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83
한자 申震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10월 5일연표보기 - 신진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년 18일 - 신진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독립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5일 - 신진수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6년 4월 1일연표보기 - 신진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신진수 대통령 표창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진수(申震洙)[1885~1946]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의성읍 장날 전개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2일과 13일 대리동 교회 목사 박낙현과 교인 윤영주(尹營柱)·오상룡(吳相龍) 등이 3월 18일 의성읍 장날에 만세 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박낙현·윤영주·윤용구·오상룡 등과 함께 태극기와 붉은 글씨로 ‘대한국 독립 만세’라고 쓴 작은 기(旗)를 수십 개를 만들었다.

18일 오후 3시 경 주동 인물들과 함께 두루마기 속에 태극기를 감추고 시장으로 진입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눠주며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조문·의성·안평 등지 각 면의 예수교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운동이 벌어진다는 정보를 알고 아침부터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그리고 경찰은 시장을 폐쇄하고 용의자 15명을 예비 검속하고, 9명을 구속하였다.

신진수는 1919년 4월 5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 받았고, 4월 25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으며, 5월 22일 고등법원에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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