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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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구정, 설,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정(元正), 원신(元新), 원조(元朝),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은정 |
성격 | 세시 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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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일 |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명절.
[개설]
설날 은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부르는데 모두 한 해의 첫 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태양력 정책에 따라 신정(新正)으로 일컬어지는 양력설이 등장하였고, 상대 개념으로 전통적인 태음력에 의한 설날은 구정(舊正)이라고도 하였다.
일제의 식민 정책에 의해서 생겨난 신정과 구정에 대한 혼란은 해방 이후 1954년 대통령령으로 발효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에 따라 양력 1월 1~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게 되면서 가중되었다. 음력 설날에는 이중 과세(二重過歲)[이중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모든 공공 기관에는 정상 근무를, 일반 국민들에게는 휴업 금지 등을 강요하던 때도 있었다. 1985년이 되어서야 음력 설날은 공휴일로 지정되고 민족 대명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중 개정령」은 음력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설날 당일 하루를 공휴일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4년 뒤인 1989년에 민속의 날을 ‘설날’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령이 발효되면서 비로소 음력 설날이 민족의 대명절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때부터 음력 설날 휴일은 사흘로 늘었으며, 양력설은 사흘에서 이틀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설날 은 묵은해를 보내고 좋은 새해를 맞이하라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이루어진다. 집안의 조상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의미로 지내는 ‘차례(茶禮)’에는 떡국과 탕, 과일, 술, 포, 식혜 등을 차린다. 차례를 지내는 조상의 범위는 돌아가신 아버지 내외와 할아버지 내외, 증조할아버지 내외, 고조할아버지 내외의 4대조까지이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상에 올렸던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데 이것을 ‘음복(飮福)’이라 한다. 조상신이 드셨던 음식을 받아 먹음으로써 그 덕을 물려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차례’가 돌아가신 분들에게 올리는 예의라면 ‘세배’는 살아있는 어른들에게 공경의 마음을 표하는 예의이다. 그러면 어른들은 건강을 빌어주거나 소원 성취하라는 등 좋은 말을 해주는데 이것을 ‘덕담(德談)’이라 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의 설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 나타나 있다. 『수서』와 『구당서』의 신라 관련 기록에는 왕권 국가로서의 설날의 면모가 잘 나타나는데, 즉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 신을 배례한다.”는 기록은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고려사』에도 설날[元正]은 상원(上元)·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와 함께 9대 속절(俗節)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였던 것이다.
『동문선(東文選)』·『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양촌집(陽村集)』·『가정 선생 문집(稼亭 先生 文集)』·『도은 선생 문집(陶隱 先生 文集)』 등 문집에 기록된 시(詩)에는 정월 초하루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나누는 새해 인사, 연하장 보내기, 악귀를 쫓기 위해 부적을 문에 붙이기,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등의 세화 보내기 등의 여러 가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삼국 시대에도 이미 설의 세시 풍속이 상당히 있었지만 고려 시대에 와서는 더욱 다양해졌으며 이는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설을 비롯한 각 달의 세시 풍속은 대체로 고려 때 정착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유교 사회인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조상 제사라 할 수 있는 설 차례가 보다 강화된 측면도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는 설날이 되면 몸단장을 하고 부모님께 세배를 올린다. 만약에 시조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먼저 문밖에서 인사를 한 후 세배를 올리고 형제들끼리도 주고받는다. 세배를 한 후에 차례 지낼 준비를 하는데, 차례에 앞서 세배를 먼저 하는 까닭은 죽은 조상 보다 살아있는 조상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촌리에서는 떡국 제사를 지내는데, 떡을 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밥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성심껏 장만한 음식으로는 감주, 묵, 구과 등이며 식혜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지는 약 30년 전부터라고 한다. 예전에는 쌀이 없어서 좁쌀로 식혜와 감주를 담갔다고 한다. 사촌리에서 식혜는 엿기름, 곡물뿐 아니라 채 썬 무, 고춧가루, 배, 생강을 넣은 것이고 감주는 엿기름과 쌀로 만들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설날에는 메밀묵을 했는데, 형편 어려운 집에서는 떡국을 썰어 넣어 손님 접대를 하기도 했다. 사촌리에서는 대부분 밭농사를 짓기 때문에 쌀이 없어 떡국조차도 좁쌀을 빻아 ‘좁쌀 떡국’을 해먹기도 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차례를 모시고 나면 초이틀쯤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데 여자들은 돌아다니면 재수 없다고 하여 마을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대신 집에 어른이 계시면 세배하러 오는 손님들 접대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보통 세배는 남자들이 다녔다고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공정 3리 용소 마을에서는 떡국 제사를 지내는 집도 있지만 밥 제사를 지내는 집도 많다고 한다. ‘위수가 죽은 조상이 많고 어지러우면 떡국 제사를 지내고, 그렇지 않으면 밥 제사를 지낸다’는 옛 말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설 제사 때 모실 조상이 많은 가정에서는 떡국 제사를 지내고, 조상이 적은 경우는 밥 제사를 지낸다고 볼 수 있다. 용소 마을에서는 설날 새벽 세 시경이면 첫 닭이 울고, 그러면 가족들이 일어나 설빔을 차려 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린다. 대가족의 경우 맏아들부터 시작하여 순서대로 어른에게 세배를 한다. 형제간에도 맞절을 하는데 주로 형제간 나이 차이가 많은 경우이다. 차례 지낸 후에는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며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는데 외가나 타인에게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배를 드리러 갈 때는 집에서 마련한 떡국을 비롯한 설음식을 쟁반에 담아간다. 세배를 한 후 그 집에서 음식을 내어 오면 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집을 나오면 그 댁에서는 떡국을 비롯한 제사 음식을 차려서 쟁반에 받쳐 집에 가져가도록 한다. 이 음식은 다음에 세배 드릴 집에 내어 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