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원휘(金原輝)[1884~1949]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비안면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김원휘는 안평면 괴산동 괴산 교회 조사(助事)로서, 평양 신학교에 등록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마침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렬한 만세 시위를 목격하였다. 그는 시위로 인해 학업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3월 4일 평...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두완(朴斗完)[1888~1966]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부터 19일에 걸쳐 안평면 대사동 교회의 영수인 이종출(李鍾出)을 비롯하여 교인들이 전개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박두완은 이종출(李鍾出)·김옥돈(金玉頓)·이양준(李良俊)·이북술(李北述) 등이 주도하는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수영(朴秀永)[1893~196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부터 19일에 걸쳐 안평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5일 대사 교회의 영수 이종출을 비롯하여 교인들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후 3월 16일 이북술 등 1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기도동(...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12일~4월 초순까지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린 가운데 민족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사적으로...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준(李萬俊)[1888~1971]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에서 출신으로, 안평면 대사동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7일 오후 8시경 이양준(李良俊)·권사연(權士淵)·이종출(李鍾出)·김옥돈(金玉頓) 등 15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안평면 괴산동을 출발하여 창길동(倉吉洞)·화령동(花寧洞) 일대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고 자...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배기(李培基)[1892~1974]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출신으로, 안평면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대사동 교회 영수 이종출(李鍾出)과 교인들이 주도하는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16일 이북술 등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기도동(箕道洞)을 거쳐 창길동(倉吉洞)까지 시위 행진을 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부석(鄭富碩)[1885~1942]은 1919년 3월 15일 대사 교회의 영수 이종출을 비롯하여 교인들이 계획한 만세 시위에 찬성하고 오후 7시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3월 16일에는 동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기도동(箕道洞)에서 창길동(倉吉洞)까지 시위를 벌인 후...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장수(鄭長壽)[1899~1953]는 1919년 3월 15일 대사 교회의 영수 이종출을 비롯하여 교인들이 계획한 만세 시위에 찬성하고 오후 7시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3월 16일에는 동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기도동(箕道洞)에서 창길동(倉吉洞)까지 시위를 벌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