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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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建築 |
영어의미역 | Architectur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하헌정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개설]
구미는 1973년 구미1공단이 조성 완료된 이래 구미2공단, 구미3공단, 구미4공단 등 계속적인 공단의 확장으로 2006년에는 수출 305억 달러, 생산 46조 원을 달성하는 등 디지털전자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내륙 최대의 수출산업기지로 빠르게 성장한 산업도시이다. 용도 지역별 면적 구성을 보면 경상북도 내의 같은 산업 도시인 포항시와 유사한 구성을 보이면서 공업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경상북도 내의 다른 도시보다 현저히 높아 도시 공간적 측면에서도 산업 도시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구미시의 건축은 1970년대 이후 도시의 성장과 함께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며 공단이 조성되면 그에 따른 배후 주거지와 지원 시설을 확충하는 형태로 형성되어 왔다.
한편, 구미는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과 관련이 깊은 곳이며, 조선 성리학의 근원지이자 학문을 연구하는 선비문화의 본거지로서도 명성을 떨쳐왔던 곳이다. 구미시에 분포되어 있는 많은 건축문화재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과 관계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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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도시별 용도지역 구성비
[변천]
구미는 1963년 1월 1일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7년 3월 2일에는 경상북도 구미지역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8년 2월 15일에 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1983년 북삼면 오태동이 구미시로 편입되고 1995년에는 선산군을 통합하여 2개 읍, 6개 면, 19개 동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구미시가 출범하게 되었다. 구미는 1970년대 초까지 농업을 생산 기반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업형 소도시였으나 1977년 산업기지 개발구역 고시를 통해 국내 최대의 전자공업 도시로 성장하면서부터 공업단지의 계속적인 확장과 함께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구미역 주변에 이전부터 형성된 구 시가지와 함께 토지구획 정리사업 및 주택지 조성사업으로 형곡동, 송정동, 도량동, 원평동 일대가 신시가지로 개발되었고, 봉곡동, 원호리, 사곡동, 상모동, 오태동 일대가 신시가지로 조성 중에 있다. 신평동이 구미1공단의 배후 주거지로 형성되었고, 구미2공단, 구미3공단의 배후지인 인동동 지역의 시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인의·진평·구평 지구의 토지구획 정리사업 및 택지 개발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구미3공단 북측으로는 옥계1지구의 택지 개발이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옥계 2, 3지구의 택지 개발이 시행 중이다. 최근에는 구미4공단과 첨단산업단지의 조성으로 주변 지역인 해평, 산동, 장천 등지에도 배후 주거지 및 지원시설이 들어서게 되어 이들 지역도 신시가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도시성장의 배경 때문에 구미국가산업단지로 변모되기 이전부터 있던 몇 몇의 구 시가지를 제외하면, 현재 구미시에 있는 건물들은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이후 토지구획 정리사업, 주택지 조성사업 및 신시가지 조성사업 등과 함께 근래에 새롭게 건축된 것이 대부분이다.
구미시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의 확장은 단시간에 많은 건물을 양산하여 건축 문화를 높일 수 있는 수준 높은 건축물을 짓는데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공공 청사 및 공공시설을 필두로 최근에 건립된 건물들은 도시와 문화의 맥락에서 건축의 질적인 측면을 추구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공단 조성 초기에 지어진 낙후된 주거 건물들은 수년 전부터 재건축을 통하여 새롭게 건립되고 있고, 고속도로와 철도 사이 폭 600m 연장 1500m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중심 시가지도 도시의 발전과 시민들의 건축 문화 욕구에 맞춰 재건축 또는 구조 변경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근에 대구광역시가 입지해 있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규모로 형성되었던 판매시설과 숙박시설 등도 구미시의 인구 증가와 그로 인한 세력권 확장으로 2002년 이후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 건축물]
오늘날 건축물은 유형과 용도에 따라 주거 건축, 상업 건축, 숙박 시설, 교육 시설, 종교 건축, 공공 문화 건축, 병원 건축 및 산업 건축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산업 도시인 구미시는 첨단 산업용 건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2010년 9월 현재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업체 수는 총 1,359개사에 이른다. 주요 입주 업체로는 코오롱, 제일모직, LG전자, 삼성전자, LG필립스엘시디, 한국전기초자, 아사히초자,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등이 있다. 주택은 2009년 12월 31일 기준 총 118,505호인데 이중 다세대 주택, 연립 주택, 아파트가 75.4%인 89,334호에 달하여 공동 주택이 주거의 일반적인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단독 주택이 감소하고 아파트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업무용 건물은 주로 송정동의 구미시청사 주변의 업무 지구에 분포하는데, 대규모의 고층 빌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면적 17,195㎡의 LG구미빌이 지상 12층으로 구미에서는 가장 높은 현대식 사옥에 속한다. 업무 지구에 더 이상의 고층 빌딩이 건립되지 않은 것은 같은 지구 내에 위치한 구미시 문화예술회관의 경관과 조망을 위하여 주변 건물의 높이를 제한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주변의 대표적인 업무용 건물로는 그랜드빌딩과 삼성생명(주) 구미사옥 등이 있다.
숙박 시설은 바이어의 내왕과 유동 인구가 많은 구미시의 특성상 중요한 시설이다. 그러나 공단 조성 이후 인접한 대구광역시의 대형 호텔을 많이 이용한 탓에 아직까지 대형 호텔은 건립되지 못했다. 구미시에는 2008년 현재 9개의 관광호텔 및 비즈니스호텔이 있고 객실 수는 총 558실이다. 낙동강 강변에 위치한 구미센츄리관광호텔이 특2급, 지상 10층, 131실 규모로 가장 큰 호텔이고, 2002년 개관한 파크비즈니스관광호텔은 금오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쾌적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구미시는 2001년까지 대형 매장을 갖춘 판매 시설이 거의 없어 인근의 대구광역시의 판매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동아백화점이 1983년에 건립되어 이용되었지만 연면적 8,358㎡로 백화점으로는 규모가 비교적 작아서 늘어나는 인구와 시민들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였다. 그러나 2002년 6월 연면적 44,977㎡의 이마트가 광평동에 개장되면서 현대적인 대형 판매 시설이 처음 도입되었고, 2005년에는 연면적 48,767㎡ 규모의 삼성홈플러스와 연면적 58,064㎡의 롯데마트가 연이어 개장됨으로서 부족한 판매 시설의 해소와 함께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구미시의 공공체육시설은 간이운동장(동네체육시설) 94개소 포함 총 106개소가 있다. 시민운동장과 박정희체육관이 그 대표적인 시설이다. 구미시 광평동에 위치한 박정희체육관의 정식명칭은 구미체육관이다. 전국 규모의 각종 행사를 구미에 유치하여 구미의 자랑거리를 전국에 알리고 시민들을 위해 체육ㆍ문화ㆍ예술의 기회를 넓혀 나갈 장을 마련하고자 2001년 2월에 개관하였다. 건축면적 6,909.4㎡, 높이 28.5m,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127,692㎡의 대지 위에 세워진 철근콘크리트조의 건물이다. 지붕은 스페이스프레임(SPACE FRAME) 돔형으로 되어 있으며 6,277석의 좌석과 농구, 배구, 핸드볼, 배드민턴, 씨름 등 모든 실내경기가 가능한 주경기장 외에 넓이 680㎡의 경기장 2개소가 있는 보조 경기장, 조명, 음향 시설, 트레이닝장, 대기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문화예술회관은 구미시의 건축 문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1983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완성하였고, 1985년 2월에 착공하여 1989년 10월에 개관하였다. 구미시 송정동에 위치하며 대지 면적 20,587㎡에 연면적 10,319㎡,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철골ㆍ철근콘크리트의 구조체에 벽돌로 외벽을 마감하였다. 3동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연장과 전시실이 주된 공간이다. 대공연장은 1,364석, 소공연장은 360석, 야외공연장은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전시실은 제1전시실이 482㎡, 제2전시실이 201㎡, 야외전시실이 1,620㎡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 시설로는 121대를 수용하는 주차장과 회의실ㆍ연습실ㆍ분장실ㆍ휴게실 등이 있다.
[전통 건축물]
구미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근래에 형성된 현대 건축물 뿐만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지정문화재(4), 도지정문화재(27) 등으로 지정된 총 31개의 건축과 관련된 문화재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문화유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선산 죽장동 오층석탑(국보 제130호)은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505-2번지[죽장12길 90]에 위치하며 높이가 19m이다. 선산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죽장사지에 있으며 오층석탑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탑에 속한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인 이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으나, 탑신부의 옥신 양쪽에 우주가 없는 점이 특이하다.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보물 제469호)은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837-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7.2m이다. 일선교 사거리에서 해평 쪽으로 약 3㎞ 떨어진 동남쪽 논 가운데 있으며 죽장동 오층석탑과 거의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도리사 석탑(보물 제470호)은 도리사 극락전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높이 3.3m의 고려시대 석탑이다.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을 때의 전설에 나오는 아도(阿道)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석탑의 기본형은 방형으로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이 놓이고 그 위에 탑신부와 상륜 등이 중첩되었다. 이 석탑은 구조상 옥개 낙수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 점이라든지 각 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으로 결구하여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오히려 모전 석탑 계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쌍암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05호)은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239번지[해평2길 40]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검재 최수지의 후손인 최광익이 1731년(영조 7)에 아들의 살림집으로 건축했다고 전한다. 집 앞에 큰 바위가 2개 있어 ‘쌍암 고가’라고 하였다. 동서로 긴 대지에 앞에서부터 대문채, 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사당을 차례로 배치하였다. 사랑채만 남향이고 나머지는 동향이다.
수다사 명부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은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산 12번지에 위치한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다사는 원래 신라시대에는 연화사로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성암사라고 했다가 조선시대에 건물들을 다시 짓고 수다사로 고쳐 불렀다. 그러나 1684년(숙종 10) 화재로 인해 당시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고 현재는 명부전만 남아 있다. 명부전은 대웅전의 우측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막돌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바닥은 우물마루로 형성되었고 천장은 연등천정이며 서까래에는 단청이 보이지 않는다. 공포가 기둥에만 있는 주심포 형식이면서 외목도리가 없는 화두계의 옛 형식이다. 이 같은 형식은 신라시대 건축에 쓰인 공포 형식으로 알려져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대둔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은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1090번지[산촌옥관로 691-78]에 위치해 있다. 자연석으로 중앙 계단을 쌓고 견치돌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으로 다듬은 활주(보조 기둥)를 세워 상부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 벽체는 모두 흑벽으로 하고 바깥 벽면에 벽화를 그려 놓았다. 공포는 내외 4출목으로 꾸민 다포 형식이다. 단청은 모로 단청을 주로 하여 일부에만 금단청을 올렸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선산객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1호)는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 59-3번지[선산중앙로 73]에 위치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정면 중앙에 두 짝 출입문을 시설했다. 향토사료관으로 용도를 바꾼 지금은 네 벽면을 따라 각종 향토민속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장대석 외벌대 기단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2고주 7량가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꾸며진 지붕 용마루에는 사자상 4개가 놓여 있고, 용마루, 합각마루, 귀[모서리]마루 끝에는 용자상과 귀두류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이와 같이 장식이 많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천생산성(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있는 천생산(해발 407m)의 정상 주위 8~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다. 비슷한 형태인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용하여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어져 있다. 경사가 급한 외성의 일부 구간에는 1~2m 높이로 작은 자연 할석을 8~12단으로 쌓아 흙의 유실과 계곡으로의 침입을 방지하였고, 북서의 자연 절벽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삭토법에 의한 토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내성은 지형에 따라 협축법과 편축법이 고루 사용되었으며, 계곡이 열려 다소 방비가 취약한 곳에는 구간별로 석성을 축조하여 보강하고 있다. 성벽은 부근 일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를 장방형으로 다듬어 사용하였다.
매학정(경상북도 기념물 제16호)은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257-2번지[강정4길 63-6]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고산 황기로가 1533년(중종 28)에 조부의 뜻을 받들어 조부의 만년 휴양지에 지었다고 전하는 정자이다. 정자는 화강암 장대석 바른층쌓기를 한 세벌대 기단(원래는 막돌쌓기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측 2칸에는 전면에 툇마루를 둔 2칸통 마루방을 두고 나머지 2칸은 대청으로 꾸몄다.
채미정(국가지정 명승 제52호)은 구미시 남통동 249번지에 위치한다. 야은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건립된 정자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이다. 평면은 정방형으로 중앙의 1칸만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둥 위는 2익공으로 장식하였는데 익공쇠서에는 연봉이 있고 단부는 사절되어 있다.
금오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은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번지[유학길 593-31]에 위치해 있다. 이 서원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것이다. 읍청루, 정학당, 내삼문, 상현묘를 일직선으로 두었으며 정학당의 앞 좌우에 동재와 서재를 두었다. 학문을 강론하던 강당인 정학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사당인 상현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기둥 위는 외일출목의 초익공으로 장식하였다. 정문인 읍청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금오산성(경상북도 기념물 제67호)은 구미시 남단에 위치한,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이중으로 두른 석축산성으로서 절벽과 급경사를 이룬 정상부와 북향의 교각능선을 이용하여 포곡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산의 윗부분을 둘러 싼 내성은 둘레가 10리에 이르고 절벽이 험한 곳은 천연의 성벽을 이루고 있으므로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싸고 있는데 둘레가 5리가 되어 내외 성벽의 길이는 6.3㎞ 정도 된다.
인동향교 대성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호)은 구미시 임수동 409-3번지[수출대로 335]에 위치하며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만이 서향한 대지 위에 동일 축선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건 후에 외삼문 전면 우측에 관리사와 사주문을, 명륜당 앞에는 동재·서재를 중건하여 그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대성전은 장대석(원래는 자연석 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가운데 3칸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좌우 측칸에는 전면에 퇴칸을 둔 온돌방을 두었다.
도리사 극락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8호)은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번지[도리사로 526]에 위치해 있다.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곳에 지었다는 신라 최초의 절이다. 냉산을 등지고 있는 도리사 우측 끝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화강암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했다. 벽체를 모두 판벽으로 구성하고 바깥 벽면에는 벽화를 그렸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는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박정희로 107]에 위치한다. 이 가옥은 고령박씨 28세손으로 제5대~제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가 태어난 곳이다. 입구 경비실에 접한 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 건너 정면에 생가 대문이 있고 마당 좌측에 분향소가 자리 잡고 있다. 대문 바로 왼쪽에는 아래채, 우측에는 관리사가 있고 건너편에 안채가 놓여 있다. 아래채는 맨 좌측에 앞뒤로 1칸씩의 온돌방을 두고, 그 우측에 방앗간과 외양간 1칸씩을 두었다. 현재의 안채는 ‘ㄱ’자형 양옥으로 다시 지어진 것으로 현재 관리사무소로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