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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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城山貝塚 |
영어의미역 | Changwon Seongsan Shell Mound |
이칭/별칭 | 외동 성산 패총,창원 성산 조개더미,성산패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외동 853-5|853-7|853-9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남재우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11월 2일 - 창원 성산 패총 사적 제24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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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창원 성산 패총 사적 재지정 |
성격 | 조개더미|야철지 |
지정면적 | 109,478㎡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외동 853-5|853-7|853-9 |
소유자 | 국가 |
관리자 | 창원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삼한 시대에 이르는 조개더미와 야철 유적.
[위치]
창원역에서 창원터널로 이어지는 창원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가음정동 유적군의 남쪽, 높이 49m의 야산인 성산이 보인다. 유적은 성산 정상부 유물전시관이 세워져 있는 성산공원에 위치한다. 성산은 산성이 있는 소구릉으로 남쪽 아래에 불모산에서 발원하여 마산만으로 연결되는 남천이 있으며, 북쪽으로 가음정동 유적과 연결되어 있다. 동구 조개더미는 성산의 동남쪽 능선의 계곡, 서남구 조개더미는 성산의 서남구 능선 계곡, 북구 조개더미는 성산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3년 11월경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공사가 시행되어 산을 깎는 과정에서 조개더미와 토기편들이 노출되어 문화재 관리국에서 1974년 2월 14일부터 약 90일간 긴급 조사하였다. 1991년 창원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태풍으로 유실된 일부 지역에 대한 긴급 구제 발굴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조사 결과, 산의 계곡마다 1개소 이상의 독립적인 조개더미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동구, 서남구, 북구 3곳의 조개더미가 조사되었고, 삼한 시대 야철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다. 1974년 11월 2일 사적 제24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동구 조개더미는 계단식의 경작지로 되어 있으며, 20°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조개껍데기 퇴적 범위는 약 10×15m 정도이며, 조개더미의 층위는 5개의 퇴적층으로 구분되나, 크게 아래의 민무늬 토기류가 출토되는 회갈색 부식토의 민무늬 토기 문화층과 위의 삼한 시대 문화층으로 나뉜다.
서남구 조개더미는 50×20m의 범위에 형성되어 있다. 계단식 밭으로 경작되어 있었고, 25~30° 되는 경사지에 해당된다. 층위는 크게 민무늬 토기 유물 포함층과 연질 토기와 경질 토기 등의 유물 포함층으로 나뉜다.
북구 조개더미는 약 20×40m 정도의 범위에 형성되어 있다. 조개껍데기의 퇴적 두께는 최대 5m에 이르며, 이는 성산 패총에서 가장 두터운 조개껍데기층이다. 북구 조개더미는 조개더미 층위와 출토유물로 보아 동구 조개더미와 서남구 조개더미보다 늦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동구 조개더미에서는 다양한 조개껍데기류, 민무늬 토기편·붉은간토기편·시루·부형(釜形) 토기 등의 토기류, 반달돌칼과 숫돌 등의 석기류, 도자병(刀子柄)·뼈화살촉·뒤지개·찌르개 등의 골각기류, 쇠도끼, 곡옥, 가락바퀴차,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서남구 조개더미에서는 야철 유적이 확인되었고, 오수전과 화천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창원 성산 패총은 성산의 계곡 지형마다 독립된 조개껍데기가 형성되어 있는 대규모 유적군이다. 전체적인 연대는 삼한 시대가 중심이 되며, 민무늬 토기가 주종을 이루는 최하층의 골아가리토기, 구멍무늬토기 등의 양상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까지도 올려볼 수 있다. 발굴 조사된 조개더미는 동구 조개더미, 서남구 조개더미, 북구 조개더미 순서로 축조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의 성산은 후대의 인위적인 지형 변경으로 인해 따로 독립된 단독 구릉으로 되어 있으나, 고대에는 인근의 가음정동 능선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의 지형적 여건과 생활상을 고려해 보면 성산의 정상부 및 조개더미의 인근 지역에는 당시 취락지가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밖의 유구들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삼한 시대 야철 유구가 발견된 것은 창원에서 철생산이 가능했음을 보여주며, 삼한 시대에 존재했던 포상팔국 가운데 하나인 골포국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