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능행행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1273
한자 水原陵幸行歌
영어공식명칭 King’s visit to royal tomb in Suw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간행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 「수원능행행가」 『역대가사문학전집』13에 수록
성격 능행가사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 노량나루를 지나가던 정조의 능행 행차의 성대함을 소재로 한 능행가사.

[개설]

「수원능행행가」는 능행일기로 유일한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1795]와 함께 능행만을 별도로 하여 본격적인 소재로 다룬 드문 작품이다. 정조의 화성 능행 행차를 묘사하는 대목으로 시작하여 왕의 행차를 따라가며 수행하는 무관 별군직 관리들의 차림새를 하나하나 묘사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원능행행가」는 작품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전해지고 있다.

[구성]

「수원능행행가」의 첫 부분은 정조의 능행 행차와 노량나루에 가설했던 주교(舟橋), 즉 배다리의 성대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뒤를 이어 정조의 능행을 수행하는 ‘별군직’, 즉 무관들의 차림과 행장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묘사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품의 뒷부분은 일실되어 전하지 않는 불완전본이다.

첫 행에 ‘임금이 수원의 능에 거동하실 때’로 시작하여 ‘노들강변의 배다리’ 묘사와 임금이 ‘용양봉저정에 좌정’하신 광경이 바로 이어진다. 배다리의 광경을 묘사하면서 연쇄적으로 나오는 ‘부개소, 백송판, 세(細)모래, 황토, 난간, 군막, 홍살문, 홍양산’은 배다리의 견고함과 성대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소재들이다. 여기에 임금을 모시는 ‘연무 별군직’의 의장 묘사가 이어진다. ‘별군직 거동 보아라’로 시작하는 이 대목부터는 ‘평미리, 전립, 밀화 갓끈, 붉은 깃발(猩猩氈), 쾌자, 요대, 표신, 저고리와 조총 바지, 벌통 행전, 서피 버선, 징을 박은 갑옷, 쌈지와 향낭, 호패, 요패, 환도, 사슬’ 등을 나열하면서 수행 군관들의 화려한 의장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

선왕쥬 슈원능 거동헙실ᄯᆡ / 노들강변에 부게쇼 ᄆᆡ고 부게쇼 우히 박송판 ᄭᅡᆯ고 / 박송판 우히 셰모ᄅᆡ 펴고 셰모ᄅᆡ 우히 황토 펴고 /

황토 우히 계슈나무 난간 치고 / 난간 안에 어군막(御軍幕) 치고 / 어군막 압헤 홍살문 셰고 / 홍살문 압헤 홍냥산도 산이요 용양봉자졍에 젼좌ᄒᆞ시고 / 연무 별군직(別軍職) 입시들 ᄂᆡ라 /

별군직 거동 보아라 평미리 벙거지 / 조밀화(造蜜花) 귓든 슌밀화(純蜜花) 파영 셩셩젼(猩猩氈) 겹징두리 / 남일광단 안 밧치고 / 키거튼 공젹 우의 함흥 징자 양반 자리 /

모단 젼복 셰란 쾌ᄌᆞ / 슈논 이칭요ᄃᆡ 동ᄀᆡ ᄎᆞ고 ᄑᆡ검ᄒᆞ고 / 능쥰마 타고 표신(標信) 안고 / 어젼 슐령슈(巡令手) 윤한의 불너라 모단 젼건 흥더그레 /

졀구통 져고리 죠춍 바지 / 벌통 ᄒᆡᆼ젼 셔피 버션 / 사갑춍 메토리 / 장창 밧고 굽차 밧고 / 도리징 잣징 슈단징 박고 / 좌우 협노로 ᄆᆡ부리징을 / 젼ᄇᆡ 징으로 좌르륵 박고 /

ᄊᆞᆷ지 ᄎᆞ고 쥬머이 차고 / 향낭 ᄎᆞ고 호ᄑᆡ ᄎᆞ고 / 요ᄑᆡ ᄎᆞ고 환도 사슬 지올바 차고 / 망건 뒤에 함우 ᄭᅩᆺ고 / 홍녕긔를 잣게 밧고 /

션상 훌련ᄃᆡ장 후샹 어영ᄃᆡ장 / 즁앙 금군별자 별ᄃᆡ 별쵸 가젼가후 / 창검장 좌우 번무예 통장게라 /

ᄎᆞ지 션젼관 교룡긔 ᄎᆞ지 / 션젼관 쵸요긔 ᄎᆞ지 션젼관 / 젼ᄇᆡ ᄎᆞ지 /교련관 ᄃᆡ긔슈 ᄎᆞ지 / 교련관 ᄃᆡ령ᄒᆡᆺ소

[특징]

「수원능행행가」정조의 수원 능행의 첫 출발 지점이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에 있는 노들강변용양봉저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배다리의 성대함과 수행 군관들의 행차 모습의 화려한 묘사가 연쇄적인 단어의 나열과 대구법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수원능행행가」는 작품의 일부만 전하고 있는 불완전본이지만 정조의 수원 능행 당시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의 노들강변에서의 배다리가 대단한 성황을 이루는 볼거리였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또한 정조배다리를 건너가 휴식을 취하던 용양봉저정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어 정조의 능행 행차가 항상 정해진 의례와 여정대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정조를 ‘선왕(先王)’이라고 표현한 점을 보면 정조 당대가 아니라 후대에 쓰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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