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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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春 |
영어음역 | Jeong Chun |
이칭/별칭 | 사화(士華),송암(松巖),충의(忠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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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
성별 | 남 |
생년 | 1555년(명종 10) |
몰년 | 1594년(선조 27) |
본관 | 창원 |
대표관직 | 성주판관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창원. 자는 사화(士華), 호는 송암(松巖). 성균관 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반(丁舜班)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여했던 정철(丁哲), 정린(丁麟)은 종형이고, 정대수(丁大水)는 종질이다.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철과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서 유격장(遊擊將)이 되었다. 동년 7월 정철, 정대수와 함께 한산도전투에서 적을 대파하고 포위된 형 정철을 구출하는 전과를 올려, 그 공으로 성주판관에 임명되었다. 1594년(선조 27)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조방장(助防將)으로 거제·옥포 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하였다. 이러한 사실(史實)이 『공신록(功臣錄)』, 『창의록(倡義錄)』, 『삼강록(三綱錄)』 등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훈일등공신(宣武原從勳一等功臣)에 책록되었다. 1847년(헌종 13) 가곡에 사충사(四忠祠)를 세워 향사하였다. 1862년(철종 13) 병조참판에 증직되고, 1866년(고종 3) 병조판서의 증직과 함께 충의(忠義)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후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으로 사충사를 이설하면서 이순신 장군을 주향으로 하고, 정씨사충을 병사(倂祀)하여 오충사를 건립하고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