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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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山洞校理宅 |
영어공식명칭 | Daesandong gyoridaek |
이칭/별칭 | 동계 종택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23-12[대산리 4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도영 |
건립 시기/일시 | 1760년경 - 대산동 교리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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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6월 20일 - 대산동 교리댁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대산동 교리댁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23-12[대산리 411] |
성격 | 전통 가옥 |
정면 칸수 | 5칸[사랑채]|7칸[안채] |
측면 칸수 | 2칸[사랑채]|1칸[안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대산동 교리댁(大山洞校理宅)은 조선 영조 때 영해부사(寧海府寧)를 거쳐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사헌부(司憲府) 집의(執儀) 등을 지낸 이석구(李碩九)가 지은 집이다. ‘교리댁’이란 창건주 이석구의 후손 이귀상(李龜相)이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를 지내 붙여진 이름이다. 이귀상은 1882년(고종 19)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장원 급제한 후 1885년(고종 22)에 동학교수(東學敎授)가 되었고, 1890년(고종 27)에 장령(掌令)을 지냈다.
[위치]
대산동 교리댁은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23-12[대산리 411번지]에 있다. 성주소방서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져 있으며 영취산의 자락에 자리한다. 주변에 대산동 월곡댁(大山洞月谷宅)과 성주 대산리 도동댁(星州大山里道東宅), 성주 대산리 진사댁(星州大山里進士宅) 등이 있다.
[변천]
가전(家傳)에 의하면, 대산동 교리댁은 1760년(영조 36)경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영조 때 처음 지었으며, 19세기에 사랑채 등을 다시 고쳐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형태]
경사진 자연 지형을 잘 활용하여 지은 집이다. 넓은 대지 위에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중문채, 서재, 사당 등 6동의 건물이 서로 떨어져 배치되어 있다. 창건 당시에는 안채 앞에 동쪽으로 찻간과 방, 헛간 등 3칸이 있었고 남쪽에는 5칸의 중문채가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 서쪽을 향한 대문 왼쪽에 서재가 보이고, 대문 안쪽에 사랑채가 있는 마당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의 ‘一’ 자형 건물이며, 그 안쪽에 ‘ㄱ’ 자형 안채가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집으로, 왼쪽 대청 2칸은 문을 달아서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게 하였다. 동쪽에 아궁이가 있으며 뒷간과 다락도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또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의 집으로,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대청 양쪽에 방이 2칸씩 있으며, 동쪽에 부엌이 배치되어 있다.
[현황]
대산동 교리댁은 1983년 6월 20일에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산동 교리댁은 ‘一’ 자형의 정침을 중심으로 각 건물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튼 ‘口’ 자형을 이룬다. 각 건물이 독립된 것은 경상북도 가운데 성주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사례이다. 이는 태백산맥(太白山脈) 일대의 ‘口’ 자형과 남부의 ‘一’ 자형 민가를 섞어 놓은 배치로, 민가 유형의 지역 간 전파·교류·절충 등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