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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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允濡 |
이칭/별칭 | 신원유(申元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거주|이주지 | 신윤유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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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신윤유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아주(鵝洲) |
대표 관직 | 판도판서(判圖判書) |
[정의]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아주(鵝洲). 첫 이름은 신원유(申元濡)이다. 부인은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의성 입향조이다.
[활동 사항]
신윤유(申允濡)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는데, 고려가 멸망하자 현재의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의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의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당개(唐介)에 버금간다 하였다. 초하루 보름마다 산마루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고 깊은 한을 풀었기에 산 이름도 망경산(望京山)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만경산(萬京山)이라 변경되었다.
[묘소]
묘는 의성군 구천면 청산리에 있었는데 실전하였고, 구천면 용사리에 소단을 조성하여 해마다 봉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