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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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집필자 | 위은숙 |
입향 시기/일시 | 1291년 4월 - 박지량 의성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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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의성군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가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만천 1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리 |
묘소|세장지 | 장군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만천 1리 막닥골 |
성씨 시조 | 박언신 |
입향 시조 | 박지량 |
[정의]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지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세거 성씨.
[연원]
함양 박씨(咸陽朴氏)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으로 속함 대군(速咸大君)[속함은 경상남도 함양의 옛 명칭]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았다. 고려 시대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내고 함양군(咸陽君)에 봉해진 박선(朴善)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였다. 박선의 현손 박신유(朴臣蕤)는 고종 때 김경손(金慶孫)과 더불어 전라남도 나주에서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다.
박신유의 아들대에서 6파로 갈라졌는데, 박지문(朴之文)을 파조(派祖)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박지빈(朴之彬)의 문원공파(文元公派), 박지량(朴之亮)의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 박지수(朴之秀)의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박지온(朴之溫)의 감찰어사공파(監察御史公派), 박지영(朴之穎)의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등이다. 그 중 박지량이 의성의 입향조이다.
[입향 경위]
박지량은 고려 후기의 무장으로 원나라의 일본 동정(東征) 때 여몽 연합군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고, 합단적(哈丹賊)의 고려 침입을 막는 데도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1291년(충렬왕 17)에 신병 요양차 의성으로 내려와 1292년(충렬왕 18) 타계하였는데, 이로써 박지량은 의성 지역의 함양 박씨 입향조가 되었다.
[현황]
1997년 조사 때 의성 지역에 거주하는 함양 박씨는 1,333명이었다. 박씨의 주요 세거지는 가음면 현리리, 가음면 양지리, 가음면 가산리, 금성면 만천 1리, 춘산면 금천리 등이다.
[관련 유적]
의성군 금성면 만천 1리 막닥골의 장방형 장군 묘가 박지량의 묘로 추정되고 있다. 의성군 춘산면 금천 1리의 경천정(景泉亭)은 박장춘(朴長春)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만든 정자이다. 또 춘산면 금천 2리의 옹천재(甕泉齋)는 박경신(朴景信)·박등(朴登)·박장춘(朴長春)·박무선(朴茂先) 등을 제향하는 함양 박씨의 재실이다.
가음면 현리 2리의 옥천사(玉川祠)는 원래 박장춘을 제향하는 사당이었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고 현재 유허비가 있다. 가음면 양지리의 명곡 서원(明谷 書院)은 박성양(朴成陽)을 배향하고 있으며, 가음면 가산리의 영모재(永慕齋)는 가산리의 입향조 박유부(朴有阜)의 모친인 흥양 이씨(興陽李氏)의 묘재이다. 그리고 금성면 만천리의 금남정(錦南亭)은 박홍근(朴弘根)을 기리기 위해 아들 박정택(朴貞宅)이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