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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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기와밟기를 할 때 불렀던 유희요. 「기와밟기」는 강강술래에 삽입된 노래이자 놀이다. 경상도 지역뿐 아니라 전라도 지역에서도 행해지는데,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는 「기와밟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는 「놋다리밟기」, 울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재 밟기」라고 불린다. 「기와밟기」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와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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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모내기가」는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라도 등의 논농사 지역에서 가창되는 가장 대표적 민요 중 하나로 교환창 방식으로 불려진다. 교환창 양식을 통해 일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사설의 내용은 노동 당시 상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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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모심기 노래」는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라도 등의 논농사 지역에서 가창되는 가장 대표적인 민요 중 하나인데, 교환창 방식으로 불려진다. 교환창 양식을 통해 노동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또한 남녀 간의 연정을 통해 삶의 애환을 노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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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에서 명절놀이를 할 때 부르는 유희요. 「쾌지나 칭칭나네」는 추석이나 음력 정월 대보름 때 줄다리기 등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추석이나 음력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에서 자기편의 기세와 흥을 돋우거나 승리를 경축할 경우에 부른다. 또한 봄철 화전놀이 때 부녀자들이 솔밭 잔디 위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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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 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래 동요. 의성군 비안면 장춘 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항글래비」는 방아깨비의 뒷다리 부분을 쥐고 있으면 앞으로 나가려다 못가고 끄덕 끄덕하는 형상이 마치 방아를 찧는 듯하여 「방아 쩌어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글래비[방아깨비의 경상도 방언]를 보고 ‘이마가 훌떡 벗어진걸 보니 누구 닮았다’ 등의 형식으로 노래를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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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편찬된 읍지. 『의성군지』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읍지로, 1899년에 편찬되었다. 읍지의 표제가 ‘경상북도의성군읍지(慶尙北道義城郡邑誌)’로 되어 있는데, 경상도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분리되고, 의성현(義城縣)이 의성군으로 개편된 것은 1896년이다. 새로운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변경된 군명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현 의성군과는 달리 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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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삼한 시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召文國)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문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로 추정할 수 있다. 2세기 이후 신라로 편입되었다.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3세기 경상도 지역 상황은 변한·진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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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삼한 시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召文國)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문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로 추정할 수 있다. 2세기 이후 신라로 편입되었다.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3세기 경상도 지역 상황은 변한·진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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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후삼국 시대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은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때 의성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왕건과 견훤 모두가 중시하는 곳이었다. 양자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의성의 호족 홍술(洪術)이 고려에 귀부하자 왕건은 이를 우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의성부(義城府)를 설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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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작성된 옛 문서.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된 고문서 작성 지역은 조선 시대의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이었던 단밀현(丹密縣), 예천군(醴泉郡)의 속현이었던 다인현(多仁縣), 그리고 용궁현(龍宮縣) 일부이다. 고문서는 1945년 이전 관부가 개인에게 발급하거나, 관부와 관부 사이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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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한 1945년 이전 편찬 기록 자료와 서적.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고문헌과 관련된 곳은 조선 시대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인 단밀현(丹密縣), 예천군(醴泉郡)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그리고 용궁현(龍宮縣)의 일부가 해당된다. 고려 시대 이래 이들 지역의 토성(土姓) 세력 중에서도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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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으로 나누어지고, 육상 교통은 다시 도로, 자동차 교통, 철도 교통 등으로 나누어진다. 교통의 발달은 정치 중심지를 핵으로 하여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과 지세의 복잡성은 교통로 발달을 저해하였고, 교통로의 미발달은 지역간 문화적 차이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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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기곡과 가도의 이름을 따서 기도동이라 하였다. 가도는 약 400년 전 오씨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지형이 닭 머리 같다고 계두실[鷄頭谷]이라고 했으나 변음되어 가도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곡은 치실이라고도 하는데, 치실은 약 500년 전에 의령 옥씨가 개설하면서 마을의 모양이 키[箕]처럼 생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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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각(伊覺), 초명은 경민(景民), 호는 설강(雪崗). 김유신 장군의 후예이며 김일손(金馹孫)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창녕 현감(昌寧 縣監)을 지낸 김대장(金大狀)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士郞)을 지낸 김순(金錞)이고, 아버지는 김치방(金致邦)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이다. 부인은 김언형(金彦亨)의 딸 경주 김씨(慶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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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장. 호(號)는 운산.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김수익(金壽翼)이고, 어머니는 한산인 이덕(李悳)의 딸이다. 부인은 도사 이만기(李晩起)의 딸인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김회종은 동생이다. 김상종[1847~1909]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출신으로, 안동 의병 주역인 정재학파 문인인 김흥락과 김도화의 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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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시호는 희헌(僖憲). 아버지는 판서 김석아(金錫我)이다. 김순(金淳)[?~1462]은 1432년(세종 14)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443년 우헌납(右獻納)으로 양전 편의지책(量田 便宜之策)을 올렸다. 1444년 지평(持平)에 임명되고, 1448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450년(문종 1) 성균관 사예(成均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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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의 13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생원 김수익(金壽翼), 할머니는 한산 이씨 이덕(李悳)이다. 아버지는 김회종이며, 큰아버지 김세종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의병장 김상종이 큰아버지이다. 김호직(金浩直)[1874~1954]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출신으로, 1895년 을미의병 봉기 때 의성에서는 유림 김상종이 의병을 일으겼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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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숙종 20) 울릉도에서 안용복(安龍福), 박어둔(朴於屯) 두 사람이 일본 오야 가문의 어부들에 의해 일본에 납치되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울릉도를 ‘본국의 죽도(竹島)’라고 하면서 조선인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를 해 왔다. 이것이 ‘울릉도 쟁계(鬱陵島爭界)’[일본에서는 ‘죽도 일건(竹島一件’]라고 한다. 조선 정부에서 ‘울릉도 쟁계’ 해결을 위해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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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씨라는 선비가 약 500년 전에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현재의 안평면 마전리에서 비안면 산제리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신행(新行) 길에 말이 굴러서 말구리 혹은 마전(馬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당바들산은 마을의 전설에 따르면, 천지개벽 때에 마당 만큼의 면적에 동민 전원이 피난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싸리밭골은 마을 개척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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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합할 때 고산동(高山洞), 오산동(梧山洞), 송산동(松山洞) ‘산(山)’자가 들어간 세 마을을 합쳤기 때문에 삼산동(三山洞)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연 마을 고산(高山)은 마을 뒷산이 높아 붙여진 이름이다. 오산(梧山)은 마을 주변 산에 오동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오산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실제 마을 뒤로 오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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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의 역사. 선사 시대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던 시대를 말한다. 인간이 처음 출현한 때로부터 글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기까지로 이 기간은 수백만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95% 이상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다. 선사 시대를 몇 개의 시대로 구분하는데,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 등이 여기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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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천주교도들의 의례 및 집회 장소. 『사학징의(邪學懲義)』에 따르면,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경상도로 귀양 온 56명의 신자 가운데 강성철(姜成喆)이 의성 지역에서 죽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천주교 신자가 의성 지역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801년(순조 1)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천주교를 믿다가 박해를 받아 의성군 안사면 쌍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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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청호리에 있는 천주교 안동 교구 안계 성당 소속의 공소 신유교난(辛酉敎難)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학징의(邪學懲義)』에 따르면 1801년 경상도로 귀양 온 56명의 신자 가운데 강성철(姜成喆)이 의성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의성군 안사면 쌍호동에는 서울에서 천주교를 믿다가 박해를 받아 이곳으로 피난 온 것으로 추정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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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의성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여 청동기 시대에 삼한의 소국이 이곳에 성립되었다. 삼한의 소국 가운데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단밀면]·여담국(如湛國)[금성면 탑리리], 조문국[금성면] 등이 의성 지역에 존재하였다고 비정되고 있다. 185년(신라 벌휴이사금 2)에 조문국을 정벌한 신라는 조문군(召文郡)을 설치했다. 신라가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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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년(태조 12) 후백제 견훤의 의성 지역 공격이 있었다. 장군 홍술이 있는 의성은 결국 패배하고 홍술은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왕건은 애통한 심정으로 ‘나의 좌우수(左右手)를 잃었다’고 하였다. 후에 홍술은 의성의 성황신으로 모셔졌으며, 의성은 의성부로 승격하였다. 신라 말 고려 초의 후삼국 정립기(後三國 鼎立期)에 의성 지역이 지닌 지리적 중요성과 왕건과 의성 지역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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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가 경상북도 의성 일대에 침입한 사건.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져 해안 지방을 넘어 내륙으로까지 그 피해가 미쳤다. 의성 지역도 이 시기에 왜구의 침입을 두 차례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왜구는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고려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침입하여 약탈과 살인 등을 일삼았던 해적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일본 남북조의 혼란기에 발생한 집단으로 여겨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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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대략 6,500여 개가 넘는다. 공룡 발자국 화석의 숫자만 따진다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이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은 전라남도 일부 해안 지역을 재외하고는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경상 분지가 공룡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중생대 백악기 무렵에 형성된 퇴적층으로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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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丹北面)에 있었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 대제지는 우리나라 수리 관개 농업의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저수지로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위치하였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그 기원이 밝혀지고 있으나, 커다란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초기 국가들이 등장하는 때와 맞물리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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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는 민중이 널리 부를 뿐만 아니라, 그 음악적·문학적 성격도 민중적이다. 민요는 생활상의 필요성에서 창자가 스스로 즐기는 노래이다. 악곡이나 박자, 사설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서 특별한 기교나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민중의 생활을 노래하는 차원을 넘어서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생산적인 노래라는 특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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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년 의성 지역에서 벌어진 후백제군과 고려군의 전투. 후삼국 정립기인 929년 7월 후백제가 의성 지역을 공격하였다. 전쟁 중에 의성 지역을 지키던 성주 홍술이 전사하고 의성은 함락되었다. 후백제는 이 의성 전투 승리의 여세를 몰아 같은 달에 지금의 풍산 지역인 순주(順州)를 함락하고, 10월에는 지금의 문경 지역인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과 가은현(加恩縣)을 공격하는 등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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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학자·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수(子秀), 호는 반계(盤溪), 효사재(孝思齋). 경주 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2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건(李建)이고,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이연년(李延年)이고, 어머니는 김철손(金哲遜)의 딸 분성 김씨(盆城 金氏)이다. 이탁영(李擢英)[1541~1610]은 1541년(중종 36) 경상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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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도 의성현 출신의 이탁영이 작성한 일기. 임진왜란 당시 이탁영(李擢英)은 경상도 감영의 영리로 있으면서, 경상도 관찰사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탁영은 임진왜란 당시 도(道)의 행정을 담당함과 동시에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睟)의 참모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만록』은 전란 당시 이탁영 본인이 담당한 행정 업무와 직접 목격한 사건들을 기록한 일기인 것이다. 이탁영은 『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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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비안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 항쟁. 임술민란(壬戌民亂)은 1862년 지배층의 수탈과 억압에 대한 저항과 불만으로 발생한 농민 항쟁이다. 경상도 단성(丹城)[현 진주 일대]에서 시작되어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70여 개 고을에서 발생하였다. 의성 지역에는 비안현(比安縣)에서 농민 항쟁이 발발하였다. 현 경상북도 의성 지역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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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라고 하는 삼한 시대 초기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고려 시대 의성부(義城府)였던 문소군(聞韶郡)은 원래 조문국이었다고 기록된 이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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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라고 하는 삼한 시대 초기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고려 시대 의성부(義城府)였던 문소군(聞韶郡)은 원래 조문국이었다고 기록된 이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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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 의성 지역에는 현재 1000년 이상 된 전통 사찰이 9개소나 된다. 이는 신라나 고려 시대에 이미 의성에서 불교가 매우 성행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일찍부터 의성에서 불교가 성행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은 의상 대사이다. 그가 의성에 건립했거나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만 6곳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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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가산리에서 단촌면 구계리를 거쳐 경상남도 창녕군과 경상북도 안동시를 연결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 지방도 79호선은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과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을 연결하는 도로로, 총 길이는 183,811㎞이다. 노선은 경상남도 창녕군-경상북도 고령군-경상북도 칠곡군-경상북도 군위군-의성군-경상북도 안동시로 연결된다. 도로의 노선 번호는 남북 방향은 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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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 교회. 의성의 천주교는 박해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주문모를 비롯한 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었고, 약 400명이 유배되었다. 그중 경상도로 유배된 56명 가운데 강성철(姜成喆)이 바로 의성에서 세상을 떠났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안사면 쌍호동에 서울에서 천주교를 믿다가 박해를 받아 이곳으로 피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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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세계사에서 철기 문화의 시작은 기원전 1400년경 히타이트(Hittite) 왕국에서의 철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 보급되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 전국 시대 연나라로부터 철기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고, 자체적인 철기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에 이루어져 주조, 단조 철기까지 제작되었다. 철기 생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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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리(霞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에서 나온 명칭으로, 원래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물 하(河) 자를 써서 하동(河洞)이라 하였으나, 노을[경상도 방언으로 나부리] 하(霞) 자가 더 운치가 있어 한자를 바꾸어 하동(霞洞)이라 하였다 한다. 하동은 노을의 방언 나부리에서 유래한 이름인 나붓골 또는 나부로도 불린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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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1911년 사이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의병 운동은 집권층이 부패하고 무능한 상태에서 외세가 침략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일어난 구국 운동의 대표적 형태였다. 의병 운동은 일제의 대한 제국 병합을 전후한 시기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무장 투쟁을 주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을 마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