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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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点錫 |
영어음역 | Im Jeom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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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
성별 | 남 |
생년 | 1896년 9월 17일 |
몰년 | 1975년 12월 29일 |
대표경력 | 3·1운동 참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임점석은 진평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거사 당일 오후 8시 마을 뒷산에 300여 명이 모여 민족자결의 취지를 설명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후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자 일본 경찰이 진압에 나서 주동 인물은 검거되고 군중들은 강제로 해산을 당하였다.
3월 14일에 200여 명의 동민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전개하였을 때 임점석도 참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임점석을 비롯하여 이상백, 이내성, 이영래, 서천수, 이윤약, 임삼선, 임용섭 등 많은 사람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임점석은 징역 12월(이상백 징역 2년, 이내성 징역 1년 6월, 이영래·임용섭 징역 12월, 서천수·임삼선 징역 6월)의 언도를 받고 공소하여 6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월로 감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