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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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益輝 |
이칭/별칭 | 김익하(金益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익휘(金益輝)[1885~1959]는 김익하(金益夏)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출신으로, 의성군에서 최대 규모로 전개되었던 안평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대사동 교회 집사인 이화실로부터 “만세 운동을 하면 조선이 독립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인 창길동까지 행진하였다. 이 시위는 3월 15일부터 4일간 계속되었고, 19일에는 도리원 장날 장터에서 대대적 시위를 벌이고 시위 군중을 규합하여 의성경찰서로 몰려가 구속 중인 동지들을 구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총으로 무장한 도리원 주재소 일본 순사들이 출동하여 저지하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 군중은 몽둥이와 돌멩이를 가지고 주재소로 몰려가 포위하고,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하며 격렬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주재소에 있던 일본 경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를 낸 채 시위 군중은 일시 해산되었다. 김익휘는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1919년 5월 20일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청에서 제령(制令) 7호 위반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1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