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송을 들었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 그 뜻을 받들어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몸을 봉양하였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약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데 갑자기 내린 비로 위천 이 넘쳐 건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돌연 물이 줄어들어 무사히 약을 드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의 효심에 감복한 것이라고 하여 이후 위천 을 효수(孝水) 라고 부르기도 했다. 만년에는 서실을 지어 그 곳을 스스로 위애 라고 부르며 자신의 호로 삼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내남산(內南...
.... 시묘를 하는 중에 단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시묘하는 3년 동안 흘린 피눈물로 상석(床石)이 붉게 물들었다. 시묘를 마친 뒤에는 아버지의 묘소가 건너다보이는 위천(渭川) 언덕에 도호정(道湖亭) 이라는 정자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묘소를 향해 예를 올렸다. 당시 도호 마을 이 속했던 상주(尙州) 의 수령이 그의 행적을 전해 듣고...
...덕분으로 어머니는 90세가 되도록 천수를 누렸다. 그 사이에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나서는데 홍수로 내를 건너지 못하여 한탄하고 있는데 위천(渭川) 이 거꾸로 흘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구하기 어렵다는 낙동강 의 잉어가 얼음 구멍에 뛰쳐나와 좋아했는데 갑자기 솔개가 나타나 낚아채어 가버렸다. 그런데 집에 와...
...현감으로 재임한 적이 있었다. 비안현 에서 선정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널리 명성을 떨쳤다. 그래서 그 이후에 재임했던 이귀응(李龜應) 현감과 함께 위천 가의 절경으로 알려진 곳인 비안면 용남리 의 부흥대 에 송덕벽각(頌德壁刻)이 나란히 새겨져 오늘까지 전해 오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에는 번암 의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