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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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記錄遺産 |
영어의미역 | Record Inheritanc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개설]
창원 지역 사람이 남긴 기록 유산으로는 개인 문집이나 실기류, 그리고 금석문 등이 있다. 문집이나 실기류는 대부분 개인이나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로 그 가운데는 일부 책판이 전해 오는 것들도 있다. 그 외 금석문으로는 선정비(善政碑), 충효비(忠孝碑), 기타 각석(刻石) 등이 해당된다. 한편, 경남 대학교 박물관은 최근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의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로부터 조선 관계 자료 일부를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
[문집류]
2013년 현재 창원시 일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는 수백 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창원 사람이 짓고 편집한 문집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뽑아 살펴보기로 한다.
『곡천 선생 문집(谷川先生文集)』은 조선 후기 김상정(金尙鼎)[1668~1728]의 시문을 엮은 것이다. 김상정은 자가 덕삼(德三) 호가 곡천(谷川)이다. 1922년 함안에서 간행되었다. 6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시(詩) 42수와 서(書) 38편 등이 실려 있다. 서문은 이광정(李光庭), 발문은 권세연(權世淵)과 김만현(金萬鉉)이 썼다.
『만휴집(晩休集)』은 조선 말기 김만현(金萬鉉)[1820~1902]의 시문을 엮은 것이다. 김만현은 본관이 김해이고, 자는 내문(乃聞), 호는 만휴당(晩休堂)이다. 1935년 재종손 김병린 등이 간행하였는데 전체 5권 2책이다. 84편의 시와 29편의 서 등이 실렸는데, 시에는 당시 창원 지역의 재실과 사찰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서문은 권상규(權相圭), 발문은 조정래(趙正來)와 김광하(金光河)가 썼다.
『삼열당 문집(三烈堂文集)』은 회산 감씨 감경인(甘景仁)[1569~1648]의 시문집이다. 감경인은 호가 관술정(觀術亭)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 종군하여 무공으로 여도 만호(呂島萬戶)에 올랐고, 죽은 뒤에는 삼열(三烈)이라는 호를 받았다. 1911년 후손들이 감경인의 글을 엮어 이종기(李鍾杞)의 감수를 받아 1권으로 간행하였다.
『동미 문집(東湄文集)』은 회산 감씨 감기현(甘麒鉉)[1880~1966]의 유고 문집이다. 감기현은 초계 군수와 김해 부사를 역임하였는데,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점되자 향리에 돌아와 지인들과 교류하고 독서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부친 감재원(甘在元)의 회갑연에 모인 지인들의 시를 모아 엮은 『수첩시(壽帖詩)』가 전하고 있다. 전체 5권 2책으로 1966년 후손들이 엮어 펴낸 것이다.
『우곡 선생 문집(愚谷先生文集)』은 박신윤(朴身潤)[1661~1698]의 시문집이다. 박신윤은 자가 덕경(德卿), 호가 우곡(愚谷)이다. 4권 2책으로 1891년 간행되었는데, 현재 책판이 운암 서원에 보관하고 있다.
『하려 선생 문집(下廬先生文集)』은 황덕길(黃德吉)[1750~1827]의 문집으로 1918년 간행되었다. 황덕길은 안정복(安鼎福)의 문인으로 자가 이길(耳吉), 호가 하려(下廬)이다. 전체 19권 10책으로 내용은 시(詩)·소(疏)·강의(講義) 등을 담고 있다.
『소산 문집(小山文集)』은 김기호(金琦浩)[1822~1902]의 시문집이다. 김기호는 자가 문범(文範), 호가 소산(小山)이다. 1915년 손자 김용복(金溶馥)이 간행하였는데, 4권 2책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 창원 지역 지식인들의 교유를 보여 주고 있다.
『눌재집(訥齋集)』은 김병린(金柄麟)[1861~1940]의 문집이다. 김병린은 자가 겸응(謙膺), 호가 눌재(訥齋)이다. 17권 9책이며, 1960년 제자들이 유고를 모아 엮은 것이다. 내용은 시가 주종을 이루나 창원 지역의 문사들과 교유한 내용과 재실·누정에 대한 기문들을 실어 이 방면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죽초 일고(竹樵逸稿)』는 배치규(裵致奎)[1826~1891]의 문집으로 1931년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배치규는 자가 여용(汝容), 호가 죽초(竹樵)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 창원시 진해구 지역에서 학문과 제자의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1865년(고종 2) 각 군에서 문행(文行)과 덕망 있는 자를 천거하여 수임(首任)으로 삼게 할 때 거듭 천거되었으며, 아들 배병원(裵炳元)[1866~1930]은 『만산 유고(晩山遺稿)』를 남겼다.
『야은 유고(野隱遺稿)』는 조선 말 일제 강점기 진해구 지역에서 활동한 신태우(申泰佑)[1851~1926]의 문집이다. 신태우는 자가 경선(敬善), 호가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책에는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후학들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자의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책판류]
창원 지역에는 현재 2종의 문집 책판이 조사·보고되었다. 이들 책판은 박신윤의 『우곡 선생 문집』과 김상정의 『곡천 선생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각각 밀양 박씨 사화 문중과 김해 김씨 곡목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우곡 선생 문집』 책판은 총 60장으로 현재 운암 서원에 보관되어 있다. 문집은 1891년 5세손 되는 박기환(朴琪煥)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는데, 책머리에는 이만인(李晩寅)과 이의익(李義翼)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박기환의 발문이 붙었다. 내용은 주로 시·잠(箴)·찬(贊)·논(論)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독서설(讀書說)」은 독서의 요체를 밝힌 글로, 독서란 이치를 헤아리고 자신의 기질을 변화·발전시키는 것이므로 거처를 맑고 고요하게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옛 성인을 본받아 실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곡천 선생 문집』의 책판은 총 66장으로, 현재 저자의 위패가 봉안된 동읍 화양리 곡목 마을 화산사(花山祠)에 있다. 권1에는 시, 권2에는 서, 권3과 권4에는 잡저·서·기·애·사·축문 등이 실려 있다. 권5에는 제문·묘표·가장 등이, 그리고 권6에는 부록으로 행장 등을 담았다. 잡저에는 「창의 통문(倡義通文)」, 「북행록(北行錄)」, 「사문기선록(師門記善錄)」 등이 있다.
[금석문]
창원 지역의 금석문으로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으로는 봉림사(鳳林寺)에 주석하다 입적한 심희(審希)의 봉림사 진경 대사 보월 능공 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가 있다. 하지만 1919년 이 탑비는 조선 총독부에 의해 옮겨져 현재는 국립 중앙 박물관이 소장·관리하고 있다. 이후의 금석문들은 주로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대개 선정비(善政碑), 충효비(忠孝碑), 기타 비와 각석(刻石)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선정비는 대부분이 부민(府民)을 사랑하고 조세를 삭감하여 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창원 용지 공원에 모아져 있는 비석들이 해당된다. 총 26건인데, 불망비(不忘碑)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그 외 약간의 신도비와 송덕비가 있다. 대부분 조선 시대 창원 대도호부(昌原大都護府)의 부사(府使)와 관찰사(觀察使) 등이 재임 동안에 베푼 선정(善政)과 애민 정신을 잊지 않고 후대에 알리고자 세운 것이다.
충효비는 나라에 몸을 바치거나 효성이 지극한 인물을 기려 세운 것인데, 효자의 예로는 동읍 용강리 용암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나주 임씨 삼대 효자비(羅州林氏三代孝子碑)를 꼽을 수 있다. 이 비는 1738년 처음 세워졌는데, 주인공인 임성립(林星立), 임빈(林彬), 임윤국(林潤國)은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3대가 보인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이다. 이들 임씨의 효행은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와 『창원 군지(昌原郡誌)』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기타]
기타 금석문으로 신라 말 문창후(文昌候) 최치원의 자취와 함께 마산합포구 월영대(月影臺)와 진해구의 청룡대(靑龍臺) 각석이 있다. 또한 의창구 북면 외감리에는 미수 허목(許穆)을 기리는 모임인 달천계(達川契)가 활동하고 있는데 여기서 세운 미수 허선생 유지비(眉叟許先生遺址碑)의 비문 등도 있다.
그 외에도 각종 기문(記文)과 실기(實記), 공신녹권(功臣錄券)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동읍 석산리의 상산 김씨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김명윤(金命胤)의 「선무 원종공신 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을 들 수 있다. 김명윤은 선조 때 충주 목사로 재임 중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충주성이 포위당하자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하였고, 적장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이후 진주 목사·홍주 목사·제주 목사를 역임하고, 1605년(선조 38) 선무 원종 일등 공신에 책록되어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제수 받았다.
한편,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돌려받은 경남 대학교 박물관의 데라우치 문고는 조선 제3대 통감과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조선에서 재임하는 동안 수집하였던 조선 관계 자료 1,000여 종 1,500여 점이다. 이 가운데 궁중 관계 자료, 간첩(簡帖), 서첩(書帖), 시첩(詩帖), 화첩(畵帖)과 탁본첩(拓本帖) 등 98종의 유물은 ‘경남 대학교 데라우치 기증 고서화 일괄’로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