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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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山里- |
영어의미역 | Dolmens in Bongsan-ri |
이칭/별칭 | 봉산리 지석묘군(鳳山里 支石墓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의창대로 949-9[봉산리 342 외]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형곤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봉산리 고인돌 떼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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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2호 고인돌 조사 |
소재지 | 봉산리 고인돌 떼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의창대로 949-9[봉산리 342 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덮개돌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기념물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위치]
봉산리 고인돌 떼는 동읍 봉산리 342번지 일대의 불피 고개 능선에 있다. 1호 고인돌은 고인돌군의 가장 동쪽에 있다. 『문화 유적 총람』에는 봉산리 3호 지석묘로 소개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6년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봉산리 고인돌 떼에 대해 유구(遺構) 분포 확인을 위한 시굴 조사 결과, 고인돌 분포 수가 최소 8기 이상이고 아울러 생활 유구가 분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 후 2007년 이루어진 2호 고인돌 조사에서 고인돌 무덤구덩이선과 받침돌을 확인하였고, 11월 18일부터 2호 고인돌 내부 조사를 하였다.
[형태]
1호 고인돌 덮개돌은 남동쪽의 한 변을 정으로 떼어내 버린 상태이어서 원래의 모습을 잃고 있지만, 현재는 변형된 편육각형이며 크기에 비해 두께가 얇아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다. 덮개돌의 남변 쪽으로도 채석을 시도한 정 자국이 열을 지어 새겨져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다.
덮개돌이 놓인 방향은 능선의 종주향에서 약간 서쪽으로 벗어나 있으며 수평은 동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다. 윗면에는 크고 작은 약 10개의 성혈(性穴)[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이 갈아 내기 수법으로 파여 있는데, 이 가운데 큰 것은 지름 10㎝, 깊이 4㎝에 이르는 것도 있다. 받침돌은 없다. 10여 년 전에 도굴된 적이 있다. 방위는 북북서와 남남동이며,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11㎝, 너비 300㎝, 두께 65㎝이다.
2호 고인돌은 주축 방향 N-30°-W이며 등고선과 평행하다. 전체적인 특성은 무덤구덩이를 계단식으로 3단으로 굴착하여 310×100×119㎝ 크기의 석곽을 만들고, 길이 150㎝ 크기의 뚜껑돌 5매를 덮은 형태이다. 그 위로 3층의 적석부와 2층의 뚜껑돌이 있고, 최상부에 추정 받침돌과 잔존 크기 길이 350㎝, 너비 285㎝, 두께 35~75㎝ 널돌[판석(板石)] 모양의 화강암계 덮개돌이 얹혀 있다.
[출토유물]
2호 고인돌 내부에서 파손된 홍도(紅陶)[붉은 간 토기] 1점과 돌화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2호 고인돌은 구조상으로 3단 무덤구덩이 축조이고, 인근의 창원 덕천리 1호 고인돌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이 빈약하지만, 유구가 도굴되어 수장 계층의 무덤 양식을 보여 주여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