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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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의미역 | Folk Custom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전승되어 온 민중들의 습속과 생활 방식.
[개설]
인간은 예부터 자연 조건과 혈연 및 지연이라는 운명적인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틀 안에서 각기 변별되는 문화와 기질을 가진다. 그런 까닭에, 민족은 민족대로, 지역은 지역대로의 독특한 특질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여수 또한 그러할 것이다.
[가정신앙]
여수의 의식주 생활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리적 환경 때문에 수산물이 흔했고, 갓과 같은 특용 작물도 재배했다. 항구의 특성상 여수의 집은 비탈을 이용하여 대개 바다를 향하여 앉혔다. 여수 사람들이 믿었던 가신(家神)은 성주, 조상, 조왕, 삼신, 터주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직능을 가진 신으로 믿어 제례가 행해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만능의 신으로 서로 일정한 자리를 점유하고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이밖에도, 변소에는 측간신(厠間神), 대문간에는 수문신(守門神), 마구간에는 우마신(牛馬神), 굴뚝을 드나드는 장군신(굴뚝신), 장독대의 철융신, 우물의 용신(龍神), 광의 업신 등이 있다. 이들의 신체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측간신은 머리가 쉰다섯 자나 되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여신으로, 업신은 구렁이나 족제비로 여겼다. 이들 가신에 대한 특별한 제의는 없고, 다만 다례 때나 별식이 생기면 한 그릇 바치는 정도였다.
[무속신앙]
무속은 종교적 지도자인 무당들이 주축이 되어 점복·예언·치병·제의·천도 등을 행하는 원시 신앙이다. 여수에서는 무당을 일반적으로 ‘단골’이라 부른다. 여수의 단골은 부부지간 혹은 모녀지간 등으로 이어지는 세습무였다. 여수의 무속 제의는 굿과 비손이 있었다. 굿은 여러 명의 무와 반주 전문 잽이가 합동으로 가무와 실연을 위주로 하는 제의이고, 비손은 한 사람의 무당이 축원하는 정도의 약식 제의인 바, ‘선굿’ 혹은 ‘앉은굿’이라 한다.
제의 차례는 신을 정중하게 굿에 청하는 청신(請神) 과정, 청해온 신을 가무로 즐겁게 해주는 가무 오신(娛神) 과정, 초청된 신이 무당에게 공수를 내리기를 비는 신탁(神託) 축원 과정, 굿에 초청된 신을 돌려보내는 송신(送神) 과정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마을신앙]
여수에서는 동제를 당제(堂祭) 혹은 당산제(堂山祭) 등으로 불렀는데, 거의 모든 마을에서 행해지다시피 했다. 형태는 대개 신당형 혹은 신수형이며, 제의 형식은 해마다 지내는 일반 동제이다. 제가 끝난 후에 춤과 노래, 극 등을 통해 축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가무사제형(歌舞司祭型) 동제로서 마당굿이나 무당굿이 이어졌다. 동제 시기는 정초, 대보름날 이전, 삼짇날 등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당집은 새마을운동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마을마다 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온동·항호·초도의 당집이 영험했다고 한다. 당집은 마을로 침입하는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맞이하려는 원화소복(遠禍召福)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제당이 된다. 제를 지낼 때도 누구나 함부로 출입할 수 없고, 제관으로 선정된 몇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일반인들은 평상시에 그 앞에서 치성만 드릴 수 있었다. 신당이 없는 마을에서도 당제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의는 제관 선출로부터 시작된다. 제관은 두이레나 세이레 전에 마을 회의를 통해 생기복덕(生氣福德)하고 부정 없는 마을 원로 중에서 뽑는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본인은 그날로부터 금기로 들어가며, 마을에서는 우물을 깨끗이 하고 새로 난 물로 제주(祭酒)를 빚어 신당 안에 앉힌다. 제수 일체도 장만한다. 제일(祭日)이 되면 유교식 의례에 따라 제를 모시고 거기에다 무당굿을 곁들이기도 했다.
한편, 어로 신앙의 대표적인 제의는 용왕제이다. 여수에서는 바다와 근접한 마을은 당제와 함께 용왕제를 곁들인다. 어부(漁夫)·어선(漁船)·어장(漁場) 등과 관련되어 정기적으로 혹은 부정기적으로 해신제와 곁들여 굿을 행한다. 동제와 더불어 지낸다거나, 배를 만들 때, 진수할 때, 첫 출어 때, 흉어가 계속될 때, 배 사고가 날 때에 해신제 성격의 고사를 올린다.
[벅수]
여수에는 ‘벅수골’이 여러 곳 있다. 어디나 예외 없이 벅수 곧 장승이 섰던 자리다. 그 수만도 25기나 된다. 그 형상은 사모를 쓴 양반 모습, 벙거지를 쓴 수군 모습, 모자를 쓰지 않은 인자한 노인 모습 등 다양하다. 세월이 흘러 그냥 선돌처럼 보인 것도 있다. 옛날 것을 치운 자리에다 근래에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세월이 흘러 이목구비의 선들이 분명하지 않으나,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인자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 예사로운 표정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 서민들의 애환과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서 있는 위치로 보거나 형상으로 볼 때, 여수 벅수는 여수의 수호신이라 하겠다. 곧, 돌림병이나 왜구와 같은 잡것의 침입을 막아 주고, 땅 기운이나 수구가 허한 곳을 다스려 산천을 비보하는 신상(神像)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벅수를 경계 혹은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서 마을 입구에 세우거나, 경내의 청정과 불법의 존엄을 지켜 달라는 뜻에서 사찰 입구에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나운 바다와 싸워야 하고, 왜구들과도 생존을 위한 전쟁을 감수해야 했던 여수 사람들은 벅수를 마을 입구에, 혹은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세워 금줄을 쳐 놓고, 그 앞에서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굿판을 벌였다.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치성도 드렸고, 길 떠난 자식의 무사 무탈과 과거 길을 빌기도 했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병자의 사주와 이름을 적어 비손도 했다. 벅수를 신체처럼 여겼던 것이다.
벅수가 신체인 것은 벅수 가슴에 새겨진 명문으로 알 수 있다. 벅수 명문은 특이하게도 “남정중화정려(南正重火正黎)”라 새겨져 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중국 전한 시대의 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중국 전욱(顓頊) 고양씨(高陽氏) 시대, 전욱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확실하게 구별해 두고, 창궐하는 질병도 잡고자 힘이 장사인 중(重)과 여(黎)에게 각각 남정(南正)과 화정(火正) 자리를 맡기면서 힘으로써 하늘과 땅을 완전히 격리시켜 놓도록 했고, 그런 다음 중에게는 신(神)으로서 하늘을, 여에게는 민(民)으로서 땅을 각각 관장케 했다.
특히, 여에게는 땅을 다스리면서 각종 질병과 악귀를 쫓아내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하늘과 땅이 서로 간섭하지 않게 되었고, 중과 여와 같은 축융(祝融) 앞에서는 각종 질병도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여수 벅수는 오랜 역사 속에서 천지를 다스리는 신이요, 악귀를 내쫓는 축융으로서 자리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혼상제]
여수의 관례에 대해서는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여수에서는 진세가 있었다는 것이 특별하다.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백일이나 돌 의례처럼 동네잔치를 성대하게 베풀고 무병장수를 빌었다. 원래 진세는 머슴들에게 들돌을 들게 하여 힘자랑을 하게 하는 의식이었는데, 여수에서는 이 둘의 의미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한 것 같다.
여수의 혼례 의식은 다른 지방과 차이가 없다. 결혼 적령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남자는 15~16세, 여자는 16~17세가 되면 혼인을 했다.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이보다 먼저 하기도 했다. 그 순서는, 의혼(議婚) - 납채(納采)와 연길(涓吉) - 납폐(納弊) - 납징(納徵) - 초행(初行) - 혼례식(婚禮式)[소례인 전안례(奠雁禮)와 대례인 초례(醮禮)로 나누어 행한다] - 동상례(東床禮) - 수신방(守新房) - 신행(新行) - 구고례(舅古禮) - 재행(再行) 순이었다.
여수의 상례 역시 다른 지방과 차이가 없이, 초종(初終)[속광(屬纊)·고복(告復)·수시(收屍)·입상주(立喪主)와 호상(護喪)·부고(訃告)] - 습(襲) - 염(殮)[소렴(小殮)·대렴(大殮)·여막(廬幕) 안치] - 성복(成服) - 문상(問喪) - 발인(發靷)[상여놀이·발인제(發靷祭)·노제(路祭)] - 산일[치장(治葬)·천구(遷柩)·개토제(開土祭)] - 하관(下官) - 평토제(平土祭) - 성분 - 흉제(凶祭) - 반혼제(返魂祭) - 우제(虞祭) - 소상(小喪) - 대상(大喪) - 담제(禫祭) - 길제(吉祭)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수 지방의 분묘 방식으로 관을 매장하지 않고 초분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일정한 장소에 돌·나무 등을 밑에 받치고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그 위에 얹어 놓은 다음 풀잎(요즘은 짚)으로 초가지붕을 덮듯이 그 위를 덮어둔다. 이를 가장(假葬)이라 한다. 3~5년 동안 매년 덮개를 갈아주며 성묘를 하다가 관내의 시신이 뼈만 남았을 때쯤 길일을 택하여 이를 해체하고 다시 대·싸리 등으로 엮은 발 위에 흐트러진 뼈의 부분 부분을 창호지 등으로 이어 에워싸 본래의 뼈의 위치대로 만들어 원하는 장소로 이장(移葬)하는 풍습이다.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제례는 사당제(祠堂祭)·사시제(四時祭)·기일제(忌日祭)·묘제(墓祭) 등이 있으나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관행되고 있는 제례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기제(忌祭)·시제(時祭)·차례(茶禮)이다. 여수에서의 차례는 명절 전날 밤에 지낸다. 화양면 사람들은 이를 ‘밀날’ 저녁이라 한다. 차례의 대상은 기제나 시향과는 달리 모든 조상이 다 해당된다.
제주는 남자지만,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비손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차례 음식은 기제사와 별반 다르지 않으나, 시절 별식을 따로 준비한다. 추석 차례 전에는 반드시 조상의 묘를 찾아가 여름에 자란 풀들을 깎아 주고, 단오 차례 때는 겨울 동안의 묘지 상태를 점검한다.
[세시풍속]
여수의 풍속은 예로부터 독특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며, 또 옛 문헌에 보이는 것 중에는 이름만 남아 있고 현재 일반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다. 대체로 우리 민족에 의하여 발생되고 전승되어 오는 고유(固有)의 것도 많이 있지만,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시대 변천에 따라 외래의 것에 우리 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많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서 원단(元旦)·원일(元日)·정초라고도 하는 설은 오래 전부터 한 해의 출발점인 정월 초하루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 왔으며, ‘새롭게 출발한다’, ‘근신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해가 시작되는 첫날은 모두 언행을 삼가고, 새해를 맞는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음력 1월 15일 대보름은 설날·추석날과 함께 우리 겨레가 즐겨온 큰 명절로 우리나라의 많은 세시풍속이 이날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풍요와 생산력을 상징하는 달이 농경(農耕)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달은 곡물 생산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지신의 신앙 체계에 들어 있는 천체로, 새해 첫 만월이 되는 대보름날에는 달과 관련된 갖가지 제의(祭義)를 행한다.
이밖에 정이월에 입춘, 하드랫날, 영등함쎄 등의 풍습치례를 했고, 춘절(春節: 3월~ 5월)에는 삼짇날, 청명(淸明)·한식(寒食)·곡우(穀雨), 초파일, 단오(端午)도 명절로 여겼다. 하절(夏節: 6월~8월)에는 유두(流頭), 삼복(三伏), 칠석(七夕), 백중(百中)이 있다. 특히 여수에서는 백중에 정월 대보름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예축 행사가 벌어지고, "진세"를 했다. 추동절기(秋冬節期: 9월~12월)의 대표적인 명절로는 추석(秋夕)이 있고, 중양절(重陽節), 상달, 동지(冬至), 납일(臘日), 제석(除夕)에도 여러 풍습이 있었다.
[민속놀이]
여수의 놀이 문화로는 매구와 마당밟기를 들 수 있다. 학술 용어로는 농악이지만 여수에서는 ‘매구’라 일컬었다. 매구는 김매기·논매기·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에,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되어, 지금은 각종 명절이나 동제·걸립굿·두레굿과 같은 의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놀이요, 음악이 되었다.
특히, 현천 소동패놀이는 공동작업(두레)을 하기 위한 두레패 조직으로 농악, 노래, 춤 등이 혼합되어 풀베기, 김매기 등 공동 작업시 고달픔과 지루함을 달래며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농민의 의지와 슬기, 또한 멋이 담겨 있는 생산적인 민속놀이이다.
마당밟기는 정초나 칠월 칠석 등에 액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서낭대를 앞세우고 매구를 치며 집집마다 들러 고사굿을 하는 의식적인 놀이다. 당산굿과 샘굿을 치고 난 다음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굿을 한다.
줄다리기는 벼농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민속 현상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있다. 줄다기리는 협동심이 대단히 중요시된다. 줄다리기는 대개 정월 대보름날 행하나, 하드랫날·단오·백중·추석 때 하는 곳도 있다. 여수의 민요 「어얼싸 덜이 덜롱」은 줄다리기를 하면서 불렀던 대표적인 민요로서, 여수에서 줄다리기가 얼마나 성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밖에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그네타기, 씨름 등의 놀이를 했다.
[민속 행사]
지역 축제는 지역의 지리, 역사, 문화적 배경으로 기획되고 개최된다. 여수에서도 연중 문화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여수거북선축제, 거문도풍어제, 여수향일암일출제, 여수여자만갯벌노을체험행사, 여수영취산진달래체험행사, 거문도·백도은빛바다체험행사, 여수동동북축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