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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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屛巖書堂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2길 43-2[사촌리 537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51년 - 병암 서당 중수(1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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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4년 - 병암 서당 중수(1924)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4년 - 병암 서당 중수(2004) |
현 소재지 | 병암 서당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537 |
성격 | 서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의성 김씨 문중 |
관리자 | 의성 김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서당은 향촌 사회에 생활근거를 둔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면·동·리를 기본 단위로 하여 설립한 사학(私學) 기관이다.
[위치]
병암 서당(屛巖書堂)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2길 43-2[사촌리 537]에 있다. 점곡 초등학교 앞 사촌 삼거리에서 점곡길을 따라 약 700m 이동하면[버스 정류장을 50m 남겨둔 지점] 오른쪽에 과수원과 논 사이로 1차선 도로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약 220m 가량 올라가면 왼쪽 급경사에 병암 서당이 나온다.
[변천]
병암 서당의 내력은 1931년 김병식(金秉植)이 쓴 「병암 서당 중건기(屛巖書堂重建記)」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병암 서당은 선조 때 김응하(金應夏), 김응상(金應商), 김응주(金應周) 삼형제가 은둔하며, 학문 수학을 위해 1590년 무렵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때 유성룡(柳成龍)이 서당 건립을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유성룡은 김응하와 이종형제 관계이다. ‘병암 서당(屛巖書堂)’이라는 편액도 유성룡이 써 준 것이다.
1751년(영조 27)에는 김정신(金鼎臣)과 김정조(金鼎調) 등이 퇴락한 병암 서당을 중수하였고, 1924년에도 김원수(金源洙), 김정목(金楨睦), 김철수(金哲洙) 등 문중 인사들의 주도로 서당의 중수가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200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형태]
병암 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마을 뒤편 산록의 급경사에 건물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2층의 누각 형태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주위는 네모나게 토석담을 둘렀으며, 전면에 출입문을 두었다. 당(堂)을 중심으로 좌우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구조이다.
[현황]
병암 서당 경내에는 유성룡이 쓴 ‘병암 서당(屛巖書堂)’ 편액을 비롯하여 「병암 서당중수전말(屛巖書堂重修顚末)」, 「병암 서당회화수창운(屛巖書堂會話酬唱韻)」, 「병암 서당중수기(屛巖書堂重修記)」 등의 기문이 있다. 2012년 현재 병암 서당은 의성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의의와 평가]
병암 서당은 의성 김씨 문중의 서당으로 건립 이후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응상의 아들 김치중(金致中)을 비롯해 다섯 명의 집안사람들이 의병장으로 싸우다가 순국하였는데 모두 병암 서당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