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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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열녀. 의령남씨(宜寧南氏)는 고기잡이와 나무하는 것을 업으로 하던 김대선(金大善)의 처이다. 시집간 지 4개월도 지나지 않아 남편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태풍을 만나 배가 뒤집어졌다. 배에 탔던 사람들 가운데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들은 간신히 헤엄쳐 나왔다. 의령남씨도 떠있는 나무에 의지하여 겨우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 때 남편이 파도 속으로 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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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두라리에 있는 섬. 1590년 경 장씨(張氏)가 맨 처음 입도하였다. 그 뒤 1760년 경 나주임씨(羅州林氏)와 의령남씨(宜寧南氏)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으며, 섬 모양이 나팔같이 생겼다고 하여 나발도라 부르게 되었다. 최고 지점 65m의 산지를 중심으로 남쪽 해안은 급사면이며, 북서해안 쪽으로는 완사면을 이룬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고 북서쪽과 북동쪽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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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초,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공은(孔隱)의 죽음을 슬퍼한 기러기가 3일 동안 울다가 떨어져 죽어 낙포(洛浦)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비학동(飛鶴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여천군 삼일면 지역으로, 납개 또는 낙포라 하였다. 진례만호진 시절 전선(戰船)은 모두 이 지역 포구에 배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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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성씨는 혈연 관계를 나타내 주는 단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고(高)씨, 백제의 시조 온조의 부여(夫餘)씨, 신라의 박(朴)·석(昔)·김(金)씨 등을 시발로 귀족 계급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성씨가 많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에는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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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거주하고 있는 씨족 관련 내용을 모아 1952년에 발간한 책. 세보(世譜)는 대게 시조로부터 혈통의 계승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선후 대수와 항렬별로 친소관계(親疎關係)를 나열하여 발간한다. 세보는 동성동본 전체의 계보를 망라하는 대동보(大同譜)와 한 동족 안의 한 분파(分派)의 세계에 한하는 파보(派譜)로 나누어지는데, 『여수씨족세보』는 이와는 다르게 여수에 거주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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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전통시대에 살았던 효부나 열부.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 여성의 효열(孝烈)은 남성들의 충효(忠孝)와 함께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의 이념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실천적 행동은 민중의 귀감이 되었으며 가문의 영예이기도 했다. 여수에도 효녀와 효부 그리고 열부로서 『삼강록(三綱錄)』 등 기록에 남아 있거나 효열비를 세워 그 행실을 기리는 대상 인물은 대단히 많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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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군보를 시조로 하고 남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의령남씨(宜寧南氏) 시조는 남민(南敏)이다. 남민의 7세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때부터 남씨는 세 본관으로 나뉘게 되었고, 남군보가 의령남씨의 실질적인 시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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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처음 정착한 동일 본관의 조상. 입향조란 성씨 중심으로 촌락을 이루고 살아가던 전통시대에 어떤 마을에 맨 먼저 정착한 사람이나 동성 집단을 중심으로 볼 때 첫 입향한 조상을 말한다. 입향조는 마을을 창건한 실존 인물로 추적할 수도 있고, 성씨 중심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또, 더러는 구전에 의해 알려진 경우도 있다. 여수에서 가장 먼저 창설된 마을이나 가장 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