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78
한자 申杜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7년 12월 15일연표보기 - 신두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4년 4월 - 신두수 안동 농림 학교 비밀 결사 명성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44년 11월 - 신두수 안동 농림 학교 비밀 결사 조선 회복 연구단 가입, 무장 봉기 계획 수립
활동 시기/일시 1945년 2월 - 신두수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됨
몰년 시기/일시 1986년 12월 9일연표보기 - 신두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1년 - 신두수 대통령 표창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비밀결사 명성회 조직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두수(申杜洙)[1927~1986]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출신으로, 경주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4월 안동 농림 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 결사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하였다. 명성회는 일제의 식민 정책을 비판하고 이정선(李貞善)·권태염(權泰琰)·정현모(鄭賢模)와 함께 정세를 틈타 무장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는 비밀 결사이다. 신두수는 명성회의 기관지 『새벽』을 한글과 일문(日文)으로 간행하여 대구 사범 학교·경주 중학교·안동 농림 학교 등의 학생들에게 배포하여 항일 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는 『새벽』의 논설 주필로 일본이 연합군에 의하여 곧 패망한다는 논조를 펼쳐 항일 정신을 고취하였다.

1944년 11월 명성회는 조선 회복 연구단(朝鮮恢復硏究團)과 연합하여 1945년 2월 17일 무장 봉기를 결행할 계획을 세우고 자금 조달과 동지 규합에 진력하였다. 조선 회복 연구단은 1943년 8월 안동 농림 학교 학생들이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국내로 보내는 단파 방송을 듣고 태평양 전쟁의 상황과 조선의 독립을 믿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 결사였다. 그들은 안동 농림 학교 무기고에 있는 총으로 안동 경찰서와 안동 헌병 파견대를 기습 공격하여 점령하고, 나아가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한 후 의성으로 진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45년 2월 27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으나, 2월 초 이 계획을 감지한 일본 경찰에 의해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신두수도 이때 체포되었다.

신두수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5개월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8·15 해방을 맞이하여 8월 16일 기소 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8·15 해방 후 의성 봉양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상훈과 추모]

2001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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