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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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相斗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권상두(權相斗)[1870~1936]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출신으로, 안동 권씨 부정공파 와룡 감애[안동]가의 제일 큰집 출신이다.
3·1 운동 때 유림측에서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을 할 때,134명 유림 대표와 함께 서명하였다. 권상두가 살고 있던 단밀면은 원래 상주에 속해 있다가 1895년 비안군으로 편입되었다. 단밀면은 지리적 여건으로 상주와 선산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두 지역의 학문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권상두가 파리 장서에 서명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그런데 독립 청원 운동이 1919년 4월 12일 성주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와 관련하여 일본 경찰에 붙잡힌 송회근(宋晦根)에 의해 발각됨으로써 관계자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겪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권상두도 고초를 겪었다.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1927년 신간회 영주지회장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