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62 |
---|---|
한자 | 李惟直 |
영어음역 | Yi Yujik |
이칭/별칭 | 중온(仲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52년 - 이유직 생 |
---|---|
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파직 |
거주|이주지 | 신장리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
거주|이주지 | 도당리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
묘소|단소 |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충청병마절도사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온(仲溫). 전주 이씨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학수(李鶴壽)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억울하게 효수당한 김해 수문장 이유검(李惟儉)이다.
[활동 사항]
이유직(李惟直)[1552~?]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선조를 의주 행재소까지 호종하여 호성일등훈 절충계관(扈聖一等勳 折衝階官) 북병마절도사(北兵馬節度使)를 지냈다. 삭령군수, 경흥부사, 영원군수 등을 지냈다. 1606년(선조 39) 간성군수로 재직할 때 암행어사로 파견된 박안현(朴顔賢)으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아 파직당했다. 그 내용은 형장(刑杖)이 가혹하고 명령을 자주 바꾸어 혼란을 일으키며, 훈련 시 교관의 말을 듣고 군사를 움직여 민심을 크게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관직에 올라 광해군 때 충청병마절도사, 전라좌수사를 지내는 등 무신으로 활발히 활동하여 서산 출신 전주 이씨 가문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묘소]
묘소는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다.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백헌(白軒)이경석(李景奭)이 묘갈명(墓碣銘)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