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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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生浦 |
영어음역 | Jangsaengpo |
영어의미역 | Jangsaengpo, a Goryeo Song |
이칭/별칭 | 「장생포곡」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유행했던 가요.
[개설]
『고려사』 권71 「악지(樂志)」와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에 「장생포」의 창작 경위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또 이밖에 『동국통감』,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운부군옥』, 『승평지』, 『성호선생문집』, 『강남악부』 등에도 전한다.
『고려사』에 의하면 왜적이 장생포를 침범했다가 위엄을 겸비한 시중(侍中) 유탁(柳濯) 장군을 두려워하여 철수하자 군사들이 기뻐서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는 만덕사(萬德社)에서 왜적을 격파한 유탁이 포로를 다 돌려보냈는데, 이후 다시 침범이 없어 유탁이 이 노래를 지었으며, 군사들이 부른 노래는 「동동(動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사가 전해지지 않은 탓으로 구성과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장생포」는 「동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창작 배경은 고려 말 공민왕 때 유탁 장군이 왜구를 무찌르고 군사들과 함께 여수 장생포에서 불렀다는 사실은 엄연하다. 『동국여지승람』이나 『강남악부』는 장생포가 순천부 동쪽 60리 지점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장생포는 현재 전라남도 여수시 안산동 장성마을 앞 포구를 가리킨다.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약한 포구여서 왜구들의 침략이 잦았기 때문에 많은 장승을 세웠을 것이고, 그것이 ‘장생포’라는 지명으로 남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가요 「동동」은 고락산 아래, 장생포 가까운 거리에 ‘동동골[둥둥골]’에서 그 가명을 빌렸고, 그래서 「장생포」는 「동동」에 자연스럽게 삽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