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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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김준길은 의병장으로서 30여 명의 의병을 이끌었다고 한다. 김준길은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서 태어났다. 1909년(순종 3) 9월 18일 부하 30여 명을 이끌고 여수군의 자매리에서 일본 군인들과 전투 중 전사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에는 자매리가 자리(自里)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수 지역 사료에는 자매리로 기록되어 있다. 여수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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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역 앞에 너른 광장과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덕양장터이다. 오일장의 기능이 사라진 지가 10여 년이 되서 그런지 시장터의 흔적이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장터에 있는 식당 간판들은 밝고 활기차 보이고, 식당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식당 입구에는 큰 고무통 안에 돼지 곱창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종업들이 물로 씻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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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발견된 동물과 식물에 관한 전설. 여수 지역에는 동식물과 관련된 전설을 가진 지명이 상당히 있다. 산이나 섬 또는 곶 등의 자연 형태가 동물과 비슷하다 해서 생긴 지명, 식물이나 특산물이 많이 나는 지명 등에는 동물의 이름이나 식물과 그 특산물의 이름으로써 지명을 삼았다. 동물과 관련한 지명은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의 노루[獐]·이리[狼], 삼일면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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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의 치소가 그 지역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행정의 치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게 마련이다.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군되었을 당시에는 면 소재지가 덕양에서 남쪽 방향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지금의 관기리에 소재하고 있었다. 설군 당시 면 소재지였던 관기리에서 떨어져 있었던 지금의 덕양 일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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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현(지금의 여수시)이 세 번 폐현되었다가 네 번째 복현(復縣)을 이룬 것. 1396년(태조 5)에 조정에서 새로운 왕조(王朝)의 건국에 관한 교지(敎旨)를 전국에 내렸는데, 당시 여수의 현령(縣令) 오흔인(吳欣仁)은 태조의 혁명을 단호히 반대하며 사신을 거절하였다. 이로 인해 태조는 대노하여 여수의 폐현을 명하고 순천부에 예속시켰다. 순천에 예속된 여수 백성들은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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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화치동·월하동·평여동·중흥동·적량동·월내동·낙포동·신덕동·상암동·호명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고어로 보면 삼(三)은 미, 미르이고 물을 뜻한다. 일(日)은 실이며 장소를 뜻한다. 삼일은 미르실이며 이것은 물의 고장 즉 바다의 고장을 뜻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 조건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순천부 삼일면이었으며,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천군 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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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웃바구’라고 하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상암(上岩)이 되었다. 상암은 상암동 고인돌 군락의 바위 중 맨 위쪽에 위치한 바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바위에는 옛날 옛적 금강산을 만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금강산으로 가다 멈춰버린 설악산의 울산바위처럼 금강산이 완성되어 멈추어 섰다는 「상암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본래 순천부 삼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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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성씨는 혈연 관계를 나타내 주는 단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고(高)씨, 백제의 시조 온조의 부여(夫餘)씨, 신라의 박(朴)·석(昔)·김(金)씨 등을 시발로 귀족 계급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성씨가 많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에는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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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러 마을이 통합되었는데, 이때 가장 큰 마을인 덕대(德大)마을에 ‘신(新)’자를 붙여 신덕(新德)이라 하였다. 덕대란 지명은 전국 여러 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여수시 덕충동의 옛 지명도 덕대인데 마을에서는 ‘덕대골’이 변한 ‘떡더골’로 많이 불렸다. 마을 주변의 지형을 살펴보면 옛 지명 ‘떡더골’이나 ‘몬당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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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이 통합하기 전 각각의 지역에서 출간한 마을지. 여수 지역에서 그동안 마을 유래사를 모아 편찬한 단행본으로는 『여천시 마을유래지』[1986년|1998년], 『여천군 마을 유래지』[1990년], 『삼도수군통제영 여수동사』[1993년] 등이 있다. 각각 여수 지역에서 전해 오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본 현황, 연혁, 전설, 문화, 풍속, 배출 인물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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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고려시대인 1350년(충정왕 2)부터 있던 여수현을 1396년(태조 5)에 태조의 정치 보복으로 폐현시켜 순천부에 예속한 후 500년에 걸쳐 순천부와 전라좌수영 두 관청의 부역과 조세를 이중으로 부담하는 폐단을 겪었다. 이후 복현 운동의 결과로 1897년(고종 34) 5월 16일 여수군(麗水郡)을 설군하라는 칙령(勅令)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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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동남부 지역에 있는 행정구역. 여수(麗水)라는 명칭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행정구역 개편 때 해읍현(海邑縣)을 여수현(麗水縣)으로 변경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538년(성왕 16) 구지하성이 관할하는 삽평군(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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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달한’이라 불리다가 차츰 ‘달안’으로 불렸다. ‘달’은 산을 뜻하는 옛말로,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마을이란 뜻이다. 한자로는 달 안쪽이라는 뜻의 월내(月內)로 표기하게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천군 삼일면에 속하였으며, 1976년 여천지구출장소 삼일지소 월내리가 되었다. 1980년 삼일읍 월내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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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시대에 ‘다락골’이라 불렸는데, 뒤에 ‘달 아래의 마을’이란 뜻의 월하리(月下里)가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천군 삼일면에 속하였으며, 1976년 여천지구출장소 삼일지소 월하리가 되었다. 1980년 삼일읍 월하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승격으로 월하동으로 바뀌면서 여천시 삼일동으로 통합되었다.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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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특정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기후, 생물, 자연, 도시, 교통, 주민, 산업 등의 여러 가지 사상(事象), 즉 사물과 현상 중 주로 인간 활동이나 삶과 관련한 여러 가지 양상인 인문적 사상을 의미한다. 다른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인문적 사상도 다양한 측면이나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관찰할 수 있으며,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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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와 가까운 화양면과 삼일면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뱃길 외에는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가 어려웠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뱃길로 여수장이나 광양장으로 나가야 했다. 이것은 여수반도가 예로부터 육상보다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내륙 지역까지 도로가 개설되고 육상 교통이 서서히 발달해지면서 뱃길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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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시초가 되었던 호남정유가 최초로 들어섰던 적량동은 고려시대부터 ‘적량부곡(赤良部曲)’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온다. 광양만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진례산을 배경으로 한 기름진 땅에 남해의 따뜻한 기후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자연환경이었다. 삼일포향·적량부곡·진례부곡 등 삼일 지역엔 유난히 많은 향과 부곡의 이름이 전해온다.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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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 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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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392년 조선 개국시 여수현령 오흔인(吳欣仁)이 신왕조에 불복하였다 하여 1396년(태조 5)에 여수현과 돌산현이 폐지되고 순천도호부에 속한 여수면이 되었다. 소라포부곡은 소라포면, 율촌부곡은 율촌면이 되었으며 삼일포향은 삼일포면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돌산현은 여수면으로 흡수되고, 인근 섬들은 낙안, 광양, 흥양[현 고흥]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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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해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주암·주동·삼동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암에서 주자와 삼동에서 삼자를 각 한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여수(천)군 쌍봉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항·주암·군장리의 일부와 삼일면의 삼동과 오산·용혈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주삼리가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천군 쌍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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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삼일동의 중심지인 중흥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촌’과 ‘흥국사’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중촌’은 흥국사 계곡으로부터 흐르는 개천이 마을 가운데로 흘러 ‘중천(中川)’이라 하다가, 중앙에 있는 마을의 뜻인 ‘중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759년의 『호구총수』 기록에는 ‘새 터’란 의미의 ‘신대(新垈)’와 ‘늑음(仂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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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여수시 중북부에 위치한 평여동은 구 삼일읍 지역에 있던 법정리 평여리가 여수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법정동으로 바뀐 지역이다. 평여·신송·산본·신흥·남수리 마을이 통합되어 법정리를 이루었으나, 모든 마을이 이주하고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 앞에 넓은 들이 있어서 ‘들몰’이라 부르던 마을로, 들과 마을이라는 뜻의 한자 ‘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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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을 무렵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하세동 경로당 옆을 유병길 할머니가 농기구를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밭에 가서 일해야 한다.’며 대답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행상 안하시냐고 했더니 행상 안한 지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오랜만에 뵈었는데 경로당에 가서 행상했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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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국가의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단위.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적 관할에서 행정의 편의, 재원 배분 등이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 적정 규모의 행정 구역을 설정하게 된다. 여수시는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주민 발의에 의하여 전국 최초로 도·농 통합을 이루어 명실 공히 전라남도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여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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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949년 6월 여수항의 개항이 선포되고, 같은 해 8월 여수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이 되어 여수시와 분리되었다. 1973년 여천군 돌산면 경호리가 여수시에 편입되어 경호동이 신설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 돌산면과 삼일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월 1일 여천지구 출장소가 여천시로 승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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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호명동은 ‘범우리’라고 하던 우리말을 훈차(訓借)한 마을 이름으로, ‘범이 울던 곳’이나 ‘범 골짜기’의 뜻을 가지고 있는 땅이름이다. 호명동의 마을은 호명과 호복마을을 비롯해 양지마을·오천마을·내동마을이 호랑산의 북쪽인 계곡 아래쪽으로 자리하고, 위쪽엔 자내리로 대동마을과 양지마을·석정마을·사근치마을이 있다. 호명마을에는 지방기념물 165호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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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호명동 원호명마을에서 정월대보름과 칠월칠석에 행해온 농악. 호명동은 마을 뒷산과 남쪽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가 호랑이같이 생겼고, 호랑이가 우는 입과 같이 생겼다고도 하여 호명 또는 범우리라고 전하여진다. 호명동의 원호명마을에서는 예부터 정월 대보름과 칠월칠석에 매구놀이를 해왔다. 예부터 매구는 매우 엄하게 쳤다고 한다. 옛날에 당산굿을 잘못 쳤다가 상가집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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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삼일 지역의 북서쪽에 자리한 화치동은 한자의 뜻으로 옮기면 ‘꽃 고개’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꽃 고개는 아름다운 꽃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화치의 옛 이름은 ‘꼬(고)재’라고 하였다. ‘꼬(고)재’는 강이나 바닷가에 튀어나온 지형에 붙게 되는 ‘곶이’라는 말이 변형된 말로, 센소리로 하면 ‘꼬지’나 ‘꼬치’, ‘고치’가 된다. 이를 한자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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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출신으로 전통시대에 효행으로 이름난 아들.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하여 사회 유지의 제일로 쳤는데, 그로 인해 그러한 실천적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는 큰 포상을 했고, 그 포상을 받으면 또 가문의 영예로 간주했다. 여수에서도 효자로서 『삼강록(三綱錄)』에 오르고 국가로부터 포상을 받은 인물이 대단히 많았다. 출신 지역별로 보면, 삼일면에 1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