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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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氅衣 |
영어공식명칭 | Sochang-ui, Man'coat |
이칭/별칭 | 창옷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8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희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24년 - 정재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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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95년 - 정재후 사망 |
출토|발견 시기/일시 | 1989년 - 정재후 묘 소창의 출토 |
소장처 | 경기도박물관 -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상갈동 496] |
출토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동래정씨 선영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83 |
성격 | 의복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래 정씨 선영의 정재후 묘에서 출토된 조선 시대 남성의 일상용 포.
[개설]
정재후 묘 출토 소창의는 관의 내부를 채우는 보공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포(袍) 전체에 얇게 솜을 넣어 누볐다. 중치막이나 도포 등의 일반적인 포류에 비해 크기가 작고 짧은 것이 특징이다.
[연원]
1989년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관악산 동래 정씨 선영(先塋)에서 흥곡공파 정재후(鄭載厚)[1624~1695]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형태]
정재후 묘 출토 소창의의 길이는 111㎝이며 화장은 94.5㎝로 함께 출토된 중치막에 비해 길이와 폭이 좁은 편이다. 소매는 진동에서부터 소매부리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직배래에 소매통이 좁은 착수(窄袖)이다. 소매부리 안쪽에는 오염을 막기 위해 5㎝ 폭의 주를 덧대었다. 깃 형태는 칼깃이며 전체를 누볐다. 깃나비는 11㎝에 동정은 없다. 겉깃 쪽 고름의 길이는 97.5㎝, 안섶 쪽 고름은 72.5㎝이다. 두 고름의 편차가 큰 것으로 보아 긴 쪽을 돌띠처럼 가슴을 둘러매어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도]
소창의는 조선 시대 남성이 일상복으로 입은 포이다. 저고리 위에 입거나 저고리 대신 활용하기도 했다. 함께 출토된 중치막 등 동시대의 포류에 비해 품과 길이가 작은 편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소창의를 겉옷으로 입었고 사대부들은 주로 포 안에 입는 받침옷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