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450
한자 高麗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호동

[정의]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고려 초 의성부의 성립]

후삼국 시대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은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때 의성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왕건견훤 모두가 중시하는 곳이었다. 양자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의성의 호족 홍술(洪術)이 고려에 귀부하자 왕건은 이를 우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의성부(義城府)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924년에 후백제가 대야성과 의성에 해당하는 문소성의 군사로 조물성을 공격하였다고 하며, 929년에는 견훤이 갑졸 5,000명으로 의성부를 공격하여 성주 장군 홍술이 전사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의성부는 924년에서 929년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의성은 부로 승격하면서 일계현(日谿縣)고구현(高邱縣)을 합병해 관할 영역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는 홍술왕건에 귀부한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였다.

[행정 관할 영속 관계의 변천]

왕건의성부를 설치한 후 얼마 되지 않은 929년에 후백제의 견훤의성부를 공격하여 성주 홍술이 전사하였고, 통일 이후에는 의성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1018년(현종 9) 의성부의성현으로 강등되었고, 길주(吉州)의 속읍이 되었다. 속읍은 수령이 파견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주읍인 길주의 행정적 지배를 받았다. 지금은 의성군 영역에 속하는 비옥현, 단밀현, 안정현의 경우 신라 경덕왕 때에는 의성에 해당하는 문소현의 영현이었지만, 고려 시대에는 상주목의 속읍이었기 때문에 의성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고려 시대 의성현에는 피촌향(皮村鄕), 골라소(骨羅所), 신촌 부곡(新村 部曲)·굴어곡 부곡(屈於谷 部曲)·우곡 부곡(牛谷 部曲) 등의 부곡들이 존재하였다.

의성현은 1143년(인종 21)에 주읍으로 승격되어 현령이 파견되는 지역이 되었다. 그런데 고려 중기 무신 정권이 성립된 이후 경상도 지방에 남적이라는 농민 봉기가 발생하고, 최충헌이 정권을 잡았을 무렵에는 신라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등 중앙 정권에 반하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였다. 이때 의성현이 신라 부흥 운동 세력에 함락되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현령이 아닌 감무가 파견되는 지역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그 후 충렬왕 때 일시 대구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현으로 복구되었다.

[의성 지역 민들의 동향]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940년(태조 23) 전국 군현의 명칭을 개정하고, 공신의 책정, 역분전의 지급, 토성 분정 및 본관제를 시행하였다. 토성 분정은 고려 왕조의 성립에 공을 세운 전국의 지방 세력에게 성씨를 하사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토성은 이때 성씨를 받은 재지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의성현조에는 토성으로 김씨만 나오는 데 반해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성현조에는 토성으로 김씨(金氏)와 홍씨(洪氏)의 두 개 성씨가 함께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성현조의 인물로 의성 김씨의 시조인 김홍술(金洪術)홍유(洪儒)가 함께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씨가 누락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홍유의 초명이 홍술(弘術) 또는 홍술(洪術)이었다는 점과 의성 김씨 시조인 홍술(洪術)이 별개로 존재했던 점을 통해 고려 초 당시의 성명 표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왕건은 전국 군현의 명칭을 개정하면서, 고려의 창업과 후삼국 통일에 일정한 지지를 보낸 지방 세력에게 토성 분정을 하였는데, 그 이전에도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성씨를 하사하곤 하였다. 후삼국 시대의 지방인들은 대개 성씨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한자 성씨의 보급 과정에서 나타난 이 시대 인물들은 사료에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의성 지역은 후삼국 시대 홍유(洪儒)·김홍술의 출신지로서 지방 세력인 호족이 강성했던 곳이었다. 홍유태조 왕건을 추대한 공로로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과 함께 1등 공신으로 책정된 인물이다. 그 딸은 태조 왕건의 부인인 의성부 원부인 홍씨(義城府 院夫人 洪氏)가 되어 의성 부원대군(義城府院大君)을 낳았다. 김씨와 홍씨는 본관 영역 내의 주민들에게 조세를 수취하고 역역을 징발하여 중앙의 지방 지배를 보조하는 의무를 부여받았으며, 농민들의 유망을 방지하고 재생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농사를 권장하는 권농의 의무도 부여받았다. 후삼국 통일기에 고려에 귀부한 의성 지역의 토성인 홍씨와 김씨는 이 지역의 공론을 움직이는 강력한 지방 세력이었다. 그렇지만 홍씨는 점차 기록에 나타나지 않게 되고, 김씨만이 의성을 대표하는 대성으로 발전하여 고려 후기 이래 계속 상경 종사하면서 고려 말 조선 초에는 기호 지방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되었다.

지금의 의성 지역인 비옥현의 경우 고려 시대에 토성으로 박(朴)·손(孫)·원(袁)·장(張)의 4개 성씨가 보이고, 안정현의 경우 오(吳)·임(林)·나(羅)의 3개 성씨가 보인다. 그렇지만 끝내 속읍으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이들 성씨는 고려 시대에 두드러진 역할을 보이지 못하였다.

의성 지역에 이들 성씨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고려 시대에는 지방의 유력 세력만이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 양민과 천민들은 성씨 없이 이름만을 가지고 있었고, 본관제에 의해 영역이 규제되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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