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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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笛里 |
영어음역 | Okje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길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옥적리(玉笛里)는 마상·신기·대옥·소옥·산전마을을 병합한 법정리 이름이자 신기와 소옥마을만을 칭하는 행정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곡화목장이 있던 조선시대에 여러 마을의 목동들이 모여들어 말거리산이라 불렀다. 산자락이 남서쪽으로 길게 뻗쳐 큰 골과 작은골을 이루고, 이 산의 모양이 옥피리를 닮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옥적이라 하였다 전해 온다.
비슷한 형상의 지형이었던 율촌면의 취적(吹笛)마을도 뒷산의 이름이 ‘대통산’으로 대나무통 모양으로 생긴 산의 모양에서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옥적마을의 유래와 함께 옥피리형 지세에 대한 풍수의 설명도 전해오는데, 옥피리형 지세는 자손들이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신비한 힘을 가진 옥피리산의 동쪽 큰 골짜기 마을은 대옥이라 하고 서쪽의 작은골 마을을 소옥이라고 한다.
신기마을은 우리말 땅이름으로 ‘새터’로 불리는 마을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인동장씨가 이주해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이 마을 출신인 학자 장태지(張泰址)는 1858년에 태어나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에까지 올랐다가 낙향하여 향리의 후학들을 가르쳤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옛 초등학교는 1948년 개교하여 50여 년 동안 주변 마을 기초 교육을 담당하다 1999년 폐교되었다.
마상(馬上)마을은 본래 ‘몰산개’라는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고쳐 부르게 된 이름으로, ‘몰’은 말[馬]의 고어(古語)이다. 곡화목장 시절 방목한 말을 몰이하여 잡았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까운 돌산읍 마상포마을의 본래 이름도 ‘몰산개’였다고 전해 온다.
마상마을 남쪽 해안에는 ‘기밀개’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기밀개’는 해안가 마을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구미포(九尾浦)’라고 표기하였다. 석양과 어우러진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산전(山田)마을은 곡화목장에 있었던 네 군데의 송전(松田) 중 한 곳이다. 송전은 널(관)이나 집을 짓기 위한 목재, 배를 만들기 위한 선재 등 좋은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지정하여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고 가꾸었던 곳으로, 송전의 나무를 함부로 벤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던 기록이 『난중일기(亂中日記)』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타난다.
[형성 및 변천]
밀양박씨·인동장씨·전주이씨 등이 처음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조선시대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옥적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옥, 소옥, 신기, 논골, 마상 기밀개를 병합하여 법정리인 옥적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창무리와 사이에 있는 비봉산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신기마을 남쪽에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마상마을 서쪽으로는 포구가 있다.
[현황]
2022년 말 현재 면적은 11.94㎢이며, 총 323세대에 인구 558명[남자 285명,|여자 27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산전·논골 등의 마을이 있다. 여수시청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북쪽으로 전어로 유명한 감도마을과 접하고, 남쪽은 화동리, 동쪽은 비봉산과 벌곡재를 경계로 면 소재지인 나진리와 접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을 주업으로 하지만 소득 작물이 적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없다. 화양면의 경우에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은 어촌계가 형성되어 주민 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만 옥적리는 포구가 있는 마상마을을 제외하고는 바다와 인접하지 않아 농업과 축산업을 하는 농가가 많은 편이다.
2021년 화양면 옥적지구 방조제가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년 국가지방관리 방조제 개보수사업 신규착수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올해까지 지역주민 의견수렴 및 세부설계를 완료하고, 2022년 착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