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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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泰址 |
영어음역 | Jang Taej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준옥 |
성격 | 교육자|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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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 |
성별 | 남 |
생년 | 1858년(철종 9) |
몰년 | 1918년 |
본관 | 인동 |
대표관직 | 돈녕부동지사(敦寧府同知事) |
[정의]
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장태지는 1858년(철종 9)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우 장태린(張泰隣)과 함께 경성으로 유학하였고, 1887년(고종 24)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1890년(고종 27)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과 돈녕부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역임하였다. 1894년(고종 31) 낙향하였는데, 고향에 동학농민운동의 여파가 미치자 1895년(고종 32) 치안 유지를 위해 전라도수군절도사 김철규(金澈奎)와 함께 목방문(木榜文)을 부쳐 동학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앞장섰다.
동학농민운동이 잦아들자 고향인 화양면 옥적리에서 성리학을 가르쳐 후학을 양성하였다. 을미사변에 민비가 시해를 당했을 때 참담하다 하여 바깥출입을 금하였고, 한일 병합 이후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독립운동이라 하여 후진 양성에 매진하다가 1918년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42년 화양면 옥적리 신기마을에 가선대부행동돈령장공기적비(嘉善大夫行同敦寧張公紀蹟碑)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