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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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堤里花藏山城址 |
이칭/별칭 | 화장굴(花藏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산145-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신종환 |
관련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산제리 화장산성 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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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산제리 화장산성 터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산145-1 일원 |
성격 | 산성|산성터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에 있는 산성 유적.
[개설]
화장산성은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의 내용에 보이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왜장(倭將)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가 비안현을 점령했지만, 천연의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이 화장산성은 끝내 점령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안현의 각종 문서들을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장(花藏)’이라는 이름의 붙여졌다고 한다. 산제리 화장산성 터 유적은 천연 지형을 이용한 요새로서 국난극복의 일화가 전해고 있어서 그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산제리 화장산성 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 1리의 지내 마을 서쪽에 있는 화장산 정상에 위치한다. 높이 368.5m의 산 정상부와 그 동쪽 경사면을 사다리꼴로 에워싼 형태로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서, 천연의 절벽을 이루는 지형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성의 동쪽 능선과 정상부 남쪽, 북쪽 능선에 망루지로 추정되는 공간이 확인되며, 그 주변에서는 건물에 사용된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폭 1m, 높이 0.6~1.5m 내외이며 전체 둘레는 900m 정도이다. 동쪽에 인접하여 만장사(卍長寺)가 있다.
[변천]
산제리 화장산성의 변천 과정에 대해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읍지』 비안현조에는 “성지(城址)도 없고 봉수(烽燧)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고적(古跡)조에 화장굴(花藏窟)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화장굴은 비안현 북쪽 15리에 있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그 위태로움이 천만 길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관가의 제반 문서들을 이곳에 숨겨두어 화를 면하였으므로 화장굴이라 부르게 되었다[在縣東十五里 其深不知 其幾千萬丈 壬辰之倭亂 官家諸般文書 藏置此窟而免故謂之 花藏窟]” 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1871년 간행된 『영남읍지』 비안현조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 ‘화장(花藏)’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산성의 동쪽 200m 정도 거리에 통일 신라 시대의 석불과 석탑 등이 남아 있는 만장사(卍長寺)가 있어, 이와 관련해 볼 때 산성의 축조 시기도 삼국 시대로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
[위치]
산제리 화장산성 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산144·산145-1·산155 일대에 위치한다. 산제리 지내 마을 서쪽으로 형성된 속칭 ‘굴골’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이용하면 만장사(卍長寺)까지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다. 산성의 위치는 만장사의 서쪽 산봉우리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의성군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산제리 화장산성 터 유적이 위치한 일대는 산지로서 대부분 숲이 우거져 있어 산성의 형태가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적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산성을 축조했는데, 서쪽과 남쪽 및 동쪽의 일부는 암벽 위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으나, 동쪽 능선의 일부에는 1m×0.2m정도의 긴 장대석을 깔고 그 위에 성벽을 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