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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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樣式土器 |
이칭/별칭 | 의성 토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이형기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 양식.
[개설]
신라가 낙동강 상류 지역 진출 이후 출토되는 재지계 토기 중에서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다른 지역의 토기와 구분될 정도로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를 ‘의성 양식 토기’라 부르는데 낙동강 상류 지역 출토 토기 중에서 소지역 양식이 정의된 몇 안 되는 토기 양식이다.
[의성 양식 토기의 특징]
의성 양식 토기 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굽다리 접시·목 항아리·항아리·뚜껑 등이다. 굽다리 접시는 뚜껑받이턱이 미약하고 대각 아래에 단이 지거나 돌대가 돌아가 각거부를 형성하는데 그 각거부의 길이가 길고, 각단 부근에서 외경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굽다리 접시의 뚜껑은 운두가 높고 드림은 길게 외경하며 드림턱보다 바깥으로 나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꼭지는 두께가 얇고 지름이 비교적 큰 접시형 혹은 단추형이 부착되며 몸체에 침선이 1줄 돌려진 것이 많고 점열문, 단사선문이 시문되기도 한다. 짧은 목 항아리는 구경이 직립하여 올라가다가 구연단 가까이에서 90°로 꺾인다.
바닥은 비교적 좁으며 동체에는 여러 조의 돌대를 거의 같은 간격으로 돌렸다. 귀달린항아리는 구연은 짧게 내경 혹은 직립하며 구연단은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 동체 중상부에 부리형이나 고리형의 귀가 부착되어 있다. 이것과 짝이 되는 뚜껑은 기고가 높고 드림부가 외경하며 드림턱 밖으로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손잡이는 대각도치형, 단추형, 고리형 등이 있다.
[의성 양식 토기의 편년과 분포]
의성 양식 토기 는 4세기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가장 많은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은 5세기 2/4분기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괴시리에서도 출토되어 동해안까지 확산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5세기 말에는 소량으로 가장 넓은 범위에서 출토되기는 하지만 일부 생활 유적에서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의성 양식 토기 는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낙동강 상류 지역에 비교적 넓게 분포한다. 의성군 의성읍은 물론이려니와 북쪽으로는 안동시 조탑리 일대를 포함하여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로부터 미천과 위천을 따라 낙동강에 이르는 수계 일대가 다 포함된다. 아울러 경상북도 상주시 병성동·상주시 신흥리·선산군 낙산동·안동시 태화동·사의동 등 낙동강 상류 지역을 비롯하여 소백산맥 이북의 충청북도 청원군 미천리와 동해에 인접한 경상북도 영덕군 괴시리에서도 출토되었다. 이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던 의성 지역 정치 집단이 낙동강 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행한 정치·경제적 교류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항이다. 특히 청원군 미천리에서 출토된 의성 양식 토기는 소백산맥 이북으로의 신라 영토 확장 과정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즉, 의성 지역이 금성산 고분군을 중심 세력으로 하는 하나의 범위를 이룬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신라가 의성 지역을 중간 거점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