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천리 가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707
한자 吉泉里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 771-1답|길천리 815답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신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사항 시기/일시 2004년 - 길천리 가마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길천리 가마터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 771-1, 815 일원[x : 344997.3 y : 313124.44 N 36°18′28.8770″ E 128°36′54.6715″]지도보기
성격 가마터|토기 가마터|자기 가마터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개설]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 766-1번지 일원에 분포한다.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길천2리 천동 마을 동쪽의 계단식 밭으로 개간된 구릉 말단에 위치하는 기와 가마터와 천동 마을의 민가에 위치하는 자기 가마터 유적으로 구분되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유적이다. 주변에서 채집되는 자기편과 와편으로 볼 때 조선 시대에 운영된 가마터로 추정된다.

[변천]

길천리 가마터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의 문헌 자료에도 가마터와 관련된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1454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 의성현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관련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자기소가 한 곳과 도기소 한 곳이 있는데 모두 의성현 서쪽의 금석리에 있는데 품질은 하품이다[磁器所一 陶器所一 皆在縣西 金石里 下品]” 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금석리(金石里)는 의성현의 서쪽에 있다고 했으나 길천리 가마터는 현재 의성읍의 서남쪽에 있어 서로 다른 것일 수 있지만 조선 시대 요업 체계와 그 특성상 상호 관련성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위치]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 766-1·769-1·769-2·770·771-1·811-1·812·813-3·813-4·814·814-1·814-2·815· 816-1·816-2·816-3817-1·819-1·820·821·822 일원에 위치한다. 의성읍에서 내려오는 남대천쌍계천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봉양면 소재지인 도리원에서 의성읍으로 통하는 경북대로[국도 5호선]를 따라가다 구미 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남대천의 천동교를 건너면 바로 가마터가 있는 길천리 천동 마을에 이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7년 5월~11월까지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가 있었고, 2004년에도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의성군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계단식으로 개간된 밭둑에서 기와 가마터로 추정되는 가마의 잔해가 확인되며, 주변에는 와편들이 다량 산포하고 있다. 또 천동 마을 민가 주변에도 가마의 잔해를 비롯하여 자기편이 산포하고 있다. 주민들의 증언을 참고하면 이 일대에 기와 가마와 자기 가마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조업 시기는 주변에서 채집되는 와편과 자기편을 통해 볼 때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1987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 보고서에서는 의성 길천리 요지 Ⅰ,Ⅱ로 구분하여 보고되었으나, 같은 위치에 분포하고 있고 그 시기도 비슷하여 하나의 유적으로 묶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향후 보다 정밀한 학술 조사를 거치면 길천리 가마터의 구체적인 편년과 성격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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