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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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약 30,000여 기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적으로 20,000여 기가 밀집 분포되어 있다. 한국의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에서 크게 탁자식·기반식·개석식 등 3종류로 구분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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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거석(巨石) 문화의 산물로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무덤 유적으로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음성 지역에서는 고인돌의 발견 예가 많지 않으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탁자식이나 개석식 고인돌도 확인된다. 유적은 음성군 소이면 소재지에서 국사봉 방향으로 가다 이르는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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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주로 강을 낀 낮은 구릉 지대나 주변의 자연 지세에 알맞은 골짜기 방향이나 강·해안선을 따라 분포한다. 고인돌은 죽은 사람을 묻은 무덤이 대부분이나 제단으로 쓰인 경우도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굄돌에 따라 탁자식(북방식)·바둑판식(남방식)·구덩식(개석식) 등으로 나뉘며, 덮개돌 밑에 있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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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1리 동리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은 양덕1리 동리 뒷편 산기슭 산 흐름이 끝나는 밭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탁자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 덮개돌은 장축 방향이 NE40°로 산줄기의 흐름과 나란하다. 거정화강암으로 현재의 크기가 285×150×40~60㎝이다. 굄돌은 마구리벽의 한쪽이 없어지고 나머지 세 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세...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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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선사시대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장례법은 매장·골장·화장·초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물질적 증거로 남은 고분의 기본 장례법은 매장법이다. 초기의 매장법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을 안치한 후 흙으로 덮어버리는 간단한 움무덤이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전시대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선사시대의 분묘군은 주로 평야 지대나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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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 고려시대의 분묘는 신분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은 삼국시대 돌방 무덤의 전통을 이어받아 돌방을 만들고 흙을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들었으며, 일반인의 무덤은 돌을 정연하게 쌓아 석곽을 조성하였다. 음성군 금왕읍 소재지에서 대소면 방향으로 82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중원휴게소에 500m 못 미치는 지점의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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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미타사 방향으로 약 500m 올라간 지점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 옆에 밭과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는 지역과 구릉 지역, 인삼포로 경작되고 있는 지역은 고려장터로 불리는 돌널 무덤이 조성된 곳이다. 비산리 고분군도 이와 같이 돌널 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이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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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쌍봉리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음성군 금왕읍에서 삼성면 방면으로 8㎞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쌍봉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약 1㎞ 들어가면 쌍봉1리가 위치한다. 이 마을은 낮은 구릉성 산지에 논과 밭이 대부분이고 쌍봉초등학교가 있다. 쌍봉리 고분은 쌍봉1리 옆에 위치한 쌍봉2리의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쌍봉리 고분은 말무덤[馬塚]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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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무덤 유적. 월정리 돌무지무덤은 돌을 쌓아 올려서 널방[墓室]을 덮은 묘의 형식을 갖추었다. 돌무지무덤은 주로 석재가 풍부한 해안, 하천 부근, 산간지역 등에서 축조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인 고구려, 백제 초기까지 나타난다. 월정리 돌무지무덤은 그 일대가 능모랭이, 또는 뱀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사주열이라 불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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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도남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이 유적은 말무덤[馬塚]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 때 거란병이 침입했을 때 원남면 구안리에 주둔하며 수정산성에 진을 친 박서 장군과 대치하던 거란장군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 형세가 장군이 탄생할 만한 곳이라 고갯길을 파헤쳐 혈을 끊으니 백마가 나왔고, 백마가 울며 죽은 곳에 말무덤을 만들어 장수의 탄생을...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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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기산포지. 오갑초등학교에서 북동쪽으로 문촌제방을 따라 약 1㎞ 거슬러 올라가면 옥산사(玉山祠)와 삼효각(三孝閣)이 있다. 유적은 여기에서 문촌제방 건너편 남동쪽으로 약 25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과수원으로 개간된 밭에 위치한다. 토기는 과수원을 중심으로 하여 과수원 북쪽으로 잇대어 있는 밭 일대에 산포되어 있다. 범위는 동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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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음성읍 삼생리는 원남면과 경계를 이루며, 원래는 삼산(三山)이라 했는데 이곳에 거주하면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전설로 인해 삼생(三生)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충신 장충범의 정려와 청주이씨의 열녀문 등이 있다. 삼생리 유물산포지는 장충범의 정려각 주변 야산의 동남 사면 기슭 나대지로 정려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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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음성군 삼성면 소재지에서 양지회관 방향으로 들어가 동리저수지를 지나 위치한 양덕1리의 우측 산자락 마이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마이산의 기슭이라 하더라도 경사가 없는 평지에 가까웠으며, 주변은 밭으로 개간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유물은 지표에서 청자편·백자편·고려 토기 등이 수습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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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유적은 용성리 뒤쪽의 과수원 일대 산기슭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부지의 문화 유적 지표 조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용성리 선사유적은 산기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표토층은 과수원 조성으로 인해 대부분 교란되었고, 과수원의 대부분은 석영질 암석이 보이며, 그 아래층은 붉은 색의 석비레...
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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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선돌은 큰돌〔巨石] 기념물의 한 종류로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선돌은 그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우나 서유럽의 경우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시장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생리 선돌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박장수라고 불리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모두 쌀을 몇 가마씩 들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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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선돌. 선돌은 원래 자연석이나 자연석의 일부를 가공하여 세운 돌로서, 지역민들이 기념물이나 신앙·숭배의 대상물로 삼은 유적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입석(立石)이라고도 하는데, 감곡면 오향리에 있는 선돌은 숫선돌과 암선돌이 동서로 서로 짝을 이루며 서 있다. 오향리 선돌은 감곡중학교 뒤쪽 선들거리들 가운데에 있는데, 숫선돌과 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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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 중현에 서 있는 입석. 월정리 선돌은 화강암 판석을 사각 기둥 모양으로 약간 치석하여 세웠다. 1983년에 마을 회관 주위에 담을 쌓으면서 선돌이 담 안으로 들어갔으나 지금은 담이 무너져 밖에서 볼 수 있다. 선돌의 크기는 높이 135㎝, 너비 44㎝, 두께 16㎝로 앞면과 뒷면에 다듬은 흔적이 보이고 이끼가 많이 끼어 있다. 현재 신앙의 대상이 되지...
관방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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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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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에 있는 전통시대의 통신 시설. 망이산 봉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망이성은 충주목 관내에 속하며, 동으로 음성의 가섭산에 이어지고, 서로는 경기도의 죽산 검단산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역시 망이성 봉수는 충주목에 소속된 봉수로서 동으로 음성현 가섭산으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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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축조한 방어 시설. 방어 시설은 도랑 파기와 같은 형태의 해자(垓子), 나무 울타리를 만드는 목책(木柵)이나 나무 말뚝인 목익(木杙) 등을 거쳐 보다 견고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순수한 우리말인 ‘잣’을 한자로 성(城)이라 하며, 성벽이 여러 겹을 가지면서 안쪽의 성(혹은 내성)과 바깥쪽의 곽(혹은 외성)을 아울러 ‘성곽’이라 한다. 방어 시설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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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기존에는 남쪽 국도 37호선을 사이에 두고 가막산과 서로 대치하고 있는 오대산성이 가막산성 또는 할애비성이라 불려왔다. 그런데 2002년 지표 조사에 의해 오대산성과 가막산성은 별개의 산성으로서 오대산성은 할미성으로, 가막산성은 할애비성으로 불려졌음이 확인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의 가막산성은 음성-괴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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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와 충도리 사이 국사봉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고문헌 기록에는 국사봉 산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일제시대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은 금고리의 서남 약 600간 거리의 국사봉 위에 있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암석 사이를 토루로 이어쌓았다. 둘레는 170간이고 높이는 4척이며 거의 무너졌다.”고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음성과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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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 일원에 축조된 고대 국방 시설. 그간 봉수대로 알려져 왔으나 1980년 단국대학교 학술 조사단에 의해 고구려의 남진 기지로 쓰인 산성으로 추정되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주로 조선시대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록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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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에 있는 고대의 산성. 석인리 산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석인리 성지, 석인리의 서북 약 5백간에 있음. 석축으로 둘레 71간, 높이 3척, 두께 3척, 완전함’이라고 하여 처음으로 산성의 존재가 소개되어 있고, 『전국유적목록』에 ‘석축, 주위 70간, 높이 3척, 두께 3척’이라고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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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토성. 성본리 토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전혀 없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산동의 동북 약 600간에 있음. 토축으로 둘레 600간, 폭 10간, 높이 2간, 완전함.” 이라고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유적목록』에는 앞의 자료를 인용하여 “토축, 둘레 600간. 폭 10간, 높이 2간”이라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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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일원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수정산성의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호서읍지(湖西邑誌)』·『대동지지(大東地志)』·『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에 의하면 수정산이 ‘음성 읍내의 동쪽 3리 또는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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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성 터. 신천리 토성에 관한 고문헌의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처음으로 “군내면, 신천리, 한천에 있음. 토축으로 주위 약 300간, 높이 6척, 폭 5척”이라고 소개되었다. 『전국유적목록』에서는 앞의 자료를 요약하여 “사유, 토축, 주위 300간, 높이 6척, 폭 5척”이라고 간단히 소개하였다.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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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의 오대산 정상부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오대산성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 사이의 해발 약 399.7m 오대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토축 산성으로 오성산성 또는 할미성이라고 불려진다. 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전혀 없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원남면 상노리, 오대산성, 상노리 동남 약 300간, 음성·괴산 경계에 있음,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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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이진봉 정상부에 있는 고려시대 토성. 이진봉 산성은 고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신양리·병암리 고진봉, 생극면사무소의 동남 약 5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둘레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폐함”이라 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유적목록』에는 “토축, 둘레 약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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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장자봉에 있는 토축 산성. 장자봉 산성은 문헌 기록이나 조사 자료는 전혀 없고 2002년의 지표 조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된 산성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와 만담리 뒤 해발 192m의 장자봉 봉우리를 감싸고 있다. 장자봉 산성의 동쪽으로는 북류하는 응천(鷹川)을 끼고 음성-장호원 간의 국도 37호선이 지나고 있고 북쪽으로는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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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팔성산에 있는 고대 산성. 팔성산성은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도계에 걸쳐 있는 중요한 산성이나 고문헌에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팔성리, 금왕면 관성리의 북방 약 400간 팔성산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현존하는 부분 약 500간, 반폐함”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책 경기도편에 “율면 산성리 팔성, 본성은...
가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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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있던 터. 가마는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登窯]로 나눈다. 한데가마에서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구워졌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 발굴된 예가 없고, 확인되는 가마는 모두 굴가마이다. 전통시대의 가마는 대부분 파손되어 터만 남은 상태에서 확인되므로 가마 터 유적이라고 부른다. 가마는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인 연소실(燃燒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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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 터. 음성읍에서 무극 방면 국도 37호선을 타고 달리다 보면 유현고개를 넘어 500m 거리에 감우리가 있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보현산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도로를 따라 동음리 승주를 지나면 동음리 백자가마 터에 이르게 된다. 동음리 입구에 있는 민가 바로 옆과 인삼밭에 자기 조각과 도지미, 불탄 흙 등이 널리 산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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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2리에 있는 조선 중기 철화백자가마 터. 철화백자(鐵畵白磁)는 백토로 빚은 그릇 표면에 철분이 많은 안료인 철사로 문양을 그린 후 투명한 백자유를 씌어 고온에서 구운 것으로, 문양은 적갈색 계통이다. 문촌리에서 이러한 철화백자를 만들었던 가마 터 흔적이 확인되고 있어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채집된 유물로 미루어보아 조선 중기에 지방에서 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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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가마 터. 비산리에서 미타사 쪽으로 약 500m쯤 가면 저수지가 있고, 그 옆에 단층 슬라브집이 있는데, 이곳이 기와를 굽던 기와가마 터라고 한다. 또 저수지 아래쪽에는 사과나무 밭이 있는데 이곳 또한 기와를 굽던 곳이라 전한다. 비산리 기와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졌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기와가마 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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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철화백자가마 터. 사곡리 철화백자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진 곳으로, 가마의 규모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수습된 백자편에서 철화흔이 확인되고 있으며, 순백자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밭을 일부 잘라 길을 닦는 과정에서 자기 조각과 검붉게 탄 흙 등이 많이 나왔으며, 현재 도로 양편의 과수원 쪽과 논둑에도 자기편과 불탄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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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 터. 삼생리 안슴이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끼고 돌면 사기장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백자가마 터이다. 가마 터 주변은 삼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백자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은 삼밭의 산 쪽 윗부분과 아래쪽이다. 지표 조사만 실시된 유적지라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우나 굴식 가마가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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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고려시대 청자가마 터. 생극면 면소재지가 있는 삼거리에서 충주 방향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회전하여 북동쪽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수레의산이 보인다. 수레의산 정상에서 남서쪽 사면 일대에 동부컨트리클럽이 들어서 있다. 생리 청자가마 터는 동부컨트리클럽의 중심부인 해발 235~260m의 서쪽 계곡부에 자리 잡고 있다. 생리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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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3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자기산포지. 유적은 양덕3리에서 약 30m 떨어진 중부고속국도 상행선 휴게소 뒤쪽에 위치한다. 유물은 주로 ‘작은내’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등성이에서 채집되었다. 유적은 중부고속국도 건설 예정지에 대한 지표 조사 때 확인되었다. 유물이 채집된 범위는 40m×30m이다. 유물은 조선시대 중기 지방 가마에서 구워진 청화백자편이 수습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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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3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마 터. 발견되는 옹기편들로 미루어보아 주로 옹기를 많이 구운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교인이 예부터 많이 거주하여 옹기를 굽는 교유촌을 형성하였고, 옹기 판매도 왕성하였다고 한다. 마을 주변에는 사방에 옹기편들이 흩어져 있다. 그릇을 만들기 위한 양질의 진흙이 있었고, 깨진 옹기 조각들을 진흙과 함께 섞어 가옥의 흙벽을 바르기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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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 터.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 무극에서 음성 방향 3㎞ 지점에 금석저수지가 있다. 금석저수지 옆 금석교를 지나 왼쪽 도로를 따라 지하도를 지나 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량의 백자편이 드러나 있다. 2002년 음성군 문화유적분포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육령리 백자가마 터에서 수습된 백자는 대부분 푸른빛이나 우윳빛이 도는 백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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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백자가마 터. 인곡리 백자가마 터는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을 뿐 시굴이나 발굴 조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백자편이 주로 수습되었는데, 백자는 유백색을 띠며 모래흔도 아주 고운 모래를 사용하여 고급스럽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주로 접시, 대접류가 많으며, 불탄 흙과 도지미, 노벽편 등이 흩어져 있다. 현재 인곡리 백자가마 터는 토사에 상...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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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옛 절 터.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지(寺址)는 상당수가 있으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 상봉악사 구재가섭산(西迦葉寺 上鳳岳寺 俱在迦葉山)”이라 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확인되는 서가섭사지 곧 응진암지(應眞庵址)와 상봉악사지(上鳳岳寺址) 등이 확인된다. 1632년에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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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 김생이 글씨 연습을 했다고 전해지는 불교 암자의 터. 김생암지는 원통산 서쪽 기슭에 있는 폐사지로, 김생암이 있었던 터이다. 김생은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능하였으며,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다. 송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김생암은 일제강점기 때까지 있었던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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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절터. 상봉악사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와 더불어 가섭산에서 운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호서승람(湖西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언급이 없고, 조선 말기의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이미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2년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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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 보현산 기슭 ‘성주골’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음성에서 금왕 쪽으로 국도 37호선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동음리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이 길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처음 나타나는 곳이 승주인데, 이곳에 성주사지가 있다. 현재 성주사지는 폐허가 되어 있고, 잡초와 수목이 무성하여 건물지 등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1910년경에 빈 절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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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응진암(應眞庵)의 터. 응진암지는 가섭산(迦葉山) 정상부의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경사면체의 축대를 쌓아 터를 확보하였다. 절터에서 서쪽 능선 너머 가섭사(迦葉寺)가 있다. 응진암의 창건, 폐사 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가섭산 위에 있고, 옛 이름은 서가섭사(西迦葉寺)”라 하였다. 서가섭사...
탑·부도
탑·부도
탑·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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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갑산리의 옛 절터에 있는 석탑으로, 원래는 7층 석탑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4층만 남아 있다. 갑산리 절터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정산 앞의 속칭 탑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현재 절터 주변지역은 모두 밭으로 변하여 정확한 절터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갑산리 석탑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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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대경사(大京寺)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대경사 삼층석탑은 음성향교 앞 묘정사 부근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기 집으로 옮겨놓았다가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방치되었던 탑을 50여 년 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매우 훼손된 상태이다. 1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석을 올려놓고 그 위에 바로 1층 탑신을 얹었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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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부재. 탑골의 보현암 주변은 절터로서 많은 기와편과 함께 석불 또는 각종 대석과 석탑 부재들이 산재하여 있다. 보현암 터에서 확인되는 부재는 석탑 부재와 연화대석 등인데, 현재 법당의 남쪽 구석에 쌓여 있다. 석탑 부재는 옥개석 2점과 연화대석은 3점이다. 그 중 1점은 흙에 묻혀 있어 층급받침을 확인할 수 없으나 낙수면이 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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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부재. 상봉악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사찰이 운영되었던 기록이 보이며 조선 말기에 간행된 읍지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와 있다. 가섭산 서쪽의 속칭 봉학골 기슭에 상봉악사의 터가 남아 있다. 상봉악사 주건물지 동쪽 끝부분에 석탑 부재가 흩어져 있다. 현재 4개가 확인되는데 화강암으로 조성한 소형 석탑의 일부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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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3리 하정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공간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이 많이 만들어졌고, 중국에서는 전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많이 만들어졌다. 쌍정리 삼층석탑은 마을의 민가 안에 있고,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쌍정리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 사찰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개인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건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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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은 평곡리에 있었던 사찰의 사리탑으로 건탑되어 계속 절터를 지켜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1934년 연풍정(지금의 경호정)을 지으면서 현재의 위치인 설성공원 내로 옮겨진 것이라 한다.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갖춘 일반형 석탑으로, 상륜부(相輪部)가 결실되었을 뿐 보존 상태가 양호한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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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통일신라 또는 고려 전기의 모전석탑. 음성 오층모전석탑은 원래 읍성읍 읍내리 교동 음성향교 앞 도로 건너편에 있었던 폐사지에 있었다. 그러다가 1946년에 수봉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 그 후 1995년 현재의 위치인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향토자료전시관 서쪽 광장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단층으로 되어 있는 기단은 2매석으로, 사각형의 지대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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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중동리의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부재. 음성군 소이면 중동리의 오상동 폐사지에는 유물들이 남아있는데 초석·장대석·탑 부재 등과 기와·토기·자기 등 생활 유물들도 많이 눈에 띤다. 이 중동리 사지는 음성에서 가장 뛰어난 석부재와 막새기와가 수습되는 곳이다. 정밀 지표 조사 결과 기와에서 간패사(間珼寺)라는 절 이름이 나왔다.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부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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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일반적으로 사찰의 중심에 세운다. 후미리의 석탑도 절터의 중심에 세웠던 것으로, 원래는 5층이었으나 현재 1층만 남아 있다. 후미리 석탑이 있는 후미리 사지의 창건 시기나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다. 단지 1942년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처음으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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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의 백운사 옛 절터에 있는 고려 전기의 부도. 백운사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절터에 있는 ‘백운사사적비’가 1692년(숙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화재로 폐사된 이후 17세기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흙 속에 매몰된 부도는 어느 때, 누가 만든 것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부도의 양식으로 보아 임진왜란 전인 조선 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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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 성주사지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부도. 성주사는 빈 절로 남아 있다가 1910년경에 자연 붕괴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성주사지는 폐허가 되었고, 옛 터의 남쪽 언덕에 2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성주사는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보현산에 성주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17세기 후...
사당·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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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1리에 있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재실(齋室). 경모재는 담장을 콘크리트로 둘렀고, 솟을대문 좌우에는 2칸씩 행랑을 달았다. 입구에는 1979년 민영규(閔泳奎)가 쓴 ‘황려문(黃驪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 양식의 재실이 있다. 앞의 1칸은 툇간으로 ‘경모재’란 편액을 달았다. 재실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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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 신후재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으로,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좌부승지, 안변부사, 우승지, 좌승지, 진하겸사은부사, 승정원도승지,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 3월 갑술옥사 때 여주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4월에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오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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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1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사우. 도원사는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사우(祠宇)로, 초계정씨는 정배걸(鄭倍傑)을 시조로 하고 있다. 정배걸은 초계성산에 정착해 살았으나 그 선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정배걸은 1017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문종 때 예부상서, 중추원부사를 지냈다.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으로 문하시중상주국광유후(門下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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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초계정씨의 중시조를 봉안한 사우. 도장사에는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죽계(竹溪) 정창(鄭昌), 우헌(愚軒) 정덕기(鄭德麒), 정국주(鄭國柱),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로(鄭國櫓), 정국빈(鄭國彬) 등 여덟 사람을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中丁)에 제사하고 있다. 도장사는 조선 숙종조에 창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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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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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조선 초기 문신 권제를 봉안한 사묘. 권제 부조묘는 권제(權踶)[1387~1445]를 봉안한 사당이다. 문경(文景)은 권제의 시호이다. 권제의 자는 중의(仲義), 호는 지재(止齋), 본관은 안동이며 권근(權近)의 아들이다. 1445년(세종 27) 정인지, 안지 등과 『용비어천가』 편찬에 참여하였다. 훗날 영의정에 증직되고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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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을 봉안한 사묘.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1352~1409]은 본관은 안동,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이다. 고려 말엽의 정승 권박의 증손이며 검교정승 권희의 아들이다. 1409년(태종 9)에 58세로 별세하자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은 책으로 『입학도설(入學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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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가 수학하던 곳. 백련서재는 조선 숙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암 신후재(申厚載)[1636~1699]가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던 장소이다. 신후재는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에 석방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서재(書齋) 앞 연못에 백련 꽃이 있는데, 이는 신후재가 청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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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는 안동김씨 문중의 입향조 김진강(金震綱)의 사당. 사당은 문중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보통 위패를 모실 수 있도록 건축된다. 상평리 숭모재는 1922년 안동김씨 문중에서 음성으로의 입향조인 김진강의 제사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노은면을 지나 성황고개를 넘어서면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가 되고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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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1리에 있는 해주최씨(海州崔氏)의 재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서 대소면으로 가는 국도 52호선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최성미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1㎞쯤 들어가면 소탄 새마을회관이 보이는데 그 옆에 숭모재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현대식 시멘트 청기와를 올렸다. 목조건물에 벽돌로 벽을 쌓았으며 주위에는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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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청주고씨(淸州高氏)의 사우. 사우는 문중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보통 위패를 모실 수 있도록 건축된다. 숭덕사는 1986년 청주고씨 문중에서 제사를 위해 마련한 사우이다.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국도 36호선를 따라 충청북도 청주시 방면으로 가다가 한금령휴게소를 지나 2㎞쯤 내려가면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이른다. 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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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함종어씨(咸從魚氏)의 재실. 사당, 사묘, 사우, 재실 등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 명칭으로 문중의 선조들에게 제를 지내기 위한 장소이다. 쌍충재는 어재연(魚在淵)·어재순(魚在淳) 형제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두 형제의 묘소 앞에 세웠다. 쌍충재는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1리 최성미의 성본리 토성 안에 위치한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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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에 있는 안숙공 권준(權蹲)[1405~1459]의 사우. 부조묘는 사당·사우와 같이 문중의 선대 조상 가운데 중요하게 기억하거나 기릴 만한 분을 대수에 상관없이 영원히 제향하라는 의미에서 건립하는 것이다. 권근 삼대묘가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 초입에 위치하며, 안양공 권반의 부조묘 오른쪽에 있다. 권준 사당은 본래 현재의 위치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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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안양공 권반(權攀)[1405~1459]의 사우. 부조묘는 사당·사우와 같이 문중의 선대 조상 가운데 중요하게 기억하거나 기릴 만한 분을 대수에 상관없이 영원히 제향하라는 의미에서 건립한다. 부조묘라기보다는 사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근 삼대묘가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 초입에 위치하며, 안숙공 권준의 부조묘 왼쪽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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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순창조씨(淳昌趙氏) 문중의 사당. 사당은 문중 조상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순창조씨 문중에서 81위의 선조를 모시기 위해 1989년에 세웠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516번 도로를 따라 소이면 쪽으로 가다 보면 음성천과 석인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석인교 100m 못 미쳐 좌측 충도리 마을로 들어가면 충도1리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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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이기홍을 봉안한 사당. 옥산사는 주자(朱子), 송시열과 함께 직재(直齋) 이기홍(李其洪)을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사당이다. 옥산사는 본래 괴산군 연풍면 원통리에 있던 문산서원을 1908년에 복원한 사당이다. 문산서원이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자 40여 년 뒤인 1908년에 사액서원의 철폐를 애석하게 생각한 유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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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진주강씨 문중의 재실. 육선재는 비교적 근래에 제향을 위해 지은 진주강씨(晋州姜氏) 문중의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앞 1칸은 툇간이다. 재실에는 ‘육선재(陸仙齋)’라고 판각한 편액을 걸었다. 중앙에 정문을 달고 ‘정효문(旌孝門)’이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외곽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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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횡성공파(橫城公派) 청산공종회(靑山公宗會)의 사당. 사묘는 문중에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므로, 문중이 번성한 곳에서는 최근까지 크게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사당에 제사의 기능뿐만 아니라 강학의 기능을 더하여 서원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근대에 오면서 강학의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기능만 강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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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순국 열사 박세화를 기리는 사당. 본관이 밀양인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1895년(고종 32)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분개하여 도사 윤응선(尹膺善)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다. 그후 석방되어 음성읍 동음리 등지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찾아오는 문도(門徒)들을 가르치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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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조인옥(趙仁沃)의 사우. 조인옥은 본관이 한양이며, 자가 군계(君啓)로,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돈의 아들이다.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1387년(우왕 13)에는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이성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정도전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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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주응동이 주희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건립한 사당. 태교사의 설립자인 주응동(朱應東)의 본관은 신안(新安)이고 자는 광여(光汝)이다. 음성 출신으로, 주희(朱憙)[1130~1200]의 26대손으로 알려져 있다. 태교사는 1744년(영조 20)에 주응동이 조선 초기의 문신 김여지(金汝知)[1370~1425]가 명에서 가져온 주희의 영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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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평산신씨 영당.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하기 위하여 세운 영당이다. 생극면 차평리의 수리뜰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공포는 다포식이고, 지붕에 돌기와를 올렸다. 정면에 ‘신씨영당(申氏影堂)’이라는 편액을 걸었고, 건물 안에는 신씨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벽돌담장으로 영당 주위를 둘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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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의 안가마골에 있는 무송윤씨의 재실. 원남면 하노리에 무송윤씨(茂松尹氏)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3백여 년 전이다. 당시 무송윤씨의 시조인 윤양비(尹良庇)의 14대손 윤청(尹暒)이 현종(顯宗) 때 경상북도 상주에서 살다가 원남면 하노리 능촌에 세거한 것이 처음이다. 희암재(希庵齋)는 1965년에 세운 것으로, 희암(希庵)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
능묘
능묘
능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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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태종의 제1서자 경녕군의 부인 청풍김씨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태종의 장남이다. 경녕군 부인 청풍김씨는 1416년(태종 16)에 경녕군과 성혼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경신택주 안산군부인(敬愼宅主 安山君夫人)에 봉해졌다. 1450년(세종 32) 4월에 서거하여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 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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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원조(金遠祚)의 묘. 김원조는 경기도 이천 사람으로 1919년 3·1운동 때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연락 기관을 서울에 설치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1919년 12월 28일 체포되었다. 10년형을 언도받아 복역 중이던 1922년 4월 15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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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묘. 민동량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군삼(君三), 호는 송암(松巖)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민휘정(閔徽鄭)의 아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가 아버지를 부르면 문득 눈물을 흘렸다. 10살에 어머니가 아프자 향을 피워 하늘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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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민발의 묘소. 민발은 조선 전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올랐다. 묘역은 약 150㎡인데 묘 앞에는 상석, 망부석, 대리석 묘표,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높이 총 227㎝이다. 신도비의 전액(篆額)은 ‘위양공민발신도비명(威襄公閔發神道碑銘)’이다. 1707년(숙종 33)에 세워진 이 비의 비문(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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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문신 민영모의 묘단. 민영모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여주(驪州)의 「인물조」에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기록에서는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을 지냈고, 명종 즉위 후 왕의 총애를 받아 문하시랑평장사를 거쳐 태자태사(太子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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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석평의 묘소. 반석평은 천얼 출신임에도 당상관에 오른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반서린(潘瑞鱗)의 둘째아들이며, 1472년(성종 3)에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崖)이다. 제8대 유엔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반석평의 16세손이다. 본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조안리에 있었던 묘를 음성군 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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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인후의 묘. 반인후의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음성현감 반석권의 손자이고, 선무랑(宣務郞) 반사렴(潘士濂)의 아들로 음성 지역에 거주하였다. 1591년(선조 24)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 25위로 입격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으며, 벼슬은 군자감첨정에 이르렀다. 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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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생골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저의 묘. 송저는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본관은 진천이다. 상산백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낭장 송광도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사인동(지금의 생골)에 살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1422년(세종 4)에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지보성군사(知寶城郡事)로 있을 때 백학자[새매]를 바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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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정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후재의 묘. 신후재(申厚載)[1636~1699]는 강화부유수, 개성부유수,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1694년에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에 의해 여주에 유배되었다. 1697년에 석방되었으나 은퇴하여 충주 오갑장에서 학문에만 전념했다. 주요 저서로는 『규정집(葵亭集)』이 있다. 신후재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IC에서 국도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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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묘. 어재연(魚在淵)[1823~1871]은 조선 후기의 무장으로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이며 어용인(魚用仁)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에 충청도 병마절도사, 회령부사를 지냈고, 그 해에 병인양요가 나자 우선봉장으로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여 적을 격퇴시켰다. 1871년(고종 8) 2월 도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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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명 쌍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지걸의 묘. 이지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천(秀天), 호는 금호(琴湖)이고,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이연(李堜)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에 생원 3등 49위로 입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고, 그 후 경상도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부임했다가 남형(濫刑)의 죄로 곤양(昆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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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묘. 장충범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효칙(孝則)이다. 조선 선조 때의 충신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다. 음보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자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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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석오의 묘. 정석오는 조선 영조 때 소론의 대표적인 인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이다. 1746년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였고, 1748년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로 청나라로 가던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묘역은 약 600㎡로,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등을 갖추었다. 비제(碑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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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형(趙珩)의 묘소. 조형은 본관이 풍양(豊壤)이며,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이다. 1651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와 보덕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감사를 거쳐 1657년 도승지, 대사간이 되었다. 1669년에는 평안도 외방별시의 시관이 되었고, 이듬해 좌참찬을 지냈으며, 1673년 예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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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유지(遺地)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비(碑). 비(碑)의 총 높이는 223㎝이며, 3단으로 구성된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62㎝, 앞면 59㎝, 측면 30㎝이다. 또한 가첨석의 높이는 58㎝, 앞면 106㎝, 측면 70㎝이다. 방부(方趺)의 높이는 3㎝, 앞면 118㎝, 측면 75㎝이다. 비석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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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고덕수의 묘비. 고덕수는 자는 군명(軍明),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랑장 고천연(高天連)의 손자이다. 1432년(세종 14)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연풍현감을 지냈다. 1456년(세조 2)에 취금헌(翠琴軒)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라는 이유로 화를 입어 관(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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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걸의 묘비. 권걸(權傑)의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26㎝로 비신은 높이 81㎝, 너비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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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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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지석.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서거했으며, 같은 해 4월에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으로 예장(禮葬)하였는데 이때 묘지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1444년(세종 26) 3월 충주로 이장을 하였는데 이 묘지석은 가져가지 못하고 광 속에 보관하다가 1965년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권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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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 권근(權近)의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증판삼사사(贈判三司事) 이존오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정부우찬성 권제(權踶), 차남은 길창군 권규(權跬), 삼남은 한성부소윤 권준(權蹲)이다. 딸은 판종부시사 최주(崔宙)와 결혼을 하였다. 묘비는 1444년(세종 26)에 건립되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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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 권념의 묘비. 권념(權念)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경(仲經), 초휘(初諱)는 권응(權應)이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정난공신 안천군 권준의 차남이다. 모친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永春縣夫人 海州鄭氏)로, 정도공(貞度公) 정역(鄭易)의 딸이다. 음보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거쳐 옥천(沃川), 마전(麻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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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념 부인 강화최씨의 묘비. 강화최씨(江華崔氏)는 마전군수 권념(權念)의 부인으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어머니는 강씨(姜氏)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495년에 별세하였으며, 묘비는 1497년에 세워졌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부는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167㎝로, 비신 높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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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람의 묘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이다. 양촌 권근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참모로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1등 공신이 된 후 좌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이 되었다. 화강암 1매로 만들어졌다. 전체 높이는 194㎝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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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의 부인 고성이씨의 묘비. 고성이씨는 문정공(文貞公) 이암(李嵓)의 손녀이며,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원(李原)의 딸이다. 1495년 81세로 졸하였으며, 영원군부인(寧原郡夫人)으로 봉해졌고, 2남 8녀를 두었다. 남편 권람(權擥)의 묘비와 동일하다. 묘소 앞쪽, 오른쪽에 위치한다. 화강암 1석을 이용하여 비면과 상단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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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權擥)의 신도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감찰(監察)을 거쳐 교리(校理)를 지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에 앞장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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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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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부의 묘비. 총 높이는 127㎝이며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석의 규모는, 비신(碑身) 높이 112㎝, 앞면 52㎝, 측면 20㎝이고,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74㎝, 측면 43㎝이다. 비석 앞면에는 ‘조산대부행사헌부감찰권공지묘 영인양천허씨부우(朝散大夫行司憲府監察權公之墓 令人陽川許氏祔右)’라 쓰여 있다. 비석 뒷면에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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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권자선의 묘비. 총 높이 160㎝로, 3단으로 되어 있는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높이 100㎝, 앞면 49㎝, 측면 15㎝이고, 하엽(荷葉)은 높이 45㎝, 앞면 56㎝, 측면 15㎝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78㎝, 측면 53㎝이다. 비석 앞면에는 ‘통훈대부행개천군수권자선지묘숙부인선산김씨지묘(通訓大夫行价川郡守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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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제의 묘비. 권제는 세종 때 집현전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편찬에 참여하였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너비 59.5㎝의 크기이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단 장식을 한 돌로 만들었다. 묘비 상단에는 7엽의 연화문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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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제(權踶)의 신도비. 권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다. 1440년(세종 22)에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인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고자 18대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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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준의 묘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오미(五美)로 양촌 권근의 4남이다. 1422년(세종 4)에 음보로 종묘서부승(宗廟署副丞)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수충협찬정난공신에 오르고 안천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정헌대부(正憲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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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준(權蹲)의 신도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며, 권근의 아들이자 권제(權踶)의 동생이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1427년(세종 9) 감찰에 기용되었고, 1430년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권준은 호조좌랑 당시 공법(貢法)이 제정되었을 때, 척박한 산과 밭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도 평야 지대의 전답과 같이 취급할 경우 폐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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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권철인(權徹仁)의 선정비. 권철인은 1844년(헌종 10)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했다가 1851년(철종 2) 7월 신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권철인 혜휼군민선정비는 재직시인 1850년(철종 1)에 세운 것이다.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음성향교 앞쪽에 다른 선정비들과 함께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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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헌의 묘비. 권헌(權憲)의 본관은 안동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景公) 권제(勸踶), 할아버지는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이며, 아버지는 길창군(吉昌君) 권걸(勸傑)이다.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음보로 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에 올랐고, 이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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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 재질은 광배형 화강암 자연석으로,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모각하였다. 비신의 양 측면에 약간 땜질을 하였으며, 삼각형의 머리 부분은 뾰족한 모습이라 남성 선돌을 연상시킨다. 비신(碑身)의 전체 높이는 81㎝이며, 앞면의 폭은 43㎝, 측면의 폭은 22㎝이다. 비석 앞면에는 ‘국사산하황룡산황룡두하룡전평(國師山下黃龍山黃龍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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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화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기화는 자가 국현(國賢)이고, 호는 춘파(春波)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환유(金煥維)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김기화가 글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마음이 이상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이상한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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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 음성 입향조 김덕항(金德恒)의 묘비. 김덕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의 아들이다. 자는 사구(士久)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를 지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성에서 음성읍 초평리 처가인 남씨(南氏) 집으로 와서 우거(寓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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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호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김두하의 선정비(善政碑). 김두하 선정비(金斗河 善政碑)는 무진 사월(戊辰 四月)에 제작되었다. 김두하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나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음성현감(陰城縣監)을 역임한 것으로 보이며,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존경을 받은 듯하다. 총 높이는 145㎝이며 2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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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김명제(金明濟)의 효행비. 김명제 효행비(金明濟 孝行碑)는 1963년에 세워졌으나 김명제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총 높이 165㎝이고, 3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2㎝, 앞면 40㎝, 측면 16㎝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38㎝, 앞면 70㎝, 측면 46㎝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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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음성현감 김의의 선정비. 김의(金嶷)는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직언을 하였거나 학행(學行)이 뛰어난 유생을 뽑아 6품직을 제수할 때 뽑힌 인물이다. 이때 음성현감에 부임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를 갖춘 묘갈형이다. 윗부분은 이수형으로 조각하였는데, 턱을 이루며 비신으로 이어진다. 전체 높이는 155㎝이다. 선정비 앞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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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응근(金應根)[1793~1863]의 선정비. 김응근은 조선시대 철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계경(溪卿), 호(號)는 의석(宜石)이다. 참판(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며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의 동생,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의 형이다. 1816년(순조 16)에 사마시 생원 3등 6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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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김재은(金在殷)의 선정비. 김재은은 고종 때의 관리이다. 1904년(광무 8)에 중추원의관(정3품)을 거쳐 1905년 정2품 가선대부(正二品嘉善大夫)로 충주군수 서주임관1등(敍奏任官一等)에 임명되었다. 내부대신육군부장훈1등(內部大臣陸軍副將勳一等) 이지용(李祉鎔)이 발급한 충주군수로 임명받았을 때의 교지(敎旨)가 국립중앙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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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김지순의 선정비. 김지순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수(士秀), 호는 삼수당이며, 서울 태생이다. 1824년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부임했다가 1826년 공청도(公淸道)가 충청도로 되고, 충주목이 복구되면서 충주목사가 되었다. 비(碑)의 총 높이는 124㎝이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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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구장 남궁은의 송덕비. 묘표형의 비석으로 가첨석은 없다. 전체 높이는 119㎝, 앞면 폭 46㎝, 측면 폭 19㎝의 규모이다. 비신 중앙에 ‘삼구장남궁은송덕비(三區長南宮恩頌德碑)’라 쓰여 있고, 왼쪽에 송덕 사실을 4언시로 옮겨놓았다. 사언시의 내용은 “십년 간을 부지런히 근무하였으니 좋도다 그 말씀이여! 사사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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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설성공원 안에 있는 독립기념비. 1945년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총 높이가 283㎝이고, 비신의 경우 높이 200㎝, 앞면 폭 85㎝, 측면 폭 43㎝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2㎝, 앞면 폭 94㎝, 측면 폭 51㎝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31㎝, 앞면 폭 164㎝, 측면 폭 122㎝이다. 비석 앞면에는 ‘독립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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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충주목사를 역임한 엄찬의 선정비. 목사 엄찬 진휼비(牧使 嚴讚 賑恤碑)는 총 높이가 168㎝이고, 비신은 높이 110㎝, 앞면 67㎝, 측면 34㎝이며, 개석(蓋石)은 높이 59㎝, 앞면 76㎝, 측면 40㎝이다. 방부(方趺)는 높이 9㎝, 앞면 75㎝,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목사엄후찬진휼혜선비(牧使嚴侯讚賑恤惠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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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채청의 비(碑). 목사 이채청 비는 조선시대 충주목사를 지낸 이채청과 관련된 비석이다. 이채청에 대해서는 1802년(순조 2)부터 1810년(순조 10)까지 충주목사를 역임한 사실 이외에는 특별히 기록된 것이 없다. 비문에 이월(二月)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을 뿐, 날짜 부분이 파손되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충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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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유허비. 총 길이는 158㎝이고, 비신(碑身)의 높이는 116㎝, 앞면 47㎝, 측면 11㎝이며,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38㎝, 앞면 61㎝, 측면 38㎝이다. 하단의 방부(方趺)는 높이 4㎝, 앞면 67㎝,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효자증통훈대부호조좌랑송암민공동량유허비(孝子贈通訓大夫戶曹佐郞松巖閔公東亮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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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민발(閔發)[1419~1482]의 신도비. 민발 신도비는 민발의 사후에 평생의 행적을 담은 글을 돌에 새겨 세운 비로, 1707년 (숙종 33)에 세워졌다. 민발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1453년(단종 1)에 사복시대호군(司僕寺大護軍)으로 있으면서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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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치상(閔致庠)[1825~1888]의 치적을 기리는 비(碑). 민치상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양(景養), 호는 하당(荷堂), 본관은 여흥이다.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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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한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박갑동의 치적을 기리는 비. 박갑동 시혜비는 1940년에 세워진 비(碑)로서, 박갑동은 농민들에게 자신의 토지를 빌려주고 소작료를 적게 받거나 면제해 주는 등의 자선 사업을 한 인물이다. 총 높이는 127㎝로, 3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2㎝, 앞면 45㎝, 측면 18㎝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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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교육 공로자 박해일의 기념비. 박해일의 본관은 순천(順川)이며, 음성 수봉초등학교 부지를 일부 희사한 교육 공로자이다. 박해일 교육공로기념비는 1943년에 세워졌다. 총 높이는 185㎝이며 3단으로 구성되었다.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45㎝, 앞면 55㎝, 측면 25㎝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49㎝, 앞면 102㎝, 측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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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운사(白雲寺)의 내력을 적은 비. 백운사는 사적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전 작은 암자였으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백운사가 중건되면서 사적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는 잡목이 우거지고 서축 일부만 남아 있다. 1692년(숙종 18) 8월에 전 승지(承旨) 한구(韓搆)가 비문을 짓고, 면천군수(沔川郡守) 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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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변중기의 기념비. 변중기 기념비는 1930년대 읍내리 1구장을 역임한 변중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변중기는 읍내리 1구장 역임 이외의 행적은 미상이다. 비는 1936년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9㎝이며, 앞면의 폭 41㎝, 측면의 두께 15㎝이다. 비석 앞면에는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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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를 세웠다. 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충주로 가는 구 도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음성향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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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를 세웠다. 성규주 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하당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옆 하당1리 마을회관 근처 비닐하우스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1매석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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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성기환(成耆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비. 성기환의 자는 경문, 호는 경은. 본관은 창녕이다. 성기환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으나 근검절약하여 살림이 넉넉해지자 흉년에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였다. 충주시에서 청주시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2리에서 500m 못 미친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한다. 성기환 구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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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인하 처 안동권씨가 정절을 지킨 것을 기리는 비. 성인하 처 안동권씨 정렬비는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청주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 원남면 하당리에서 왼쪽 하당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하당초등학교가 나오고 이 학교의 교정 끝부분에 있다. 비석은 방형(方形)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대석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멘트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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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송규복을 기리는 비. 송규복 애민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충주 쪽으로 가는 옛 국도 변에 위치한 음성향교 앞에 있다. 향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장소이므로 선정비나 불망비 등이 많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지붕돌이나 이수(螭首) 없이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일반형 석비로 화강암 1매석이며 높이 115㎝의 비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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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있는 조선시대 송영학의 처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효열비는 유교를 덕목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많이 세워졌는데 충신·열사와 더불어 효자·효부를 기리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당사자와 관련된 장소에 세웠다. 박씨 부인은 원래 계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에 송영학에게 출가하였으나 26세 때에 남편을 잃고 빈한한 집의 과부로 많은 시집 식구들을 봉양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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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신도비. 신후재(申厚載)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호는 규정(葵亭) 또는 서암(恕庵)이고, 자는 덕부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부교리를 지냈고,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남인이 집권하자 도승지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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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읍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심의신을 기리는 비. 관찰사는 충청도를 다스리는 입법·사법·행정의 수장으로, 충주목에 거주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음성은 충주목 관할하의 현이기에 관찰사가 가끔 들르던 길목으로, 음성의 백성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수령을 기념하기 위해 송덕비나 불망비를 세우곤 하였다. 심의신 영세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충주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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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비 안중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 조선시대는 유교 국가로 충과 효를 강조하며 귀감이 되는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기리기 위한 흔적을 많이 남겼는데, 이것이 충신각, 열녀각, 효자비 등으로 남아 있다. 안중성은 조선 영조 때의 선비이며 효자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시향(時鄕), 호는 화산처사(花山處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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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과 그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표. 매장 시에는 봉분을 만들고 봉분 앞에 묘표석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고 장명등, 촛대석, 문인석 등의 석물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부 합장묘의 경우 묘표석을 하나 세워 그 안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좌우에 따로 묘표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양촌 권근의 묘소는 경기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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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3대 묘소 및 신도비(神道碑). 조선시대의 묘소는 풍수지리에 의해 길한 땅을 택하여 만들어졌는데 왕릉처럼 병풍석(屛風石)을 두를 수는 없었다. 묘 앞에는 석상(石床)을 놓고 양쪽에 망주석을 세웠다. 석상 앞쪽으로는 장명등(長明燈)을 놓고 좌우에 석인(石人)들을 세웠다. 종2품 이상 고관의 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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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재연·어재순의 신도비(神道碑). 신도비는 보통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의 묘소 입구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재연은 1871년(고종 8) 도총관을 제수받았으며, 순직 후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오르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동생 어재순은 현직에 있을 때 2품관에 이르지 못하였고, 순직 후에도 이조참의(吏曹參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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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오병선의 선정비. 오병선(吳秉善)은 1860년(철종 11)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 1870년(고종 7) 서산군수(瑞山郡守)로 자리를 옮겼다. 1873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부임했다. 선정비는 1866년(고종 3)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상단이 둥글게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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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효자 오창묵의 비. 오창묵(吳昶黙)은 병화가 있었으나 어머니를 잘 모셔 관에서 포상을 하였다. 이 사실을 돌에 새겨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1935년 국도 3호선 변에 효자비를 세웠다. 효자비는 유래를 새긴 오석 위에 거북 대좌를 앉히고 비석을 세웠다. 효자비 앞면에 ‘오공창묵효자비(吳公昶黙孝子碑)’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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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운곡서원 입구에 세워진 조선시대 하마비.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내용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져 경의를 표하도록 하였다. 음성군에는 운곡서원(雲谷書院) 외 음성향교(陰城鄕校), 지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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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교육 공로자 유중환의 기념비. 유중환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음성 수봉초등학교 부지 일부를 희사한 교육 공로자이다. 유중환 교육공로기념비는 1943년에 세워졌다. 총 높이는 180㎝이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34㎝, 폭 53㎝, 두께 24㎝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43㎝, 폭 98㎝, 두께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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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시대 하마비(下馬碑). 음성향교 하마비는 그 앞을 지날 때에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말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져 경의(敬意)를 표할 수 있게 한 비석이다. 음성군에는 음성향교(陰城鄕校),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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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의령남씨의 유지(遺地)를 표시하기 위한 비(碑). 세손비(世孫碑), 세파비(世派碑), 세장비(世葬碑)는 세족(世族)의 유지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것들로서 성격이 비슷하다. 의령남씨 세손비는 1888년(고종 25)에 세워졌다. 비의 총 높이는 273㎝이며 3단으로 구성된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90㎝, 앞면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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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 이국헌(李國憲)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이다. 부친은 이여연(李汝淵)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增廣試)에 생원 3등 45위로 입격하였다. 1676년(숙종 2) 호조정랑(戶曹正郞), 문의현령(文義縣令), 부사과(副司果), 이듬해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역임했다. 1683년(숙종 9)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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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세근의 선정비. 이세근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진(聖珍)으로 이지걸(李志傑)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문과정시 을과 2위로 합격하였다. 1699년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과거 파방(罷榜)에 대한 상소로 말미암아 음성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707년(숙종 33) 정언, 교리, 수찬 등 청요직(淸要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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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숭운의 선정비. 이숭운의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사진(士鎭), 호는 존암(存庵)으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성균관사성 이수덕(李壽德)이다. 1759년(영조 35) 식년시 진사 3등 30위로 입격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만녕전참봉(萬寧殿參奉)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현릉참봉, 1781년(정조 5)에 음성현감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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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의 음성현감 이연긍의 선정비. 이연긍은 1858년(철종 9) 현륭원참봉(顯隆園參奉)을 거쳐 1865년(고종 2) 음성현감에 부임했다. 1866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867년 4월 공충도암행어사(公忠道暗行御史) 홍철주(洪澈周)가 올린 글에 음성현감 재직 때 백성들의 송사를 공평하게 처리하고 이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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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이원긍의 선정비. 이원긍 선정비는 이원긍 청백애민선정비(李源兢 淸白愛民善政碑)라고도 하며, 1927년에 세워졌다. 이원긍은 1874년(고종 11)에 음성현감이었는데,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리(公履), 호는 취당(取堂)으로 괴산 출신이다. 이두진(李斗鎭)의 아들이며, 조선 말기 3대 국학자의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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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 이유일의 묘비. 이유일은 이란의 아들이며, 자는 백순(佰淳)이다. 죽은 뒤에 품계가 높아져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된 인물이다. 이유일에 대한 상세한 기록한 남아 있지 않다. 비신과 방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가 172㎝이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40㎝, 앞면 폭 52㎝, 측면 폭 37㎝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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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인실의 묘비. 이인실은 자가 효사(孝思), 호는 갈파(葛坡)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1633년(인조 11)에 성균관에 들어갔다. 사옹원봉사, 종묘서직장을 거쳐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귀후서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가 되었다. 비신, 가첨석, 방부 등 3단으로 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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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 이자침의 묘비. 이자침은 자가 정실(庭實)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을묘사마시(乙卯司馬試)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비신과 방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방부는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140㎝, 앞면 폭 56㎝, 측면 폭 17㎝이며, 방부는 가로 92㎝, 세로 60㎝이다. 비신 앞면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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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종청의 선정비. 이종청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일(仲一)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승정원우승지(承政院右承旨) 이위달(李渭達)이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進士) 3등 27위로 입격하였다. 1844년(헌종 10)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으로, 이듬해 음성현감에 부임하였다. 선정비는 1849년(헌종 1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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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지걸의 묘비. 이지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천(秀天), 호는 금호(琴湖)이다.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이연(李堜)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에 생원 3등 49위로 입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고 그 후 경상도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부임했다가 남형(濫刑)의 죄로 곤양(昆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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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이철응의 선정비. 이철응은 조선 고종 때 음성현감을 지냈다. 그 외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선정비는 1885년(고종 22)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1단 비석으로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4㎝이며, 앞면의 폭은 42㎝, 측면의 두께는 16㎝이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이후철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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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음성군수 이해용의 기념비. 이해용 기념비는 1929년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전체 높이는 182㎝이며 비신(碑身)은 높이가 129㎝, 앞면의 폭 50㎝, 측면의 두께가 22㎝이다.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3㎝이며 앞면의 폭은 79㎝, 측면의 두께가 58㎝이다. 비석 앞면에는 ‘군수이후해용청덕기념비(郡守李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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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장용묵의 불망비. 장용묵은 충신 장충범의 후손이며, 장석영(張錫永)의 아들이다. 자는 성언(聖言)이며 호는 금범(錦帆),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삼일을 더 살게 하였다. 흉년이 들어 인근에 기황(饑荒)이 들자 곡식을 풀어 구휼하였다. 장용묵 보폐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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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신도비. 장충범은 자는 효칙(孝則),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생원 장언구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교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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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2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정국량의 묘비. 정국량은 본관이 초계(草溪)이며, 자는 공거(公擧)이다.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侍墓)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갔으나 정국량은 초막(草幕)을 떠나지 않았다. 이를 본 왜적이 정국량의 효성에 감동하여 물침기(勿侵旗)를 주었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 때에도 효(孝)를 다할 수 있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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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규영의 효자비. 정규영의 호는 일옥(一玉)으로, 죽계(竹溪) 정창(鄭昌)의 후손이며 감역(監役) 정효선(鄭孝善)의 아들이다. 자는 명여(命汝)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일찍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난 뒤에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를 봉양하였다. 모친의 사후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부친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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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석오의 묘비. 정석오는 자는 수호(收好)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문학, 부수찬, 교리 등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을 논척(論斥)하여 유배케 했으나, 1725년(영조 1) 소론의 실각으로 파직되었다. 1721년(영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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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양순의 묘비. 정양순은 좌의정 정석오(鄭錫五)의 아들이다.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1750년(영조 26)에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세자우익위(世子右翊衛), 군위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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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정억성의 효자비. 정억성은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는 하지 못하였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음성군 명륜회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 밖의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총 높이가 205㎝이며 3단으로 구성되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42㎝, 앞면 52㎝, 측면 24㎝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5㎝, 앞면 98㎝,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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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인상의 효자비. 정인상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호는 위은(渭隱)이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극진하였다. 정인상은 새로운 음식이 생기면 먼저 어른에게 드렸고 아침, 저녁에는 반드시 문안을 올리는 등의 효행을 하였다. 8대에 걸친 조상의 묘소를 치산하고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하여 일옥도장을 세우고 후세를 교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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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유학자 정조헌(鄭祖憲)을 기리는 비. 음성향교 전교(典校)였던 정조헌(鄭祖憲)의 본관은 초계이며, 자는 성륜(聖倫)이고, 호는 구봉(九峯)이다. 시조 광유후(光儒候)의 31세손이고 효자 위은 정인상(鄭寅尙)의 아들로, 어머니는 효부 현풍곽씨이다. 정조헌은 평생 윤리와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유도(儒道) 진흥에 심신을 바쳤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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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정현석의 선정비. 정현석은 철종 대의 음성현감이었으며,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문으로 보아 음성현감 재직 때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정비는 1860년(철종 11)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9㎝이며 비신과 개석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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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조동환의 비. 조동환의 자는 문옥(文玉), 호는 정암(靜岩)이며,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음성읍 평곡리에서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趙大妃)와 혈연 관계가 있어, 1910년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기용되었고 강원도 춘천재무소 주사가 되었다. 1928년부터 2년간 음성면장을 지냈고,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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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묘비. 조형(趙珩)은 승지 조희보(趙希輔)의 아들로,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부교리, 응교, 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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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신도비. 조형은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643년(인조 21)에 부교리를 역임했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통신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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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하진민의 충효를 기리는 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많은 일본 군사가 충주에 침입하여 음성군 생극 지역까지 왔을 때 김선경(金善慶) 부인 성주이씨(星州李氏)가 딸을 데리고 생극 지역 수리산으로 피난을 왔다. 이때 하진민은 곤경에 빠진 이씨 부인을 구출하였다. 조정에서는 하진민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 음직으로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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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그 앞에서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 경의(敬意)를 표하게 하였다. 음성군에는 지천서원(知川書院), 음성향교(陰城鄕校), 운곡서원(雲谷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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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채신보의 묘갈. 채신보는 자가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이며, 본관은 인천으로, 사예 채륜(蔡倫)의 아들이다. 1438년(세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음성현감을 지냈다. 이후 경산현감(慶山縣監), 평해군수(平海郡守), 남양도호부사(南陽都護府使)를 거쳤다. 1484년(성종 15)에 원남면 삼용리 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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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채신보의 신도비. 채신보는 자가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이며, 본관은 인천으로, 사예(司藝) 채륜(蔡倫)의 아들이다. 1438년(세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음성현감 및 경산현감, 평해군수, 남양도호부사를 지냈다. 1484년(성종 15)에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소산정사(梳山精舍)를 짓고 여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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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초징명의 선정비. 선정비는 1868년(고종 5)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7㎝이며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91㎝, 앞면 45㎝, 측면 18㎝이고, 개석(蓋石)은 높이 91㎝, 앞면 45㎝, 측면 18㎝이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초후징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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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효자 최세면을 기리는 비. 최세면은 최기선의 아들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양친이 세상을 떠나자 시묘살이를 하였고, 부모 생존시 제대로 봉양하지 못했다며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먹지도 입지도 않았다. 효행비는 총 높이가 247㎝이고,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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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최홍걸의 시혜비. 최홍걸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본관은 전주이고, 호는 소파(小婆)이다. 시문(詩文)이 청아하고 의사(意思)가 초연하였다고 전한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112㎝, 앞면의 폭은 35㎝, 측면의 두께는 12㎝이다. 비석 앞면에는 ‘소파거사최홍걸시혜불망비(少坡居士崔弘杰施惠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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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명진의 불망비. 개석 및 방부 없이 비신만 존재한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39㎝, 앞면 54㎝, 측면 22㎝이다. 비신 앞면에는 해서로 ‘수의김공명진영세불망비(繡衣金公明鎭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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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덕정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이며 애국지사인 하석환을 기리는 비. 하석환(河碩煥)은 하재철(河載鐵)의 아들로, 자는 광국(光國)이며 호는 일재(一齋)이고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부모를 잘 봉양하였으며 1905년(고종 42)에 부친이 죽자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모친이 죽었을 때는 6년간 시묘를 살았다. 이때 큰 호랑이가 와서 지켜준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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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한이원의 묘비. 한이원은 한치상(韓致相)의 아들로 자는 숙기(叔起),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후 감찰이 되었다. 1692년(숙종 18)에는 결성현감을 지낸 후 전적을 역임하였다. 1715년(숙종 41) 『가례원류(家禮源流)』 사건으로 소론인 교리 송성명(宋成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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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현풍곽씨의 효열 행적을 기리는 비. 1969년 성균관 유림에서 추천하여 정인상의 아들인 정조헌이 1978년 건립한 비각인 상모각(常慕閣) 안에 시아버지인 효자 정일옥의 효자비, 정규영 효자비, 남편인 정인상 효자비와 함께 놓여 있다. 비 앞면에는 ‘효부유인현풍곽씨기적비(孝婦孺人玄風郭氏紀蹟碑)’라고 쓰여 있다. 현풍곽씨의 효열 사실은 『한국효열록...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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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징물. 정문은 일명 홍문(紅門) 또는 작계(綽契)라고도 한다. 액(額)에다 충(忠)·효(孝)·열(烈) 등의 글자를 새겨 표창의 종류를 표시하고 그 이름과 직함을 새겼다. 정려의 사례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효녀 지은(知恩)에 대한 포상 기록이 처음이다. 고려시대에 와서 역대 왕들이 효자와 열녀 등이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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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효자 고용진의 정려문.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전후좌우의 네 개 면은 홍살로 막고 지붕 양면은 풍벽을 달았다. 초석은 팔각고주형(八角高柱形)으로 그 위에 둥근 나무 기둥을 세웠다. 효자문 안에는 ‘설성거사하산고용진효자려포정효자문병오삼월일보건사회부장관오원선서(雪城居士霞山高庸鎭孝子閭褒旌孝子門丙午三月日保健社會部長官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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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3리에 있는 곡산연문의 열녀 순흥안씨의 정려각. 순흥안씨는 연진행(延震行)의 부인으로 1636년 병자호란 때 정절을 지켜 1796년(정조 20) 정려가 내려졌다. 1796년(정조 20) 정려가 내려졌을 때는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명암동에 열녀각이 세워졌으나, 1984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열녀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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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권국화의 정려문. 권국화에 대한 기록으로는 『순조실록(純祖實錄)』에 1831년(순조 31) “유생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증직되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무신년(1728) 당시 집에 역도가 난입하자 가로막으며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어머니에게는 해를 끼치게 할 수 없다’라고 소리치니 물러났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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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신 권길의 정려문. 권길(權吉)[1550~159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응선(應善)이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590년(선조 23) 경상도 군위현감, 1592년 상주판관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 이일(李鎰)과 함께 상주성에서 왜적을 상대하여 싸웠다. 왜적과 전투를 벌일 때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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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순의 정려문. 김순(金石+舜)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마을 뒷산에 모시고 추운 겨울에도 시묘를 하였다. 시묘를 하는 중에 손가락에 동상을 입어 7개가 떨어져 나가 마을 사람들이 ‘칠지효(七指孝)’라 불렀다. 밤에는 호랑이가 와서 같이 지냈고, 낮에는 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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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군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종립의 정려각. 김종립(金宗立)은 진천 사람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군사를 일으키자 진천현의 초관으로 적과 싸우다 험천에서 전사하였다. 그때 진천현감 이충운(李翀雲)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처음 뜻은 그대와 내가 같았으나, 손에 붓대를 잡고 허리에 활을 차는 데서는 재주가 달랐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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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창식의 효자문. 김창식은 어린 나이에 모친이 병이 나자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5년 후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0살 때 모친이 죽자 매일 닭이 우는 시간에 5리나 떨어져 있는 묘소로 가 참배하였다. 무릎과 손으로 짚었던 자리는 떼가 죽었을 정도라고 한다. 성묘길 옆의 벗나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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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남연년의 정려각. 1728년 무신난(戊申亂, 이인좌의 난) 때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인 남연년(南延年)[1653~1728]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남연년의 본관은 의령, 자는 수백(壽伯)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1727년(영조 3)에 청주영장이 되어 토포사를 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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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단양장씨 일문의 효행과 정절을 기리는 정려각.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 삼생이마을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단양장씨 일문의 정려각으로 장석영(張錫永)의 효행과 장택한(張宅漢)의 처 장수황씨(長水黃氏) 및 장동엽(張東曄)의 처 청주이씨(淸州李氏)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장수황씨는 1856년(철종 7) 만동묘(萬東廟)에서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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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정려각. 민동량은 본관은 여흥, 자는 군삼, 호는 송암이다. 1806년(순조 6)에 정려와 복호(復戶)가 내려졌다. 7, 8세 때부터 부모가 병이 나면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으며 좋은 약이라면 가리지 않고 구하여 썼다. 부모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피를 내어 먹이려고 왼손 네 손가락을 잘랐으며, 대변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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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해준의 효자각. 민해준이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다. 이때 비를 피하기 위하여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무너지려 하자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내곤 자신은 바위에 깔려 죽음을 당하였다. 이 같은 민해준의 효행을 기려 훗날 유림과 동리에서 효자각을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효자민해준지려(孝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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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민휘계와 민정현의 정려문. 민휘계·민정현 효자각은 민씨 가문의 두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문이다. 민휘계는 가난하였으나 글을 좋아하고 주경야독을 했다. 학행(學行)이 좋고 부모에 효심이 지극했다. 1808년(순조 8)에 감영(監營)에서 상계(上啓)하자 왕이 특명을 내려 민휘계의 행적을 간행토록 하였다. 이 책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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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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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정규와 박호원의 정려문. 박호원과 박정규는 충민공 박순(朴淳)의 후예이며, 박정규는 박호원의 손자이다. 박호원의 효자문은 1725년(영조 1)에 하사되었으며, 박정규의 효자문은 1743년(영조 19)에 하사되었다. 1689년(숙종 15)에는 충민공의 부조묘인 박순 사당, 박순 충신문, 박순의 처 장흥임씨의 열녀문을 이곳에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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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정규영·정인상 부자와 현풍곽씨의 효열비를 보관한 비각. 1969년 성균관 유림에서 추천하여 1970년과 1978년에 세워졌다. 비각은 전면 1칸 반,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전후좌우 네 개 면을 홍살로 막았다. 둘레에는 적색 벽돌담을 쌓고 앞면에 철제 대문이 세워져 있다. 비각의 앞 처마에는 한자로 ‘상모각(常慕閣)’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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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가는 국도 33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서 오른쪽 양재 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300m쯤 가면 왼편으로 열녀각이 보인다. 성주이씨는 인문관 이휘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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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송광도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만인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를 행하는 데 귀감이 되는 이를 뽑아 기리기 위해 동리마다 충신이나 효자·효부, 열녀를 기리는 비나 비각을 많이 건립하였다. 특히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은 다른 문화재보다 유교기념물이 많은 것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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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이경립의 처 순흥안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각. 충청북도 음성읍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쪽으로 약 1㎞쯤 떨어진 충청북도 음성읍 평곡리 약물재마을 북쪽에 수정산이 있는데, 이 수정산 입구에 열녀각이 있다. 순흥안씨는 성균진사 이경립의 처이다. 이경립이 천연두에 걸려 병석에 눕게 되자 정성껏 수발을 다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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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효(孝)와 충(忠)과 열(烈)을 중히 여겨 정려를 특히 많이 세웠다. 신유의 효자각도 근방의 사람들을 교화하는 차원에서 신유가 살던 마을에 세운 것이다. 신유의 효자각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충북선 소이역의 앞쪽이며 한라중공업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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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문(旌門). 윤기손·윤기진 형제 효자문은 윤기손(尹起巽)·윤기진(尹起震)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효자문으로, 형제의 효자문과 윤득성 처 청풍김씨(淸風金氏)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청풍김씨 열녀문이 같이 있다. 칠원윤문 효열각(漆原尹門 孝烈閣) 또는 칠원윤씨 효열각(漆原尹氏 孝烈閣)이고도 한다. 윤기손·윤기진 형제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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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박씨 문중의 충효열각. 음성박문 충효열각은 조선 전기의 충신으로 유명한 박순(朴淳)[?~1402]의 충절과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1402]의 열행, 박호원(朴浩遠)[1559~1627]과 박정규(朴廷珪)[1677~1724]의 효행 등 조선시대 음성박씨(陰城朴氏) 4인의 충효열을 한자리에서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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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광하의 효자각. 본관이 우봉(牛峰)인 이광하(李光夏)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해, 한겨울에 아버지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구하여고 애를 쓰는데,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한 자가 넘는 잉어를 주고 갔다. 또 어느 해인가는, 어머니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여 꿩을 잡으려고 깊은 산중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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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구령의 충신문. 본관이 성주(星州)인 이구령(李龜齡)은 임진왜란 때 홍천현감으로 조헌(趙憲)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사실이 나중에 조정에 알려져 1905년에 명정되었는데, 충신각은 1980년에 세워졌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 안쪽의 편액에는 ‘충신효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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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이식후·이진도 부자의 효자각. 이식후는 서당 훈장으로 노부모의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면 하늘에 대신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변을 손으로 받아 병의 증세를 살폈으며,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이진도는 평소 아버지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으며 효성이 남달랐다.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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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장석영의 효자문. 본관이 단양(丹陽)인 장석영(張錫永)은 충신 장충범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면서 간호를 하고,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 안으로 흘려 넣어 낫게 하였다. 이윽고 부모가 죽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데, 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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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충범의 충신문. 본관이 단양(丹陽)인 장충범(張忠範)[?~1597]은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에 와서 피신하며 치료하였다. 1597년(선조 30)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의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녹권을 하사받고, 1857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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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국량의 효자각. 본관이 초계(草溪)인 정국량에게는 정국주, 정국추, 정국노, 정국빈 등의 형제가 있었다. 모두 효성이 뛰어나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오효자라고 불렸으나 그중 정국량의 효성이 단연 돋보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정국량의 부친이 오랜 질병 끝에 돌아가셨는데, 마침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황에서 왜병이 마을로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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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정운영의 효자각. 본관이 초계인 정운영은 일찍부터 공부를 많이 하여 학문이 깊었으나 과거를 보아 출사를 하게 되면 부모님을 봉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오직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하여 과거를 보지 않았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낫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잉어가 특효약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겨울이라 잉어를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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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조용하와 열녀 평택임씨의 효열각. 본관이 순창인 조용하와 처 평택임씨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의식이 불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의식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후 언젠가는 조용하가 병이 들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자 부인 임씨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이와 같은 효행과 효열이 세상에 알려지자 고종 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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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중기 조유안의 효자문. 조유안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셔 근동에서는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느 해 아버지가 병이 나자 향을 피우고 하늘에 아버지 대신 죽기를 빌면서, 아버지의 변을 손에 받아 맛을 보면서 병을 간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서 소생시켰다. 그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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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세워졌던 진주정씨의 열녀 정문. 진주정씨는 삼성면 용성리 출신인 권종원의 처로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여 근동의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일부종사할 목적으로 자결하였다. 이를 조정에서 알고 조선 말기인 고종 연간에 용성리에 열녀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으나, 현재는 현판만 후손의 집에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을 수...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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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지어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누각이나 정자. 누정은 전통시대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정(亭)·각(閣)·당(堂)·정사(精舍)·대(臺)·원(院)·헌(軒)·재(齋)·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데, 누·대·정 등은 유관(遊觀)의 공간에, 객사·각·원 등은 공공건물에, 헌·당·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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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설성공원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누정. 경호정은 1934년 당시의 군수 권종원이 창건하여 연풍정이라 하였으나 이후 군수 민찬식이 경호정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액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호정 건물은 정방형 팔작지붕 목조기와집 양식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을 모두 개방시켜 시야를 트이게 함으로써 정자로서의 기능을 살렸다. 정자 내부는 통칸의 대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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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식의 정자. 음성군 소재지에서 청주 쪽으로 가는 국도 36호선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우측편에 위치한다. 마을에서 보면 오른쪽 앞쪽의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언덕 위에 동서향으로 서 있다. 충효정(忠孝亭)의 원래 이름은 피금정(披襟亭)으로, 약 3백 년 전에 세워진 정자이다. 피금정이란 더운 여름날 온몸에 땀이 흘러 정...
기타 유적
기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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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남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연원역 소속의 감원역(坎原驛)이 있었던 자리. 조선시대에는 주요 도로에 대개 12㎞ 떨어진 거리마다 역을 두었는데, 역에는 마필(馬匹)과 역정(役丁)을 갖추어 공문을 전달하였으며, 공무 여행자에게 마필을 제공하거나 관물(官物)의 수송까지 담당하였다. 음성 지역에는 충주 연원찰방도에 속한 14개 역 중 용안역(用安驛)과 감원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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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원(院)의 터. 원은 출장을 다니는 관리들이 숙박하던 곳으로, 국가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다. 원에는 원주(院主)가 배치되었고, 원위전(院位田)을 제공하여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였다. 오갑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으며, 국도 38호선이 지나가는 원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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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읍성읍 평곡리 용담연못에 있는 바위에 새겨 넣은 글자. 용담연못 각자는 용담연못에서 산 쪽에 있는 바위에 표면을 다듬어 전서체(篆書體)로 써넣은 글자이다. 누가 새겨 넣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위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전서체 글자가 횡으로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각 글자의 크기는 각각 가로 84㎝, 세로 8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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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바위에 새겨넣은 글자. 음애(陰崖)는 바위에 글자를 새겨놓았다고 전해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자(李耔)의 호이다. 음애(陰崖)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음애동 각자는 이자가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위치한 음애동(陰崖洞)에 거주하면서 새겨놓았다고 전한다. 글자는 ‘음애동(陰崖洞)’이라는 글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