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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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의미역 | Hous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위은하 |
[정의]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개설]
추운 북쪽 지방에 비해 고온다습한 여수 지역의 주택들은 창문이 많고 대청마루가 필수적인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탁 트인 인상을 주며, 집 안도 시원하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수 지역에서도 초가집의 지붕 개량이 이루어졌고, 1980년대에는 부엌이 입식으로 바뀌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개량되었다. 여수시의 중심 지역에 비해 전통 가옥의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돌산읍과 화양면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민가의 동 배치와 평면 유형, 재료와 구조, 공간 이용과 규모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 배치와 평면 유형]
여수 지역에 남아 있는 전통 민가 중 돌산읍의 민가들을 보면 크게 안채와 사랑채(지역에 따라 ‘아래채’라고도 함) 및 부속채(잿간, 축사 포함)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동(棟)은 대부분 일자형의 평면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남동-북동에 걸쳐서 안채를 배치하며, 안채와 사랑채·부속채가 튼 ㄱ자형이나 이자형을 이루면서 배치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중에는 단일 건물로 이루어진 집들도 있으며, 출입문은 주로 측면이나 정면에 마련되어 있다.
평면 구성을 보면 주로 정지(부엌)·방·마루로 구성되며, 이 구성의 평면 형태는 대개 일자형 홑집의 형태를 띤다. 홑집형 가옥의 평면 유형을 정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정지가 가옥의 한쪽에 치우친 형태로 정지-방-마루(마리)-방의 형태, 또는 마루를 두지 않고 정지-방-방의 형태로 나타난다. 정지의 양측에 방을 두는 중앙 정지의 형태에서는 주로 방-정지-방-마루-방의 5칸 형태로 나타난다.
대청마루가 한쪽으로 놓이는 평면 구성이 함께 이용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농촌 경제에서 공간을 확대하지 않고 살림방을 늘려 가는 방법으로 자주 쓰인다. 이는 고온다습한 남해안의 해양성 기후에 알맞게 발달된 평면 구성으로 추측되며, 고온 다습한 여름철 기후에 적당한 시설물인 마루를 한쪽 끝, 사람이 자주 이용하는 곳에 두는 간살이 방식이기도 하다.
[재료와 구조]
돌산읍에 남아 있는 전통 민가의 경우, 기단은 처마선을 따라 막돌허튼층쌓기로 지면에서 10~70㎝ 정도 높이의 기단부를 만들었다. 높이가 높은 곳에서는 정지와 안방, 또는 마루 근처에 돌계단을 쌓아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초석은 호박돌을 사용하고, 기둥은 대부분 9~12㎝ 정도의 4각주를 사용했는데, 나무껍질과 모난 부분을 제거한 둥근 원목을 사용한 주택도 보인다.
보는 대부분 죽각재를 사용하였으나 퇴보나 대들보는 상부로 휘어진 아치형 나무도 사용하였다. 도리는 주로 납도리를 사용하였으나, 기둥과 마찬가지로 나무껍질만 제거한 굴도리도 있다. 벽체의 재료는 크게 흙, 흙과 돌, 그리고 도끼로 거칠게 다듬은 판벽으로 구별된다. 흙은 주로 방의 전면과 후면, 내부 공간 구획을 위한 심벽 구조(心壁構造)에 이용하고, 흙과 돌을 재료로 한 벽체는 주로 가옥의 후면 벽체와 때때로 좌우측 외벽으로 처마 높이까지 쌓아 올려 지붕의 하중을 받는 내력벽으로 사용하였다. 판벽은 주로 마루와 정지의 전면·후면 벽에 사용하였다.
정지의 문은 대부분 널판을 다듬어 만든 판장문으로 설치하였고, 마루는 정자무늬 띠살문과 판장문을 사용하였으며, 방의 창호는 일반적으로 띠살문을 이용하였다. 정지와 마루는 주로 서까래가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일부 방에는 나무나 철사로 반자틀을 엮고 여기에 종이를 바른 건반자식(乾盤子式) 천장으로 마련하였다.
여수 지역에서도 특히 돌산읍과 같은 도서 및 해안 지역에서는 처마의 높이가 낮고 담장의 높이가 높은 편인데, 이는 이 지역의 기후 특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산읍의 경우 함석이나 슬레이트를 이용하여 2중 처마를 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붕의 경우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거의 대부분 초가지붕이었으나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다. 민가의 지붕 재료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볏짚은 속이 비어 있어서, 그 안의 공기가 여름에는 햇볕의 뜨거움을 덜어 주고 겨울에는 집 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주는 구실을 하였다.
이 때문에 초가집은 따스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는데, 또한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언제나 밝고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초가집의 지붕은 물매가 매우 완만하여 예부터 흔히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기도 하였고, 청동호박이나 박넝쿨 등을 올려서 마당과 밭의 연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초가집은 짚으로 엮은 이엉을 지붕에 덮고 용마루에 용마름 또는 곱새라고 불리는 용구새를 얹어 마무리한다. 바람이 심한 지역에서는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기도 하고, 돌을 달아매기도 하였다. 초가지붕이 모임지붕 형태를 이룬 겹집인 경우 까치구멍이라고 하여 용마루를 짧게 하고 좌우 양끝의 짚을 안으로 우겨 넣어 까치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는 일도 있었다. 이 구멍을 통하여 집 안에 햇볕이 들어오고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한다.
화양면 마상마을에는 전형적인 초가 3칸으로 곱은 ㄱ자 형태를 띠고 있는 민가가 있다. 정지-방-방의 구조로 우측에 헛간을 두었는데, 헛간에 해당하는 부분을 ㄱ자로 처리했다. 40㎝ 정도의 기단석을 깔고 호박돌 주초석 위에 사각 기둥을 세웠으며, 정지문은 판장문으로, 방은 띠살문으로 구성했다. 헛간채는 돌담을 이용하였고, 나머지 벽은 흙벽이나 회를 칠하지는 않았다. 돌산읍 둔전마을에 있는 한 민가의 경우 자녀의 결혼 등으로 식구가 늘어나면서 전형적인 일자형 홑집에서 겹집으로 확대된 예를 보여 주고 있는데, 최근 들어 식구가 줄어들면서 본채만 거주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간 이용]
일반적인 가옥의 경우 외부 공간으로서 외부에 노출되는 양적 공간인 바깥마당·중마당·사랑마당·안마당 등의 사적인 공간과 폐쇄되고 극히 개인적인 음적 공간으로서 뒤뜰·뒤꼍·뒤안·봉당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마당은 동적인 공간으로서 농사일과 아이들의 놀이터·집안행사 등에 이용되며, 뒤안은 정적인 휴식·목욕·가사 노동의 부대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여수 지역의 전통 민가들은 뜨거운 여름철 그늘진 뒤안의 공기가 마루 뒤문을 통해 앞쪽으로 흐르도록 계획되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민가의 내부 공간은 부엌, 큰방, 작은방(건너방), 마루(대청) 등을 기본으로 하고, 평면 유형에 따라 외양간이나 광 등의 공간이 첨가되기도 하였다. 정지라고 부르는 부엌은 큰방이나 작은방 쪽으로 부뚜막이 설치되어, 취사 등의 작업과 난방을 위한 불때기 작업이 이루어진다.
큰방은 대개 부엌과 대청 혹은 광의 중간에 위치하는 방으로, 주로 주인부부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거처하는 곳이다. 또한 주인부부의 취침 공간이자 가족 전체의 식사와 단란한 생활을 위한 공간이며, 남자 주인의 접객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작은방은 건넌방 혹은 모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안채의 정지 쪽 전면 혹은 대청의 건너편에 위치한 방으로 큰방에 비해 작은 편이다. 자녀들의 성장 시기에는 공부와 거처하는 방으로 이용되며, 장성하여 결혼한 아들의 부부가 거처하기도 하였다.
밤에 잠자리를 펼 때는 이불을 아궁이 쪽에 붙여서 마당에 대해 세로 방향이 되게 하며, 머리는 창문 쪽을 향하게 하였다. 잠을 잘 때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동쪽과 남쪽으로 머리를 향하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민가는 일반적으로 앞마당이 있는 남쪽과 동쪽에 창을 내었다.
벽장은 보통 아궁이 위쪽의 잠자리 아랫벽에 붙여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궤(반닫이) 한 쌍을 장식으로 놓고 그 위에 이불을 놓는 경향이 있었다. 마당 쪽 창문 반대편에는 횃대를 시설하거나 못을 박아서 옷을 걸어 두며, 수가 새겨진 횃대보(옷보)를 덮어서 시선을 정리했다. 횃대 위에는 집안의 경사스런 사연이 담긴 사진이나, 부모의 사진을 담은 액자를 걸어 일종의 기념벽면으로 이용했다. 대청은 여름철에 거처를 하거나 곡물의 저장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은 곡물이나 농기구의 저장 장소로 이용되는데, 흙바닥이라 사람이 거처할 수 없는 점이 대청과 다르다.
민가의 내부 공간은 방의 쓰임새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마감된다. 주택의 사적 기능을 가지는 잠자리 공간은 온돌(구들)로 되고, 사회적 기능을 갖는 대청마루 등은 판자로 마감되며, 가사 노동 외에 부대 기능을 갖는 부엌 공간 등은 흙바닥으로 마감한다. 이는 활동 공간이 아닌 휴식 공간은 신발을 벗고 한 단계 높게 올라가서 책상다리를 하고 생활하는 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민가의 평면 구성은 생활 여건이 좋아지자 방이 모두 두 줄로 놓이는 겹집에서 차츰 방이 한 줄로 놓이는 홑집으로 변화해 갔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다시 방들이 여러 겹으로 놓이는 겹집으로 변천해 갔다. 이는 갑작스런 주택난과 대지 부족, 공간의 확대 등에도 연유하지만 무엇보다도 급배수 시설의 발전과 창호 시설의 개량 등으로 겹집으로 집을 지어도 위생적인 공간 창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정지는 아궁이가 반드시 온돌(구들)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안방과 붙어서 배치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난방과 취사가 분리되어도 가능하게 변화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관습상 안방과 부엌이 붙어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엌은 주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사 노동의 공간이며 위생적 공간이므로 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남쪽으로 배치하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위생 시설의 발전과 여성들의 사회 활동 증가로 집 안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