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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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山洞月谷宅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23-20[대산리 42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도영 |
건립 시기/일시 | 1911년 - 대산동 월곡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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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0년 - 대산동 월곡댁 사당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0년 - 대산동 월곡댁 별당 증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6월 20일 - 대산동 월곡댁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대산동 월곡댁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23-20[대산리 422]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한옥 |
정면 칸수 | 5칸[사랑채] |
측면 칸수 | 2칸[사랑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개설]
대산동 월곡댁(大山洞月谷宅)은 20세기 초반에 건립된 민가의 양식과 특징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월곡댁’이라는 집의 이름은 창건자 이전희(李銓熙)의 부인이 성주군 초전면의 월곡동에서 시집온 것에서 연유한다.
[위치]
대산동 월곡댁은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23-20[대산리 422번지] 성주 한개 마을 제일 안쪽 높은 곳에 있다. 성주소방서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져 있으며, 영취산 자락에 자리한다. 주변에 대산동 교리댁(大山洞校理宅)과 성주 대산리 도동댁(星州大山里道東宅), 성주 대산리 진사댁(星州大山里進士宅) 등이 있다. 성주 한개 마을 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쪽으로 성주 응와 종택(星州凝窩宗宅)[북비 고택(北扉故宅)]의 대문 진입로가 나타난다. 가옥 초입에 놓인 둥근 돌에 ‘북비 고택’임을 나타내는 비석이 있다.
[변천]
대산동 월곡댁은 1911년에 이전희가 처음 건립한 가옥이다. 1930년에 가묘와 사당을, 1940년에는 별당을 증축하였다.
[형태]
건물들은 대문채과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고방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건물은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중심에 안마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왼쪽 대청 2칸은 문을 달아서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게 하였다. 또 중문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안채로 통할 수 있으나, 별채는 사방이 담으로 막혀 있어 폐쇄성이 강하며 중문을 거쳐야만 안채로 출입할 수 있다. 사랑채는 ‘一’ 자형 건물로 마을 높은 곳에 있으며 안마당이 매우 넓다. 사랑채 옆에 안채가 있고, 그 앞에 담장과 중문채를 두어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그 앞에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별채가 있다.
안채는 ‘ㄱ’ 자형이며, 동쪽의 곳간채와 남쪽의 중문간 행랑채와 함께 튼 ‘口’ 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안채의 공간 구조는 규칙적이고 정교하다. 동쪽에 반 칸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뒷간과 다락 등이 있어 구성이 특이하다. 중문간은 중문과 사랑채 사이 공간에 담을 쌓아 내담·외담을 만든 것이 흥미롭다. 원래는 안채의 남쪽에 중문채가 있었다고 한다. 사랑 마당을 지나 중문간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출입문이 있는데, 이 문으로 들어서면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인 별채가 있다. 집주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안채에서는 안주인이, 사랑채에서는 바깥주인이 생활하였으며, 별채에서는 바깥주인의 소실이 생활하였다고 한다.
[현황]
대산동 월곡댁은 1983년 6월 20일에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산동 월곡댁은 20세기에 들어와 지은 건물이면서도 각 건물이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안채도 튼 ‘口’ 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성주 한개 마을의 공통된 특징을 잘 지니고 있다. 성주 지역 양반들의 주생활 양식과 건축사, 민속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