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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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寧南氏 |
영어의미역 | Uiryeong Na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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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인조 때 |
성씨시조 | 남군보(南君甫) |
입향시조 | 남기(南琦) |
[정의]
남군보를 시조로 하고 남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의령남씨(宜寧南氏) 시조는 남민(南敏)이다. 남민의 7세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때부터 남씨는 세 본관으로 나뉘게 되었고, 남군보가 의령남씨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었다.
[입향경위]
의령남씨 여수 입향조는 남기(南琦)이다. 남기는 충경공(忠景公)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인조 때 장흥에서 여수시 오림동으로 이거하여 후진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 경상남도 의령에서 살던 남선백(南善栢)이 1680년대에 일가족을 데리고 소라면 봉두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승지공파(承旨公派) 후손 남기순(南基淳)이 1800년대 초 보성에서 낙포동 사포마을에 입향했다고 한다.
[현황]
의령남씨 여수 입향조 남기(南琦)의 후손들은 여수시 오림동과 소라면 죽림리에 분거하고 있으며, 낙포동 사포마을에 입향했던 남기순의 후손들은 세거지가 여수국가산업단지로 수용됨에 따라 분산 이주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