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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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祥中 |
영어음역 | Hwang Sangjung |
이칭/별칭 | 응지(膺址),송와(松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이자 창원황씨 여수 입향조.
[가계]
본관은 창원. 자는 응지(膺址), 호는 송와(松窩). 조선 개국공신 의원군(義原君) 황거정(黃居正)의 7세손이다. 조부는 황탕경(黃湯卿)이고, 아버지는 효정공(孝貞公) 이조판서 황진(黃璡)이며, 부인은 밀양박씨 박진수(朴震首)의 딸이다. 아들로 황순(黃洵)·황연(黃漣)·황일(黃溢) 3남을 두었다.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벽동군수를 거쳐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을 따라 출전하는 곳마다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벌어진 한산전에 참전하여 승리를 이끌었다.
1598년(선조 31) 김대인(金大仁), 김치모(金致慕) 등과 더불어 율촌 장도(獐島)에서도 큰 공을 세웠으나 1598년 11월 18일 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절하였다. 시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수시 선원동 반월마을 토미산에 안장하게 되었는데, 모든 가족이 묘소가 있는 선원동 반월마을로 이거함에 따라 황상중을 반월마을의 입향조로 모시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선무종훈(宣武從勳)에 책록되고, 정조 때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