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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573
한자 花煎-
영어의미역 Flower-pancake Folk Game of Sinwol-dong and Sonjukdo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동|삼산면 손죽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시기
예능보유자 공태평|박당옥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봄에 부녀자들이 화전을 부쳐 먹으며 노는 놀이.

[개설]

화전놀이는 삼월 삼짇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력 3월 3일을 삼짇날 혹은 상사일(上巳日), 중삼일(重三日)이라고 한다. 이 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고, 진달래가 만발하며 나비가 날아든다 하여 제액(除厄)의 의미로 동천에 나가 제비맞이, 화전즐기기 등으로 하루를 즐긴다.

특히, 부녀자들은 산에 만발한 진달래꽃을 따서 전을 지지며 음식을 장만했고, 이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돈다고 하여 들에 나가 음식을 준비하면서 도랑에 흐르는 물로 머리를 감기도 하였다. 남자들은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하여 시를 짓거나 노래를 읊기도 하였다.

[연원]

『삼국유사(三國遺事)』 김유신조와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속악(俗樂) 양주편(楊州篇)에는, 매년 봄에 남녀가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고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화전놀이는 양반 부녀자들에게 가장 기품 있고 풍류적인 놀이였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쪽으로 올수록 화전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성행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1592년 2월 19일 글을 보면 “오늘은 순시를 떠나 백야곶[현 여수시 화양면] 감목관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산천에는 꽃이 활짝 피어 좋은 경치를 이루고 있어 기생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자연을 즐기다가 저물어서야 떠나갔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1593년 3월 3일 일기에도 “아침에 비가 왔다. 오늘은 답청절(삼짇날)인데 흉악한 적들이 물러가지 않으므로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 있다”라고 하는 답청절의 아쉬움을 술회하고 있다.

[놀이도구 및 장소]

여수에서는 신월동손죽도의 화전놀이가 유명했다. 신월동 신근마을의 화전놀이는 그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 삼짇날을 전후하여 중양일을 받아서, 그 해의 동계유사가 주간이 되어 가가호호 방문하여 생활 정도에 따라 비용을 갹출하여 술과 음식을 장만한다. 당일 오전 10시경 남자들은 뒷산 꽃바위 주변에 천막을 치고, 부녀자들은 서쪽 등너머에 있는 쌍바위샘 밑에 천막을 친다.

남녀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끼리끼리 하루해가 저물도록 먹고 마시면서 즐기다가 남정네들은 해가 질 무렵이면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로 내려와 대갓집 넓은 마당에서 밤이 새도록 뒤풀이를 했다고 한다. 또한, 손죽도는 작은 섬으로 한 마을 밖에 없지만 남쪽 마을 뒤에는 지지미고개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로 화전놀이가 성하였다.

[놀이방법]

1. 신월동 신근마을

1) 길놀이

아침 10시경 당산에서 나팔소리와 풍물소리가 울리면 마을 남정네들은 동각에 모여 술과 음식을 짊어지고 농악대를 앞세워 꽃바위로 갔다. 꽃바위에 도착하면 유사는 산신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농악은 제단 주위를 돌면서 당산굿을 울린다.

2) 산신제의 순차

초헌례는 진설, 일동서립, 분향, 개반, 개삽시, 헌잔, 개부복, 독축, 재배 순으로 진행한다. 아헌례는 분향, 헌잔, 재배 순으로 진행한다. 종헌례는 분향, 헌잔, 소축, 소지, 재배 순으로 진행한다.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엎드려 비옵니다. 존신께서 하늘의 선화를 가름하여 우리의 일방을 진압하고 비민을 창조하시어 안락과 배부름과 따스함을 신께서 내리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지덕으로 지도하고 혜택을 더하니 돌아보건대 비록 심미하나 거미신공에 한 마을이 동속하고 몸과 마음으로 보답할 때는 오직 삼월이라 안주와 술로써 정성을 다하니 신께서 강림하시어 여러 우층에게 복을 내리시고 시종이 있도록 흠향하시옵소서.”

이와 같이 엄숙한 산제를 올리고 나면 남정네들은 술과 음식을 고루 나누어 먹고, 풍물가락에 신명이 솟구치면 모두가 참여하는 노래와 춤판이 펼쳐진다.

3) 부녀자의 화전놀이

부녀자들은 11시경 쌍바위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빚어 쌍바위샘 제단에 제물을 차리고 마을 당골이 주재하는 용왕고사를 올리고 나서 쌍바위 샘물에 머리를 감는다. 이 같은 민속은 영험 있는 샘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검고 윤이 나서 비듬이 없어진다는 속신에 따른 것이다.

당골이 주재하는 용왕고사는 푸닥거리 굿이 아니라 한 해 동안 우순풍조(雨順風調)하여 농사가 풍년 들고 바다에는 해난 사고 없이 항상 만선으로 봉기 꽂고 돌아오게 해달라는 덕담과 축원의 말을 구술로 용왕님께 비는 고사이다. 의례가 끝나면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북과 장구 장단에 맞추어 「화전가」·「사월가」·「릴리리방아 타령」·「사나지 타령」·「허렁 타령」·「매화 타령」·「길소리」 등의 노래들을 흥겹게 부른다.

2. 손죽도

손죽도에서는 주로 부녀자들이 마을 뒷산 지지미고개에서 화전을 만들어 먹으면서 춤도 추고 잔치도 벌였다. 쇠판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한 찹쌀가루 위에 진달래 꽃잎을 올려 화전을 만들어 먹으면서 봄맞이 놀이를 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풍물로 춤곡을 벌린다.

화전놀이를 할 때 주로 쓰인 뒷소리는 ‘제화(諸花) 좋소 제(諸) 제화(諸花)가 좋음도 좋소, 명년(明年) 춘삼월에도 화전놀이를 합시다’이지만, 이것이 지루할 때쯤에는 「진도아리랑」·「청춘가」·「쾌지나칭칭나네」 등도 곁들였다. 뒷소리는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혹은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또는 ‘얼씨구나, 좋네 저절씨구, 아니 놀지는 못하겠네’가 쓰인다.

뿐만 아니라 「강강술래」나 「꽤지나칭칭나네」 등이 모두 동원되어 여성들의 심신에 살풀이가 이루어지고 되살이가 주어졌다. 손죽도에서 화전놀이 때 부르던 대표적인 노래인 「제화좋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놀다가 갑세다 노-놀다나 갑세다 제가 제도록 에헤라 놀다나 갑시다/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우리가 이따가 초죽어나지면 저건너 저 무덤이 외로와 다대리로다/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증조야 난강에 혼불러 놓고서 정천 하늘에 애로와 비내리라세/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머래랑 다래랑 다 당재친 소래 자다가다가 들어도 외로와 우리님 소리라/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삼각산 몰랑에 벼 베어나 나아나 어린님 다래워 애로워 잠자나 마나/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각시야 잠자냐 밤 밤세나 올래나 밤중에 새벽에 애로와 산넘어 가노라/ 제화좋소 제제제화가 좋소 금년에 춘삼월로 화전놀이를 갑세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화전놀이를 하는 삼월 삼짇날 처음으로 보는 제비에게 절 세 자리를 하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줄였다가 다시 여미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며, 그 해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면 만사가 태평하지만, 흰 나비를 먼저 보면 상복을 입거나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한다.

[현황]

신월동은 현재 도시화되어 화전놀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손죽도에서는 마을 뒤쪽 산중턱에 화전놀이를 했다는 지지미고개가 전해 온다. ‘지지미’는 지진다는 뜻인데, 손죽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 누구를 막론하고 지지미고개로 올라와 진달래로 화전을 해 먹으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겼다고 한다. 1982년 신월동 화전놀이 때 예능을 주도적으로 담당했던 계보를 살펴보면, 김백운·우진우·한백현·강영호·공태평·박당옥 등 6명인데, 그중 현재는 공태평과 박당옥 두 사람이 생존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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