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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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戰亂-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about War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 전해 내려오는 전란에 관한 이야기.
[개설]
여수 지역은 예부터 지리적 조건 때문에 왜구의 침략을 자주 받아 왔다. 그래서 고려 후기에는 수군 기지로서 진례만호, 내례만호를 두었으며, 조선 전기 1479년(성종 10)에 전라좌수영을 설치하여 1895년(고종 32)에 혁파되기까지 417년 동안 남해 지역의 방어를 위한 조선 해군의 주요 진지로서 임무를 다해 온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여수 지역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전란에 관한 전설이 수적으로 단연 으뜸이다.
[내용]
전란에 관한 전설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주요 활동 무대가 여수 지역이었던 만큼 충무공 이순신에 얽힌 전설이 대단히 많다. 임진왜란 당시, 화살촉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사철 생산지 풀무골 이야기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최후를 애석해하는 주민들의 심사가 그대로 드러나 전해지고 있다.
일명 뒤주봉 혹은 뽈록산으로도 부른 화치의 노적산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물밀듯이 쳐들어오자 충무공 이순신이 군량미로 위장하고자, 노적산의 나무를 전부 베어 내고 이엉으로 감싸 두었는데, 이에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줄 안 왜적들이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났다 한다. 이 이야기는 충무공 이순신의 뛰어난 지략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충무공 이순신이 어머니 변씨 부인을 모셔 두었다는 송현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충무공 이순신의 효심을 엿볼 수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기마병을 훈련했다는 망마산 이야기와 이때 사용했던 말채찍이 산정의 동백나무라 한 이야기 등은 충무공 이순신의 신이한 힘과 지략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밖에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전설도 애틋하게 남아 있다.여수 진남루 경내에 서 있는 여수 타루비(墮淚碑)에 대한 이야기가 그 대표이다. 사람들은 여수 타루비를 볼 때마다 충무공 이순신을 추모하여 눈물이 저절로 났다고 전하고 있다. 여수 지역 사람들이 이렇게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역사적 현장에서 운명을 같이하였던 충무공 이순신을 영웅으로 받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전란에 관한 전설이 충무공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굴전 앞에는 무슬목이 있다.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명량해전 당시 왜적들이 무슬목을 통과하려 하자 대미산과 소미산 기슭에 숨어 있던 수군 300여 명이 왜선 60여 척과 왜군 300여 명을 섬멸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무서운 목이라 불렀고, 앞바다는 왜병들의 피로 물들었다 하여 피내라고 한다. 무슬목은 지혜로운 전술로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지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는 맷돌처럼 생긴 특별한 바위가 하나 있다. 역의암(易衣岩)이라 불려 온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지금의 순천시 해룡면에 성을 쌓고 주둔하고 있었다. 이를 두렵게 여긴 여수 지역 주민들은 마치 수많은 군사가 진을 치는 양 위장하려고 흰옷, 붉은 옷, 검은 옷을 번갈아 가며 입고 역의암 위 둘레를 돌았다고 전한다. 또한, 다른 이야기로 왜적들이 여수 지역의 부녀자를 막 겁탈하려고 하자 이에 물로 뛰어들어 죽었다 해서 여기암(女妓岩)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의암 내지 여기암의 이야기는 전쟁 당시 주민들의 지혜와 절의 정신을 엿보게 하는 전설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의 장군총 이야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어느 장군의 위엄 있는 영혼과 함께 장군묘로 인하여 장차 불어 닥칠지 모르는 환란을 미리 피했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율촌면 장도에는 정유재란 때, 의병들이 수박에다 벌을 폭약처럼 넣어 왜군을 교란시켜 몰살했다는 벌통 수박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전라좌수군절도사였던 이량이 물속에 성을 쌓고 왜적을 방어했다는 장군도의 이야기, 어느 도승이 도술로 10리 안에 있는 돌과 바위를 저절로 굴러들게 하여 성을 쌓았다는 석창에 관한 이야기, 불로초를 구하러 왔던 진시황의 장군이 죽어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 오는 남면 연도의 장군묘 이야기, 약 400여 년 전에 장서린(張書隣)이란 도둑 괴수가 청기와 망루를 지어 놓고 해적 행위를 하다가 조정의 관군에게 잡혀갔다는 필봉산 이야기 등 전란과 관계된 설화는 대단히 많다.
특히, 여수 지역의 지명 가운데에는 전란과 관계 깊은 곳이 많이 있다. 중앙동 수장끝[水墻端], 오천동, 묘도동, 화양면 장수리와 이목리, 화정면 개도 등에는 봉화와 관련된 지명이 있고, 화양면 용주리 고진(古鎭)도 전란과 관련이 있다. 돌산읍의 둔전리(屯田里), 화정면의 둔병도(屯兵島), 봉계동의 전봉산(戰鳳山) 등은 군사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공화동의 장대(將臺), 시전동 선소(船所), 망마산(望馬山), 낙포동의 배무지[造船浦], 삼산면 손죽도 등은 모두 전란과 관련된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