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57
한자 朴斗完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8월 2일연표보기 - 박두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7일 - 박두완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독립 만세 시위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14일 - 박두완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6년 11월 26일연표보기 - 박두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박두완 대통령 표창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두완(朴斗完)[1888~1966]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부터 19일에 걸쳐 안평면 대사동 교회의 영수인 이종출(李鍾出)을 비롯하여 교인들이 전개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박두완이종출(李鍾出)·김옥돈(金玉頓)·이양준(李良俊)·이북술(李北述) 등이 주도하는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3월 17일 15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안평면 괴산동을 출발하여 창길동·화령동 일대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다가 자진 해산하였다.

3월 18일 밤에는 다시 이양준(李良俊)·이만준(李萬俊)·김유식(金有式)·김도식(金道式)·이북술(李北述) 등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박곡(朴谷)·석탑(石塔)·신월동(新月洞)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3월 19일에는 괴산동에서 도리원 장날을 기해 전개된 도리원 시위에서 이북술 등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봉양면 사부동까지 만세 시위를 벌이고, 나아가 몽둥이와 돌을 들고 도리원 주재소로 몰려가 그곳을 포위하여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박두완은 1919년 7월 14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8월 5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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