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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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之彪 |
영어음역 | Yun Jipyo |
이칭/별칭 | 충간공(忠簡公),해평군(海平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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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
성별 | 남 |
본관 | 해평 |
대표관직 | 평리지문하성사 |
[정의]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 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이다. 형이 문영공(文英公) 윤지현(尹之賢)이며, 아들이 대호군 윤보(尹寶)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좌찬성 윤근수(尹根壽)가 8세손이며 제4대 대한민국 대통령 윤보선(尹譜善)이 18세손이다.
[활동사항]
윤지표는 1332년 충숙왕이 복위하여 충혜왕의 폐신(嬖臣)들을 처벌할 때 대호군으로 있으면서 이에 연루되어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섬에 유배되었다. 1344년(충혜왕 5) 서연(書筵)이 설치되자 상호군으로서 시독관이 되었다. 1347년(충목왕 3) 평양윤에서 서북면존무사가 되어 군부판서에 이르고 다시 전리판서가 되었다.
1355년(공민왕 4) 지밀직부사로서 원(元)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민왕의 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에게 승의(承懿)의 호를 내려준 것을 사례하고 돌아왔다. 같은 해 해평군(海平君)에 봉해졌으며 이후 관직이 평리지문하성사에 이르렀다. 윤지표는 천성이 너그럽고 후하여 공사가 분명하며 선정을 베풀어 세간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몽골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고 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