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93
한자 李培基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3월 10일연표보기 - 이배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7일 - 이배기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 독립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14일 - 이배기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4년 11월 4일연표보기 - 이배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 - 이배기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이배기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배기(李培基)[1892~1974]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출신으로, 안평면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대사동 교회 영수 이종출(李鍾出)과 교인들이 주도하는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16일 이북술 등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기도동(箕道洞)을 거쳐 창길동(倉吉洞)까지 시위 행진을 하였다. 17일에는 15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안평면 괴산동(槐山洞)을 출발하여 창길동(倉吉洞)·화령동(花寧洞) 일대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자진 해산하였다. 또한 18일 밤에는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박곡동·석탑동·신월동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일에도 도리원 장날을 기해 전개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도리원 시위에서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봉양면 사부동까지 만세 시위를 벌이고, 나아가 몽둥이와 돌을 들고 도리원 주재소로 몰려가 그곳을 포위하여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배기는 1919년 7월 14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8월 5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6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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