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52
한자 南圭佑
이칭/별칭 남오대(南梧大)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명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 11월 5일연표보기 - 남규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남규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독립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2일 - 남규우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7년 3월 10일연표보기 - 남규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남규우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남규우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남규우(南圭佑)[1889~1967]는 남오대(南梧大)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개된 점곡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과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내동의 김해 김씨 등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합세하여 전개하였다. 3월 18일 윤암동의 영양 남씨 남직순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 남승순과 함께 만세 시의를 모의하고, 이 날 오후 5시경 황금종과 같이 동민들을 모아 점곡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시위는 3월 20일 일본 경찰의 총격으로 해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주동 인물 21명이 체포되었다. 남규우는 이 시위로 1919년 6월 2일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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