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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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岩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마강열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윤암리라는 이름은 1914년 윤곡동, 서암동, 차동을 병합하면서 윤곡과 서암의 한 글자씩을 따서 붙여졌다.
자연 마을 윤곡동은 1652년 남해준(南海準)과 그의 아들 진주 목사(晉州 牧使) 남몽뢰(南夢賚)가 점곡면 월촌(月村)에서 이주한 마을이다. 옛날 중국 상(商) 탕왕을 보좌하여 하(夏)의 폭군 걸왕(桀王)을 타도한 성현 이윤(伊尹)과 이천(伊川)을 평소 흠모해서 마을 이름을 윤이골[尹伊谷], 윤이실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것을 줄여 지금은 윤곡(尹谷)[윤골으로 부르고 있다. 서암동은 1550년경 권성이 사촌리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는데, 마을 서쪽에 큰 바위가 있어 서암(西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차동은 15세기 중엽 서한경(徐漢卿)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정착하여 그로부터 약 30년 후 이윤배(李潤培)가 들어와 구암(龜岩)과 사촌(沙村)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차동이라 불렀다 한다. 각골[角谷]은 마을 뒤편에 뿔같이 생긴 산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의성군 점곡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암동, 윤곡동, 차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점곡면 윤암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해 윤암동을 윤암리로 개칭하였다. 현재 차동은 윤암 1리, 윤곡동은 윤암 2리, 서암동은 윤암 3리로 편제되어 있다.
[자연 환경]
남쪽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온 하천이 북쪽으로 흘러 북서쪽에 이르러 미천으로 유입된다. 미천 유역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으며, 농경지 남쪽으로 비도재를 배경 삼아 아담하게 마을들이 입지하고 있다.
[현황]
윤암리는 점곡면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현재 면적은 10.0㎢이며, 총 123가구에 248명[남자 117명, 여자 140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옥산면 정자리와 경계를 하고, 서쪽으로는 서변리와 명고리, 남쪽은 구암리, 북쪽은 동변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에는 윤곡, 차동, 각골, 새마을[새마] 등이 있다. 지방도 914호선이 마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의성읍으로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윤암 삼거리에서 지방도 79호선과 연결된다. 농촌 마을로서 벼농사를 하지만 주곡 이외에 고추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의성 소계당은 조선 시대 가옥으로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6호로 지정되었다. 윤암 2리 마을 회관 부근 의성 이계당은 이계(伊溪) 남몽뢰[1620~1681]가 강학하던 곳으로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43호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