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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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舞踊 |
영어의미역 | Danc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미영 |
[정의]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태동기(1950~1960)]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대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1950~1960년대 여수의 무용계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1949년과 1953년에 열렸던 조용자와 김미자의 무용발표회는 당시 여수 지역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연만으로 지역민과 무용과의 거리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개인적인 활동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여수 지역에서 무용 꿈나무들이 양성되기 시작한 것은 1959년 10월에 김종남이 무용연구원을 개설하면서부터이다. 이어서 1960년에 신병식이 연출한 창작무용극 「에밀레종」이 무대에 오르면서 여수의 무용은 태동기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성장기(1970~1980)]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 도약이 대명제로 급부상했으나, 문화예술에 대한 동경과 욕구도 강하여 문화계 전반에 걸쳐 질적·양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무용계 역시 1977년 여수예술제가 시작되면서 꾸준히 창작무용을 발표하며 지역 예술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갔다.
이에 앞서 여수시 문화원은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매년 호남무용경연대회를 주최하여 여수 지역 무용인뿐만 아니라 호남 무용인들에게 공연의 장을 제공하는 한편, 무용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켰다.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되어 여수 지역 무용인들은 1981년 한국무용협회 여수지부를 결성하고 지역 무용의 활성화를 도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은 무용 인구의 열세와 영세한 예술 환경 등에 발목이 잡혀 개인 위주, 지역 위주의 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도약기(1990~ )]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여수 지역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국립발레단과 박준희무용단, 김화례무용단 등의 초청공연이 잇따라 열리며 지역민들에게 수준 높은 무용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특히 1988년 여수를 처음 찾은 국립발레단은 그후 매년 한 번씩 「지젤」, 「최태지의 해설이 있는 발레」, 「백조의 호수」 등의 작품을 공연하여 여수 지역 무용이 활성화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여수 지역 무용인들 역시 무용발표회 수준을 넘어 전국무용제에 참가할 정도의 기량을 과시하였다. 이는 1991년에 정식 인준을 받은 한국무용협회 여수지부의 출범에 힘입은 것으로, 김숙희가 「가슴 달린 서랍을 열고」란 작품으로 1997년 전국무용제에 참가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장미영이 「꿈꾸는 바다」로 전국무용제에 출전,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크고 작은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06년 부터는현재까지 장미영 무용단은 전라남도 무대공연작품공연을 통해 여러 창작작품들을 시민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