있던 정치 집단. 변한은 서력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3세기에 걸쳐 경상남도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정치 집단이었다.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변한에는 12개의 나라가 있었다. 현재 지명 비정이 가능한 곳이 다섯 나라 정도인데,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현 경상남도 밀양]·고자미동국(彌離彌凍國)[현 경상남도 고성]·구야국(狗耶國)[현 경상남도 김...
-
경상남도 창원시의 지역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정된 목표에 따라 제공되는 포괄적인 보건 의료 활동. 1. 창원 보건소 창원 보건소는 1974년 12월 14일 마산시 보건소 남부 보건 지소로 개소하였다. 1976년 9월 1일 경상남도 창원 지구 출장소, 마산시 보건소 창원 지소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창원 보건소로 개칭되었다. 1981년 6월 3...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 여성들이 즐기는 놀이. 창원시 북면 마산리와 북가술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놀이로 부녀자들이 보름밥을 먹고 난 후 반드시 널뛰기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여름철 산과 들로 나무나 나물, 풀을 베러 갈 때 가시에 찔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보름날 널뛰기 풍습은 역시 보름날에 널리 행해지는 미나리심을 예방하는 풍습...
-
수박모종을 심고 난 후 순(싹)이 자라나는데 한 달이 되는 시점에 순 따기를 한다. 잎과 줄기 사이에 여러 개의 순이 나오는데, 마을의 농가에서는 가장 먼저 나온 순을 원순, 원순 가지에 나온 순을 아들순, 아들순 가지에 나온 순을 손자순이라 부르고 있다. 원순 한 줄기(줄기의 열여덟에서 스무 마디 정도)와 아들순을 반대 방향으로 하여 두 줄기를 남겨 놓고 모두 따야 한다. 그러한...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곡식을 탈곡할 때 나오는 가루로 만든 떡. 보리개떡은 일제강점기부터 주로 먹기 시작한 것으로 방앗간에서 곡식을 빻고 나온 가루를 주재료로 만든다. 가루는 대개 곡식을 두 번째 탈곡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을 이용한다. 곡식이 부족하던 봄이나 여름에는 보리개떡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하였다. 간혹 창원 지역에서는 개떡으로 개떡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화천리 시화마을에서 보리를 타작할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보리타작 노래」는 도리깨로 보리를 두드려서 수확하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보리타작은 빠른 속도로 되풀이되며, 힘이 많이 들고, 일하는 사람들의 행동 통일이 필수적인 노동이다. 여러 사람이 힘을 동시에 쏟기 위해서...
-
1959년 9월에 발생한 태풍 사라호로 마을 저수지가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몇 년 동안 복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이종현 옹은 영세민 취로사업과 복구공사를 병행하기로 작정하였다. 정부의 취로사업 목적은 영세민들의 연명(延命)에 있었는데, 이종현 옹은 연명과 저수지 공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다. 이 시절은 봄에는 들로,...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본포리에 설립된 교회. 1901년 10월 5일 김화일의 주도로 이종근의 집에서 이연필 등 9명이 모여 첫 예배를 보았다. 1907년 66㎡ 규모의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1928년 양정창 집사가 대지 621㎡를 기증하여 106㎡의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1952년 2월 경상남도 지역의 교회 분열 와중에서 일부 신자가 교회를 떠나 본포제일교회(고신)를 설...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본포리 낙동강 가에 있던 조선 후기 나루터. 본포나루는 1970년대까지 개인 소유의 나룻배 한 척으로 운행되었다고 한다. 운행 방식은 일정 지역에 정박해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있을 때마다 이동하여 운행하였고 운임은 쌀과 잡곡으로 치르거나, 지방이라는 표를 이용한 후결제 방식을 사용하였다. 2005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유...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포리의 ‘본(本)’은 중심을 뜻하는 ‘~’의 변이형태 ‘믿’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으로 생각된다. ‘본(本)’의 옛 훈이 근본이나 바탕을 뜻하는 ‘믿’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표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포리는 ‘중심이 되는 개 부근에 형성된 마을’을 뜻하는 것이 된다. 본포리는 『호구총수...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본포리 본포마을에서 음력 10월 15일에 지내는 마을 제사. 본포리 본포 동제는 본포마을에서 매년 음력 10월 14일 오후 11시경에 시작하는 마을 공동의 제사로서, 한 해 마을의 편안함과 농사의 풍년도 동시에 기원하는 제의이다. 본디 당산제를 지내기 전 마을 사람 가운데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이 대를 잡아 대가 들어가는...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본포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 가마 터. 본포리 옹기요지는 높이 100m인 본포마을 뒷산 사면 말단부 과수원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2005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본포리 옹기요지가 확인되었다. 현재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가마의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과수원 일대...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귀현동에 있는 볼보 그룹 코리아의 굴삭기 생산 공장. 볼보 그룹 코리아는 세계 최대의 건설 장비 제조업체 중 하나이다. 전 세계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건설 기계 전 기종을 공급하고 있으며, 현지 딜러를 통해서 부품과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제품으로는 볼보 스키드 스티어 로더, 소형 로더, 휠로더, 백호 로더, 소형 굴삭기, 휠 굴삭기,...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강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즐겁게 공부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착한 마음씨에 예절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9년 11월 1일 봉강심상소학교로 개교하였다. 1941년 3학급의 봉강국민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81년 민속과목원을 설치하고,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3년 학교 급식을 실시하...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봉강리의 ‘봉(鳳)’은 동쪽을 뜻하는 ‘~’의 변이형태 ‘새’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이다. ‘강(岡)’은 산을 뜻하는 ‘뫼’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일 것이다. ‘강(岡)’의 훈이 ‘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봉강리는 ‘동쪽에 있는 산 부근에 형성된 마을’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강리에 있는 가야시대 유물산포지. 유적은 봉강리 전촌마을 초입에 있는 구릉 하단부에서 정상부에 위치한다. 현재는 과수원과 묘역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쪽으로 전촌마을 당목와 마을회관이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노연리 달천마을이 위치한다. 구릉 사면에서 적갈색 연질 토기편과 회청색 경질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봉강리 유물산포지는 문화재 지표 조사...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강리 전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동제는 부락제(部落祭)·산신제(山神祭)·당제(堂祭)·당산제(堂山祭) 등으로 불리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봉강리 전촌 동제는 전촌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12시에 지내는 공동체 제의이다. 매년 음력 1월 초에 마을 사람 가운데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이 대를 잡아서 대가...
-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르게 행동하고 탐구하는 학생과 열과 성을 다하여 연구하는 교사, 서로 돕고 즐겁게 공부하는 학교를 통하여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슬기로운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창조, 질서’이다. 1993년 3월 21일 봉곡중학교 7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95년 3월 4일 7학급 316명의 신입생의...
-
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봉곡동이 속한 행정동인 봉림동(鳳林洞)에서 ‘봉(鳳)’자를 취하여 봉곡동이라 하였다. 봉곡동이 속한 지역은 본래 창원부에 속하였다가 1910년 마산부 부내면, 1914년 창원군 상남면, 1973년 마산시 상북동으로 편입되는 등 여러 차례 행정구역 변동이 있었다. 1976년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관할 상북지소에 속하...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봉곡리의 ‘봉(鳳)’은 동쪽을 뜻하는 ‘~’의 변이형태 ‘새’를, ‘곡(谷)’은 골짜기를 뜻하는 ‘골’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으로 생각된다. ‘봉(鳳)’의 훈이 새이고, ‘곡(谷)’의 훈이 골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봉곡리는 ‘동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의 뜻이 된다. 백월산의...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군. 봉곡리 고분군은 봉곡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 건너 감나무 단지로 조성되어 있는 구릉 비탈면에 위치한다. 1994년과 2005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는데, 유적 내 감나무 단지 곳곳에 도굴한 흔적인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유구(遺構) 및 채집 토기류로 보아 5세기에 조성된 고분으로 보인다....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기념물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봉곡리 고인돌는 기존의 지표 조사에서는 양교 고인돌로 서...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봉곡리 옹기요지는 봉곡리 평촌마을 앞 점골에 위치하며, 봉곡리 759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진흥래의 주택 담장과 그 위쪽 과수원 일대에까지 분포해 있다. 2005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봉곡리 옹기요지가 확인되었다. 확인 가능한 가마는 1기로, 25...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기념물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봉곡리 고인돌는 기존의 지표 조사에서는 양교 고인돌로 서...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 평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봉곡리 평촌 동제는 봉곡리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인 평촌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15일 새벽에 마을의 수호신이 기거하고 있다고 여기는 당목을 신체로 하여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인데, 당산제라고도 불린다. 당산할매를 모셨던 배선대걸터의 위치만 남아 있고, 그...
-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국제화시대에 부응하는 인재, 사회발전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창의적인 인간을 기르고자 도덕적인 학생, 탐구하는 학생, 건강한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2년 2월 29일 봉림중학교 12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92년 3월 1일 초대 하원영 교장이 부임하였다. 1992년 3월 5...
-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지혜로운 어린이, 바르게 행동하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어린이, 명랑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2년 3월 1일 35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93년 2월 18일 제1회 졸업식을 가졌다. 2010년 9월 1일 구순회 교장이 부임하였다. 2011년 2월 21일 제17회 졸업식을...
-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창조적이며 더불어 사는 학생, 책을 많이 읽는 학생, 친구를 많이 사귀는 학생, 건강한 몸을 만드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지혜·성실’이다. 2003년 1월 4일 「창원봉림고등학교 신설 조례」가 공포되어 같은 해 3월 1일 초대 교장에 변정섭이 취임하였으며, 3월 5일 개교와 함께...
-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창조적이며 더불어 사는 학생, 책을 많이 읽는 학생, 친구를 많이 사귀는 학생, 건강한 몸을 만드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지혜·성실’이다. 2003년 1월 4일 「창원봉림고등학교 신설 조례」가 공포되어 같은 해 3월 1일 초대 교장에 변정섭이 취임하였으며, 3월 5일 개교와 함께...
-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창조적이며 더불어 사는 학생, 책을 많이 읽는 학생, 친구를 많이 사귀는 학생, 건강한 몸을 만드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지혜·성실’이다. 2003년 1월 4일 「창원봉림고등학교 신설 조례」가 공포되어 같은 해 3월 1일 초대 교장에 변정섭이 취임하였으며, 3월 5일 개교와 함께...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봉림당(鳳林堂)은 양현석이 거주하는 주택의 당호로, 창원시 봉림동 1반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서는 양면장 집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양현석의 할아버지가 창원군 상남면장을 역임하였기 때문이다. 1939년 초가로 건립되었다가 1970년 새마을 사업 전개 당시 지붕을 기와로 교체하였다. 1980년...
-
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봉림사(鳳林寺)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봉림사는 진경대사(眞鏡大師)가 명명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봉림산과 봉림사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봉림리(鳳林里)가 보인다. 당시 남면(南面) 도상일운(道上一運)에 속해 있었다. 봉림리는 그 후 봉림리...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위치한 가야 시대 고분군. 창원 분지의 북쪽 외곽부 봉림동 산122 일대 봉림 마을 배후 구릉부에 위치한다. 봉림동 고분군은 정병산[566.7m] 서쪽에 위치한 봉림산[298.3m]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부에서 소하천으로 이어지는 말단부까지 이어져 있다. 창원 지역의 고분 유적과 같이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등이...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입상. 봉림동 마애 석불 입상은 화강암에 선각으로 새겨진 석불입상으로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창원시 봉림동에서 동읍 덕산리로 통하는 속칭 ‘부처고개’라 불리는 곳에 있다. 고개 마루에서 약 50m 가량 아래에 위치하며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화강암에 돋을새김이 되었으나 선각에 가깝...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 가마 터. 봉림동 와요지는 봉림사지(鳳林寺址)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골짜기 내 넓은 곳에 위치한다. 1994년 창원시 지표 조사에서는 가마의 바닥과 벽체, 다량의 소토 등이 단애(斷崖) 면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 최소 3기 이상의 가마가 분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곡의 남쪽부에서 적갈색의 초벌구이...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위치한 삼한에서 가야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창원 골프장 입구 서편에 위치한 소구릉에 분포한다. 출토 유물로는 굽다리접시, 대호편, 긴목항아리편 등의 토기와 생활용 토기 등이 있다. 봉림동 산 2번지를 중심으로 소구릉에 위치하는 삼한에서 가야 시대 유물 산포지이다. 이 일대의 도시 개발...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초기 국가 시대 및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봉림동 유물 산포지2는 봉림산[293.8m] 남서쪽 능선 끝자락의 경사가 완만한 대지 지형과 그 옆 계곡을 포함한 구릉에 위치한다. 1994년과 200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다. 1994년 조사 당시 쇠뿔잡이를 비롯한 적갈색 연질토기 조각과 두드림무늬가 새겨진 항...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서 사림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봉림로는 창원시 봉림동 내동천교에서 사림동 경상남도청에 이르는 도로로서 창원대학교 입구의 퇴촌교부터 창원천과 나란히 달린다. 따라서 도로의 선형은 하천의 유향에 따라 굴절된다. 도로의 양쪽으로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봉림로가 지나는 곳의 대표 지명인 봉림동에서 유래되었다....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세워진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의 뒤편 300여m 지점에 있는 높이 10여m의 미륵 바위가 수시로 방광(放光)하자 사람들이 운집하게 되었다. 이에 1890년 봉림사가 창건되었으며, 안택영(安宅榮)과 노상호(盧相鎬)의 땅을 시주받아 1947년에 보살 권봉순(權奉順)이 중창하였다. 199...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시대 미상의 불교전적. 봉림사 소장 불교전적류는 1980년 1월경 강원도 철원 심원사 승려 효공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당시 봉림사 회주 시진에게 기증한 것이다. 이 후 시진의 제자인 응산에게 기증·전승되어 현재까지 봉림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모두 8권 8책으로 『묘법연화경』 권 제1, 1첩, 『묘법연화경...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봉림사지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진경대사 심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 기념물.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는 봉림산문의 개산조로 추증된 현욱(玄昱)[787~868]의 법을 계승한 제자로, 오늘날의 광주·설악·강릉 등지를 두루 순례하며 수행과 교화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그는 김해 지역의 호족이었던 김인광(金仁匡), 김율희(金律熙) 등의 후...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봉림사지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진경대사 심희의 생애를 기록한 탑비.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는 원감(圓鑑) 현욱(玄昱)의 심인(心印)을 받은 제자로, 광주·설악·명주 등지를 두루 순력한 후 김해 호족 김인광(金仁匡)의 후원을 받아 봉림사를 중창하였다. 봉림사에 머무는 동안 경명왕의 초청으로 왕궁에 들어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서 봉림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봉림사와 불목하니」는 경상남도 창원시 전역에서 「퇴촌동 느티나무」, 「불목하니의 사랑」, 「불목한이」 등의 이름으로도 전승되고 있다. 1993년 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남도지회에서 출간한 『경남민속자료집』과 경상남도 창원교육청에서 출간한 『창원사랑 나라사랑』, 1996년 창원향토사연구회에서 출간...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절 터. 봉림사는 폐사된 절 터에 중창의 형태로 창건되었다. 이전 사원의 규모나 사명(寺名)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창건의 시점은 907~911년(신라 효공왕 11~15)이었다. 창건의 주역은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였고, 여기에는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 김인광(金仁匡), 김율희(...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산.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의 제8문이었던 봉림사(鳳林寺)가 있었던 곳이다. 낙남정간(洛南正幹)에 속하며, 그 맥은 천주산(天柱山)에서 와서 전단산(栴檀山)으로 이어진다. 이 두 산 사이에는 검산(檢山)-망호등(望呼嶝)-부처고개-봉림산-소목고개가 위치하는데, 이 구간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고도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봉림산이...
-
신라 하대에 경상남도 창원의 봉림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구산선문의 하나. 봉림사(鳳林寺)는 신라 하대에 오늘날 창원·김해 지역의 중심 사찰이었다. 개산조(開山祖)로 추증된 인물은 현욱(玄昱)이고, 중심 승려는 심희(審希)이다. 봉림사가 있던 자리에는 1919년 조선총독부가 주요 유물들을 강제로 옮겨간 표석이 남아 있다. 현장을 떠난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봉산리의 ‘봉산(鳳山)’에서 연유한 지명으로 보인다. 봉산의 ‘봉(鳳)’은 동쪽을 뜻하는 ‘~’의 변이형태 ‘새’를, ‘산’은 ‘뫼’를 표시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으로 생각된다. ‘봉(鳳)’의 훈이 ‘새’이고, ‘산(山)’의 훈이 ‘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봉산리는 ‘동쪽에 있는 산...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산리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군. 봉산리 고인돌군 북쪽 구릉에 위치하는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고분군으로, 구릉 전체와 구릉 아래쪽 경작지에서 가야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었다. 또한 적갈색 쇠뿔잡이 등도 채집되고 있어 고분군과 함께 생활 유적의 존재도 추정할 수 있...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기념물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봉산리 고인돌 떼는 동읍 봉산리 342번지 일...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제단. 봉산마을 뒤 전단산 산자락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제단을 중심으로 앞뒤 좌우 주변을 묘지들이 둘러싸고 있다. 제단은 정확하게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형태는 뒷면에 길이 2m, 높이 110㎝, 폭 23㎝의 넓고 평평한 판석을 남북향으로 세우고, 좌측에 역시 길이 2m, 높이 95㎝, 폭 10㎝의 판석을...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가야시대 및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봉산리 유물산포지는 봉산리 고인돌군이 있는 불피고개에서부터 구릉 끝부분까지 분포한다.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작성하면서 지표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고인돌과 관련한 주거지나 제사 유적 및 의례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기념물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봉산리 고인돌 떼는 동읍 봉산리 342번지 일...
-
봉산마을은 송정마을·용정마을과 연접해 있다. 골목길 하나를 두고 나누어져 있어 이 마을들과의 유대관계는 여느 마을보다 돈독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송정마을의 경우 봉산마을과 여러 면에서 친밀감이 강하다. 이러한 친밀감은 아마도 마을의 대동제와 대동놀이, 그리고 마을 모임 등을 통해서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두 마을의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생각되는 동제와 대동놀...
-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졌으며, 골목길 옆에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다. 봉산마을 뒤 전단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이 도랑과 골목길은 봉산마을과 용정마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봉산리 45번지와 43번지, 15번지를 가로지른다.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한 이 도랑과 골목길은 마을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며 마을의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팽붕석(彭鵬錫)의 본관은 절강(浙江). 자는 우칠(禹七), 호는 효우당(孝友堂). 절강팽씨 시조 팽우덕(彭友德)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팽화일(彭華日)이고, 어머니는 분성배씨(盆城裵氏)이다. 『절강팽씨세보(浙江彭氏世譜)』에 의하면, 족명은 관석(寬錫)이고 속명은 봉석(鳳錫)이다. 팽붕석은 효행이 극진하였으며, 효행으로 이적이 있었...
-
경상남도 창원시 양곡동 신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나루터. 1962년에 발간된 『창원군지』에는 “봉암천(鳳岩川)을 일명 남천(南川)이라 하는데 봉암진두(鳳岩津頭)에 해수(海水)가 교류(交流)하므로 망둥이, 고시락의 대산지(大産地)다. 옛날은 봉암진(鳳岩津) 나룻배로서 강을 건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양곡동 신촌마을의 이칭이 나룻가인데, 이는 마을 근처에 나루가 있...
-
경상남도 창원시 신촌동과 내리동 경계에 있는 하구. 봉암하구라는 명칭은 하구가 위치한 지역이 봉암리라고 불리었던 것에서 유래된다. 문헌 기록상 봉암리(鳳巖里)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나온다. 봉암하구는 신촌동 뒷산과 내리동의 팔룡산 사이에 형성된 하구로, 창원시의 주요 하천인 남천·창원천·내동천·양곡천이 봉암하구로 유입되어 마산만으로...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과 대산면에 걸쳐 있는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나는 황새과에 속하는 새. 예전에는 텃새였으나 현재는 한반도 일정 지역인 창원시 주남저수지에 한하여 매년 소수의 개체가 도래한다. 몸길이는 112㎝이고, 몸무게는 3.1~3.5㎏ 정도이다. 날개는 검은색을 띠며 머리와 온몸은 흰색이고, 눈 가장자리와 턱밑은 붉은색의 피부가 나출되어 있다. 부리와 날개깃은 검...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부내면(府內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부내면의 두 개 운 중의 하나가 이운(二運)이다.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부내면 이운에는 일곱 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교...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내면(府內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부내면(府內面) 산하에는 모두 2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부내면 일운은 부내면 소속의 2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9개의...
-
통일신라시대에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노힐부득(努肹夫得)의 아버지는 월장(月藏), 어머니는 미승(味勝)이다. 노힐부득은 신라인의 현신성도(現身成道)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달달박박(怛怛朴朴)과 함께 출가하여 법적방(法積房)에 머물렀으며, 그 뒤 치산촌(雉山村)의 법종곡(法宗谷)에 있는 회진암(懷眞庵)에서 수행하였다. 어느 날 밤 백호(白毫...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에 있는 고용 노동부 부산 지방 고용 노동청의 창원 지청. 부산 지방 고용 노동청 창원 지청은 근로 감독, 산업 안정, 고용 보험 및 취업 알선 등을 통하여 창원 지역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국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1965년 6월 2일 마산 산업 재해 보상 보험 사무소 및 마산 직업 안정소로 개소하였다가 197...
-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동과 진해시 웅동1동 일원,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 국토지리정보원에서 1961년 4월 22일 창원시 성주동, 2002년 1월 5일 진해시 웅동1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의 불모산(801.7m)으로 고시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1454)에 부을무산(夫乙無山),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에...
-
경상남도 창원시 명서동에 있는 조선시대 김해김씨 부자(父子)의 효성을 기려 세운 정려비. 조선 순조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사람인 김우진(金禹振)[1795~1835]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하였음을 자책하며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집에서 기르던 개도 주인의 행실을 본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삼 년 동안...
-
경상남도 창원시 용지동 창원대로 창원병원사거리에서 창원대학교를 연결하는 보조 간선도로. 용지로가 속한 용지동은 옛 용지리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용지리는 용지[현 용지호수]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현재 북15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구간 길이 약 3.4㎞, 폭 25m(대로3류)의 왕복 4~5차선 도로이다. 북15로를 통해...
-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동 창원대로에서 용추계곡 입구까지 연결되는 보조 간선도로. 구간 길이 약 3.3㎞, 폭 약 25m(대로3류)의 왕복 4~5차선 도로이다. 상남로에서 북16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북16로 주변에는 창원시민생활체육관, 한국기계연구소, 사파초등학교, 사파중학교 등이 있으며, 많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주변 문화 유적으로는 청동기...
-
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예전에 창원도호부 읍성 북쪽에 형성된 마을이었기 때문에 북동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북동과 관련한 문헌 기록은 『영남읍지(嶺南邑誌)』에 나오는 북동리라는 지명으로 백천리(栢泉里), 소답리(召畓里)와 함께 나온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나 『교남지(嶠南誌)』에서 보이던 죽계리(竹界里)가 기록에서 사라지고 대신 백천리...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동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 시장이자 상설 시장.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된 노점식 오일장인 소답 시장을 시 예산 총 75억여 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하였다. 1999년 12월 63억 원의 예산으로 시장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2층 3개동 점포 100개의 공설 시장을 건축했다. 공사를 완료하고 창원 공설 시장으로 이름을 바꾸...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동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 시장이자 상설 시장.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된 노점식 오일장인 소답 시장을 시 예산 총 75억여 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하였다. 1999년 12월 63억 원의 예산으로 시장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2층 3개동 점포 100개의 공설 시장을 건축했다. 공사를 완료하고 창원 공설 시장으로 이름을 바꾸...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 북가술마을에서 북두칠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북두칠성이 도와준 가난한 부부 이야기」는 칠성신이 가난한 부부가 진심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고는 그 사람에게 큰 복을 주어 부자로 살게 된다는 재물획득담이다. 1994년 창원군에서 간행한 『창원군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창원군 대산면 가술리 북가술마을 주민 김수득으...
-
경상남도 창원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창원읍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북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창원군 지역으로, 지개(芝介)·고암(高岩)·월산(月山)·대산(垈山)·남백(南柏)·갈전(葛田)·승산(承山)·월촌(月村)·대천(大川)·화원(花院)·내감(內甘)·감호(鑑湖)·동전(東田)·외감(外甘)·무동(茂洞)·내곡(乃谷)·신리(新里)·상천(上川)·외산(外山)·상리(上里...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북면(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다. 북면에 속한 세 개의 운 중 하나가 삼운(三運)이다.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삼운에는 모두 11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호구총수...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신촌리에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재래시장. 북면 신촌 공설 시장은 1920년에 개설되었는데, 특별한 현대화 시설을 하지 않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대지 면적 2,844㎡, 연면적 676.8㎡ 규모의 지상 2층 1동의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50㎡의 주차장과 1개[3칸]의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에서 정월 대보름날 행하는 줄다리기. 북면 외감리의 줄다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오래 전부터 행해졌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암수 줄이었으나 요즘은 외줄로 당긴다. 장소는 마을회관 앞 다리 위이다. 정월 대보름날 전 동민이 참여하여 마을회관에서 농악을 치면서 놀다가 마을의 당산나무에 간단한 제를 지내고, 오후...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북면(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다. 북면에 속한 세 개의 운 중 하나가 이운(二運)이다. 그리고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모두 8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호구총수(戶口...
-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북면(北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북면(北面)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북면 일운은 북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6개의 리를 두...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생각하고 착하게 행동하는 어린이,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창의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3년에 설립 인가를 받아 1924년 11월 1일 북면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38년에는 온천국민학교와 1952년에는 승산국민학교와 각각 분리되었다. 1969년 화천분교장...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대산리에 있는 북면초등학교 승산분교장. 바르게 생각하고 착하게 행동하는 어린이,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창의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2년 3월 3일 북면국민학교에서 승산국민학교로 분리되었다. 1999년 9월 1일 승산초등학교가 북면초등학교의 분교로 편입되었다. 2011년 까지 제84회 졸업식을 거...
-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과 북면 지개리를 연결하는 고개. 검산(檢山)[293m]과 천주산(天柱山)[638.8m] 사이의 안부에 개설된 고개이다. 풍수사상에 입각한 비보책에 따라 인공적인 굴착으로 만들어진 고개로서, 이러한 사실은 판고개[掘峴]라는 지명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고개는 낙동강 변의 주물연진(主勿淵津)까지 통하는 교통로로서 낙동강으로 통하는 주요...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신촌리에는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아 ‘신비의 샘’으로 알려진 마금산 온천이 있다. 마금산 온천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조선 초엽부터 나타난다. 조선 초엽에 마금산계곡에서 솟아난 약수가 각종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나, 모여든 사람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어 약수를 매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까...
-
동회는 한 해 일어난 일련의 마을 활동을 결산하고,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화합의 장이다. 북모산마을 동회는 매년 12월 중순에 개최된다. 1990년 중반까지는 매년 8월과 12월 2회를 개최하였지만 수박농사로 바빠진 1990년 후반부터는 12월에만 지내고 있다. 2008년 북모산마을 동회는 12월 29일 마을회관 겸 경로당에서 개최되었다. 오전 10시 북모산마을 이장의 목...
-
모산리는 북모산마을, 남모산마을, 송등마을 세 마을을 아울러 말한다. 그러나 1914년 행정개편에 의해 각 마을이 분동되면서 모임 또한 따로 조직하게 되었다. 이들 세 마을 대표로 북모산마을을 이끌어가는 마을 임원진과 모임을 소개할까 한다. 북모산마을 임원진으로는 반장(6인), 새마을지도자(1인), 개발위원회(6인), 재산관리위원회, 경로회장, 부녀회장, 청년...
-
1980년대 초반 모산마을 농가에서는 비닐하우스로 수박을 재배하면서 큰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이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들도 수박으로 작목을 바꾸어 농사를 지었다. 그 당시 많은 농가에서 수박을 재배하였지만 재배 기술이 없는 농가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수박 품종을 고르는 것부터 장비를 구입하는 것까지, 자칫 잘못하면 수박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수박농사를 지었...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부리에는 북부(北部)마을·동부(東部)마을·서부(西部)마을이 있는데, 모두 한자말 지명일 것으로 생각된다. 대산역(大山驛)이 있던 지역에서 각기 북·동·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명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세 개의 마을 중에서 북부리를 대표적인 이름으로 한 것은 대산면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북부리는 동부마을과 서부마을을 아울러 부르며, 풍수지리적으로 학의 형국이라 한다. 학의 머리에 해당되는 동부마을 뒷산에는 마을의 수호신이 기거하고 있다고 여기는 신목(神木)인 당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이 당산나무에서 마을 공동의 제사인 동제를...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북부리 서부마을에서 음력 10월 1일에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부락제(部落祭)·산신제(山神祭)·당제(堂祭)·당산제(堂山祭) 등으로 불리며,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과거 서부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이 기거하고 있다고 여기는 당목인 당산나무를 신체로 하여 동제를 지냈다. 현재 북부리 서부 동제는 마을 수호신이 깃든 당...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계리 백월산 북동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 터. 백월산 북동부에 자리한 절 터로, 통일신라 때 이곳에 분포하였던 다수의 사(寺), 암(庵) 가운데 하나가 있던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백월산(428m) 북동쪽에 있는 현재의 백월암 부근이다. 이곳은 백월산의 북동쪽과 남동쪽에서 발원한 두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의 북편 능선에 해당...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계리 북사지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마애 석불. 북사지 마애 석불 좌상은 백월산에 분포하였던 통일 신라 시대 다수의 사(寺)나 암(庵)의 하나로 추정되는 북사지에서 출토된 마애 석불이다. 백월산 남사의 창건 연기를 다루고 있는 『삼국유사』「탑상편」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에 따르면 북사지는 달달박박(怛怛朴朴)의 수행처로 비...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계리 백월산의 북사지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화강암 삼층석탑. 북사지 삼층석탑은 백월산에 분포하였던 통일신라시대 지어진 다수의 사(寺)·암(庵) 가운데 하나인 북사의 법당 앞에 세워졌던 것으로 전해지는 화강암 삼층석탑이다. 백월암 앞 계곡에 석탑의 부재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월계리의 칠성계(七星契) 회원들이 합심하여 현재의 위치...
-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천주산과 봉림산 사이에 걸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첨산(檐山)과 검산(檢山)으로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는 “첨산은 부 북쪽 1리에 있는 진산이다. (그 맥은) 청룡산(靑龍山)에서 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책 사묘조에는 “성황사(城隍祠)는 부의 북쪽 검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
석교마을에는 한국전쟁 당시 마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최창실 옹이란 분이 있다. 최창실 옹은 2008년 현재 89세로, 허리가 많이 휘어져 있어 거동이 불편하지만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창실 옹은 현재 김해 진영 출신의 부인 사이에 아들 3명과 딸 둘 등 5남매를 두고 있다. 황해도 재령군 청천면 양대리 텃...
-
배지타를 시조로 하고 배필문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배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의 개국공신인 6부촌장(部村長)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배지타이다. 32년(유리왕 9)에 배씨로 사성(賜姓)하였다. 이후 세계(世系)가 불분명하여 고려 창업의 일등원훈(一等元勳)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고, 분성 배씨는 6세손인 배원룡(裵元龍)을 일세조(一...
-
통일신라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비음산 자락에 세워진 대한 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 불곡사는 창원시 비음산(飛音山)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그러나 불곡사의 창건 연기를 알 수 있는 사료는 거의 없다. 창원 지역에서 구전되는 설화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인 917~923년에 국사 진경(眞鏡)[854~923]에 의해 창건되...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불곡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불상. 창원 불곡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石造毘盧遮那佛座像)은 대방동 폐사지[현 불곡사 주변]에 반쯤 땅에 묻혀 있던 것을 1940년 승려 우담이 비로전(毘盧殿)을 짓고 봉안한 것이라 전한다. 비로자나불이란 모든 부처님의 진신(眞身: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법신불을 의미하며, 이 부처님은 보통...
-
경상남도 창원시 대방동 불곡사에 있는 조선시대 일주문. 불곡사 일주문은 창원시 대방동 1036번지 불곡사 경내로 들어오는 진입부에 세워져 있다. 불곡사 일주문은 원래 공무를 수행 중인 관료나 외국 사신이 머무는 장소로 쓰이던 창원객사(昌原客舍)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1882년 웅천향교(熊川鄕校)로 이전되었다가 1943년 불곡사를 중창한 우담...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라는 말에는 석가모니인 부처가 설한 교법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석존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불교는 그의 생전에 이미 교단이 조직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입멸 이후부터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불교의 전파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서 한국...
-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동과 진해시 웅동1동 일원,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 국토지리정보원에서 1961년 4월 22일 창원시 성주동, 2002년 1월 5일 진해시 웅동1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의 불모산(801.7m)으로 고시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1454)에 부을무산(夫乙無山),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에...
-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에 있는 저수지. 불모산저수지는 창원시 불모산동 지구의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창원농지개량조합에서 사업 시행을 맡아 1971년 1월 1일 착공하여 1976년 1월 1일 준공하였다. 1981년 2월 1일 경상남도에 시설 등록을 하였다. 1981년 2월 1일, 2000년 7월 25일, 2003년 2월 3일, 2006년 3월 2일, 2007년...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불모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창원도호부 남쪽 악상리 미을무산에서 사철(沙鐵)이 난다.”는 기록이 있는데, 미을무산은 불모산의 또 다른 표기이다. 따라서 불모산리 지역은 본래 악상리였다고 여겨진다. 이 후 불모산동과 관련한 문헌 기록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불모산...
-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불모산동에 있는 가야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고분군. 『문화유적총람』에는 미륵동 계곡 능선상에 삼국시대 고분이 분포하고 있으며, 소형 고분으로 대부분 파괴, 멸실되었다는 기술과 함께 불모산동 고분군 관련 기록이 나와 있다. 고분군 남쪽에는 석불좌상(石佛坐像)과 탑재(塔材)가 있는 불모산동 폐사지(1)이 있다. 고분군이 형성된 구릉 아래쪽에는...
-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창원시 불모산동은 과거에 미륵동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고려시대 양식의 석불입상과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석탑 부재들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뜻있는 사람들이 불모산동 사지에 자리하였던 탑재를 옮겨와 복원, 건립하였다. 원 탑재는 불모산동 산199번지 소재의 불모산동 사지에...
-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야철지. 이곳을 야철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로는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8년 3월 25일 조에, “성지(性智)가 있었는데 그가 그의 어머니의 뼈를 창원 안골포(安骨浦) 불모동(佛母洞)에 장사 지내고는 말하기를…… 대개 불모동의 이름은 불못[火池]으로 노야(爐冶)의 이명(異名)이다. 불모동에 예전에 철로(鐵爐)가 있었으므로...
-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불모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 터. 불모산동 폐사지(1)는 불모산동 고분군과 일부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유적으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는, “이 일대 미륵동에 고려시대 석불좌상과 통일신라시대 폐탑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모산동 폐사지(1)은 창원시 불모산동 한국전기연구원 배후의 구릉과 사면에 위치한...
-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 폐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좌상. 불모산동 폐사지(1) 석불 좌상이 있는 주변에서 석탑의 부재가 발견되고 있다. 『문화유적총람』에서는 속칭 미륵동에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팔각 받침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전체 높이 98㎝, 어깨 너비 46㎝, 무릎 너비 96㎝ 정도이다....
-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불모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 터. 창원시 불모산동 진해저수지 서편 골짜기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안나푸르나 카페 앞쪽 사면 일대에 속한다. 유적 주변에 오동나무 단지와 밤나무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비교적 완만한 사면을 점하고 있는데 아래로는 논이 형성되어 있다. 논 위쪽에서부터 유적의 흔적이 확인되는데, 축대로 추정되는 석축열과 탑신...
-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 터. 절 터는 대암산(669m), 용지봉(728m)의 지맥이 두 갈래로 뻗어 있는 가운데 지맥 말단부의 저평한 대지와 경작지의 일부가 해당된다. UN도로가 급격하게 꺾이는 지점에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절 터가 나온다. 현재 절 터 주변은 일부 경작지가 존재하나 농사를 짓지 않아 수풀이 무성하다....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봉림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불교경전.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흔히 줄여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또는 『은중경(恩重經)』이라 불린다. 부모의 소중한 은혜에 대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간기(刊記)에 ‘가정삼십육년이월(嘉靖三十六年二月)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 개판(開板)’이라 되어...
-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 봉림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불교경전.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은 흔히 줄여서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陀羅尼經)』이라 불린다. 열심히 독송하면 온갖 재앙과 액운을 피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간기(刊記)에 ‘숭정십칠년임오(崇禎十七年壬午) 동래지(東萊地)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개판(開板)’이라 되...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의 창원 포교원. 포교원(布敎院)이란 세속의 도심 등지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불법을 널리 전하는 것에 주력을 하는 곳이다. 1990년 창원시 신월동 93 은아 아파트 단지 내에 4층 건물로 불지사를 건립하였으며, 쌍계사 창원 포교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창원시는 1974년에 산업 기지 개...
-
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계리에 세워진 대한 불교 일붕 선교종 소속 사찰. 백월암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전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천년 고찰이지만 관련 자료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다만 1300여 년 전인 통일신라시대에 백월산의 두 성인 중 한 사람인 달달박박(怛怛朴朴)이 아미타불 염불의 수행을 위해 거주했던 북사(北寺)라고 전한다. 조선 후기에 백월암의...
-
1970년대 초반 모산마을에서는 비닐하우스 재배를 도입하게 되었다. 비닐하우스 재배는 비닐로 온실을 만들고 태양열을 모아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모산마을에서 처음 비닐하우스로 농산물을 재배한 사람은 송모씨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본래 모산마을 사람이 아니다. 창녕군 길곡마을에서 농사를 짓다가 모산마을로...
-
경상남도 창원시 가음정동에서 비석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6년 창원향토사연구회에서 출간한 『창원의 숨결』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가음정동에 비석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었다. 이 비석골에 맹(孟) 정승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 세도를 부려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다. 맹 정승의 이러한 행동을 보다 못한 어느 도사가 맹 정승을 망하게 하기...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덕천리의 마을 입구에 있었던 민간신앙 대상물. 덕천리 솟대와 장승은 소나무를 깎아 제작한 것으로 동제의 대상 신 가운데 두 번째로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었으며, 주민의 건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장이기도 하였다. 1993년 군부대 건립으로 인해 덕천리 주민이 집단 이주를 하면서 예전의 솟대와 장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터만...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과 대산면에 걸쳐 있는 주남저수지에 서식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1999년 10월~2000년 3월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천연기념물 조류 월동 실태조사 결과 원앙은 10월 중순경 주 월동군이 월동지에 도착하고 주로 도래하는 지역은 내륙을 중심으로 작은 저수지나 호소 등이다. 이런 이유로 한강 부근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천수만, 금강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토월동 비음산 진례산성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진달래를 특화한 향토 축제. 비음산 진례산성은 창원시 토월동·사파정동,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를 이루는 비음산 위에 있는 석성으로 둘레가 4㎞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한 산성]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 쌓은 성으로 김해평...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토월동 비음산 진례산성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진달래를 특화한 향토 축제. 비음산 진례산성은 창원시 토월동·사파정동,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를 이루는 비음산 위에 있는 석성으로 둘레가 4㎞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한 산성]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 쌓은 성으로 김해평...
-
사람은 누구나 생활의 편리를 위해 특정 지역에 자리 잡아 모듬살이(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과 그 주위에는 이름이 붙게 마련이다. 우리가 만나는 석산리라는 명칭도 누군가가 지은 이름인 것이다. 지명은 땅의 모양, 지표상의 특징적인 사물 등에 의해 붙여진다. 석산리의 이곳저곳에 붙여진 지명을 수수께끼 풀듯 살펴보자. 먼저 마을 이름인 석산(石山)은...
-
경상남도 창원시 귀산동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류. 껍데기 길이 4㎝, 높이 3㎝ 정도이다. 껍데기는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 모양이며 딱딱하다. 표면에는 방사상 무늬가 있다. 표면은 거칠고, 서식지에 따라 크기·색깔·무늬·형태 등이 조금씩 다르다. 촉수에는 돌기가 없고, 3개의 이빨이 있다. 창원 지역에서는 바지락을 주로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