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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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暉 |
영어음역 | Yun Hwi |
이칭/별칭 | 정춘(靜春),장주(長州),장익(章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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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성별 | 남 |
생년 | 1571년 |
몰년 | 1644년 |
본관 | 해평 |
대표관직 | 공조판서 |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정춘(靜春), 호는 장주(長州). 증찬성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형이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이다.
[활동사항]
윤휘는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94년(선조 27)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 정랑, 사예, 장령, 필선, 사간을 역임한 후 전라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1618년(광해군 10)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明)에 다녀온 후 공조참판, 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한성좌윤이었으며, 이후 병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으며 특명전권대사로 적진에 출입하면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후 도승지에 임명되어 청(淸)과의 외교를 전담하였고, 한성부판윤·형조판서를 거쳐 1639년 우찬성으로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에 다녀오고, 1641년 공조판서가 되었다. 저서로 『장주집(長州集)』이 있다. 시호는 장익(章翼)이며, 사후에 아들 윤면지(尹勉之)의 공훈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