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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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鳳徵 |
영어음역 | Yi Bongjing |
이칭/별칭 | 명서,은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명서(鳴瑞), 호는 은봉(隱峯). 1640년 지평을 지낸 이완(李完)의 첫째아들이다.
[활동사항]
이봉징은 1675년(숙종 1)에 증광시(增廣試)에 장원하여 수찬(修撰)·사인(舍人)을 거쳐 1688년(숙종 14)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제수받았다. 순천이나 여수가 전라좌도수군절도영이 율촌에 밤이 많다 하여 세금을 가혹할 정도로 따로 거두어들이자 이봉징 부사는 밤나무를 모두 베어내 세금을 없애주었다.
1년 동안 순천부사로 재직한 이봉징은 부수찬·응교 등을 거쳐 1691년에는 개성유수로 나갔고, 이듬해에는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었다. 이후 갑술옥사로 남인들이 제거당할 때 파직되었다가 형조참판으로 다시 정권 전면에 서게 되었다. 이봉징은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의 일로 임금에게 상소했다가, 도리어 지도(智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신세가 되었다가 1705년 배소에서 세상을 떴다.
[학문과 사상]
이봉징은 벼슬 초기 사헌부와 의정부에 있으면서 금리(禁吏)의 작폐 문제와 전라도에 과중하게 부과된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공적을 남길 정도로 선정을 폈다. 본래부터 성품이 곧고 백성을 위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올곧은 선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