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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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鵝州申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집필자 | 위은숙 |
입향지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 1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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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용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하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도경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
성씨 시조 | 신영미 |
입향 시조 | 신윤유 |
[정의]
신영미를 시조로 하고 신윤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연원]
아주 신씨(鵝洲 申氏)의 발상지는 지금의 거제(巨濟) 지역이다. 신라 때부터 거제군(巨濟郡)으로 불렀던 큰 고을로 아주현(鵝洲縣), 송변현(松邊縣), 명진현(溟珍縣)이라는 3개의 지역단위가 있었다.
아주 신씨는 아주현의 토호세력 중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신영미(申英美) 시조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 영조(英祖) 때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와 1924년에 발행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를 비롯한 아주 신씨의 가첩(家牒)에 신영미가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아주 신씨는 거제에서 거창으로 이주하였고, 5대에 상주(尙州)로, 6대 때에 다시 의성지방으로 옮겨 갔으며, 이곳에서 족세(族勢)가 번성하여 조선후기에는 사족(士族)과 이족(吏族)으로 성장하였다.
[입향 경위]
신윤유(申允濡)는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는데, 고려가 멸망하자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아주 신씨의 의성 지역 입향조가 되었다. 후손으로는 효자로 이름 높았던 신우(申祐), 신원록(申元祿)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 원종공신(宣武 原從功臣), 호종 원종공신(扈從 原從功臣)에 책록되었던 신지제(申之悌) 등이 있다.
[현황]
1997년 조사 때 의성 지역에 거주한 아주 신씨는 2,567명이었다. 관내의 아주 신씨 집성촌은 의성읍 팔성리, 의성읍 용연리, 금성면 하리, 금성면 개일리, 금성면 도경리, 사곡면 매곡리, 봉양면 구산리, 봉양면 구미리 등에 있다.
[관련 유적]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에 신윤유를 기리는 소단이 있다. 단밀면 속암리에는 신우가 배향된 속수 서원(涑水 書院)이 있으며, 단밀면 주선 2리에 신우의 유허비가 있다. 그리고 봉양면 장대리의 장대 서원(藏待 書院)에서는 신지제와 신원록을 배향하고 있으며, 사곡면 매곡리의 매강 서원(梅岡 書院)에서는 신원복(申元福), 신홍도(申弘道), 신류(申塯)를 배향하고 있다. 그밖에 의성읍 용연 1리의 자족재(自足齋)는 아주 신씨의 사우이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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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 내용 수정 | [정의] 신익휴를 시조로 하고 신윤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 신영미를 시조로 하고 신윤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연원] 주 신씨(鵝洲 申氏)는 평산 신씨(平山 申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으로 그 12세손인 신익휴(申益休)는 고려 말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을 지내고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졌다. 한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 씨족 통보(朝鮮 氏族 統譜)』에는 신익휴의 아들로 고려 시대 아주현의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신영미(申英美)를 시조로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분파는 부령공파(府令公派)와 봉주공파(鳳州公派)가 있다. → 아주 신씨(鵝洲 申氏)의 발상지는 지금의 거제(巨濟) 지역이다. 신라 때부터 거제군(巨濟郡)으로 불렀던 큰 고을로 아주현(鵝洲縣), 송변현(松邊縣), 명진현(溟珍縣)이라는 3개의 지역단위가 있었다. 아주 신씨는 아주현의 토호세력 중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신영미(申英美) 시조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 영조(英祖) 때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와 1924년에 발행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를 비롯한 아주 신씨의 가첩(家牒)에 신영미가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아주 신씨는 거제에서 거창으로 이주하였고, 5대에 상주(尙州)로, 6대 때에 다시 의성지방으로 옮겨 갔으며, 이곳에서 족세(族勢)가 번성하여 조선후기에는 사족(士族)과 이족(吏族)으로 성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