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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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 |
영어공식명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혜원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개로 감정을 표현한 작품.
[개설]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과 관련 있는 사적, 자연, 인물에 관한 예술적인 묘사와 동작구에서 탄생하거나 활동한 인물의 문학 작품을 말한다. 동작 지역과 관련이 있는 문학 작품들은 크게 구비문학과 기록 문학 두 갈래로 구분하였다. 구비문학은 설화·민요·무가·속담 등이 있고, 기록문학은 한시(漢詩)와 가사(歌辭)가 주종을 이룬다. 인물로는 정조(正祖)로부터 세조(世祖) 때의 문신 이승소(李承召)[1422~1484], 유만공(柳晩恭)[1793~1869]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인들이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인연이 있으며, 이승소와 유만공 등의 문인과 관련된 단체, 묘소, 사적들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동작구의 구비 문학]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구비 문학은 설화·민요·무가·속담 등이 있고, 본동·노량진동·상도동·흑석동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인터뷰하여 채록하였다.
구비 문학의 특징은 다섯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구비문학은 말로 전승하는 문학이며 구연성(口演性)을 지닌 문학이다. 말로 존재하기 때문에 일회기적이며, 현장성이 중요하다. 『삼국유사』나 『대동야승』 같은 문헌에는 다량의 구비 자료가 있는데, 채록하여 기재한 것이므로 구연성이나 현장성은 없다. 하지만 그 본질을 감안하여 구비 문학으로 취급한다.
둘째, 구비 문학은 언중이 함께 창작한 것으로 민중의 문학이다. 구비 문학의 구연자는 개인이지만, 구비문학이 보편적인 작품으로 형성되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첨삭되는 과정을 반복하여야 한다. 「청산별곡」, 「가시리」, 「동동」처럼 작자는 모른 채 공동작으로 구전되다 문헌에 기재된다. 이러한 작품 안에는 민중의 삶의 모습과 사상이 용해되어 있다.
셋째, 구비 문학은 간결성과 진실성을 지닌 작품이다. 구비 문학은 구두로 전승되기 때문에 형식이 간결하여야 한다. 구비 문학 중 서사무가나 판소리는 비교적 구성이나 내용이 복잡하지만, 소설이나 희곡처럼 입체적 구조를 지니지는 않는다. 또한 구비 문학이 오랫동안 구전되면서 소멸되지 않으려면, 형식이 간결하고 언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실성을 지녀야 한다.
넷째, 구비 문학은 민중의 역사이거나 역사적인 창조물이다. 구전되는 이야기에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이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설화와 같은 장르는 이야기 출현 시기, 사건과 인물에 대한 역사적 정보, 증거물 등을 제시하므로 그 자체로 사료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구비 문학은 가장 한국적인 문학이다. 구비 문학은 다수의 민중이 공유하고 있는 문학이기에 우리 민족의 삶을 충실히 표출한 문학이다.
이러한 구비 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은 일찍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의 『서포만필(西浦漫筆)』, 홍만종(洪萬宗)[1643~1725]의 『순오지(旬五誌)』,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조선지풍론(朝鮮之風論)』,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조선시론(朝鮮詩論)』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구비 문학은 설화 「장화홍련」, 「콩쥐팥쥐」, 「심청전」, 「도깨비 이야기」 등과 같이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작품도 있지만, 「용양봉저정 유래담」, 「박태보 설화」처럼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특색이 잘 나타난 작품도 있다. 민요는 한강 변이라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노들강변」, 「뱃노래」, 「한강수 타령」 등이 동마다 나타났다. 설화와 민요 모두 구연성, 역사성, 간결성, 한국적인 특징 등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동작구의 기록 문학]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기록 문학 작품은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이 다수 전하여지는데, 그중에서도 한시(漢詩)와 가사(歌辭) 문학이 주를 이룬다.
한시(漢詩)로는 정조(正祖)가 아침 일찍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노량진에 있는 용양봉저정에 올라 지은 「용양봉저정」이 있다. 정조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의 헌륭원에 가던 길에 용양봉저정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한시에는 용양봉저정의 풍경과 남행(南行)길의 장엄함이 잘 나타나 있다.
세조(世祖) 때의 문신 이승소(李承召)는 한강을 바라보는 자신의 소회를 읊었으며, 인조(仁祖) 때의 문신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1595~1645]은 노량강 위에 나와서 친구를 전송하면서 한시를 지어 별리(別離)의 소감을 “십 리나 되는 모래밭에 부슬비 새로 개이니, 석양 녘에 이별하는 마음이 외로운 배에 가득하구나.”라고 기록하였다.
한시로 한강의 풍속을 남긴 유만공(柳晩恭)[1793~1869]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노량진에서 행하여졌던 조선 후기의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 추위에 새남신(賽南神)을 맞이해 가니/손석(孫石)의 찬바람이 정히 사람을 괴롭게 한다/다투어 건너가는 여러 아가씨는 무슨 큰일인지/노량진 무당 마을은 시장과 같다.” 새신(賽南)은 새남이라고 하는데, 새신은 조선 후기 서울 지역에서 행해졌던 망인천도제의(亡人薦度祭儀)이며 지노귀굿과 혼용하기도 한다.
다음은 한말(韓末)의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는 1903년 초가을, 기울어가는 조국의 앞날을 근심하여 서울을 찾아오다가 노량진 남안에 있는 박기준(朴基俊)의 정자에 올랐다. 그리고 그 소회를 “노량 강가의 출렁이는 물결 새로 가을을 맞이한 것이 정자와 여관들 어디 가도 하루를 놀만하구나./ [중략] /고깃배 들어와도 닭 개들 놀라지 않는데, 이무기와 용은 아마도 철마(鐵馬) 소리를 이상히 여기리.”라고 전하였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가사(歌辭)로는 두 편이 전하고 있다. 한 편은 정조(正祖)가 수원의 헌륭원에 참배갈 때의 풍광을 묘사한 「수원능행행가(水原陵幸行歌)」이며, 또 한 편은 관악산의 지맥과 관악산을 유람하는 광경을 묘사한 「관악산유람가 부삼성산(冠岳山遊覽歌 附三星山)」이 전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