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108
한자 李兌遠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이태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3년 4월 - 이태원 대구 상업 학교 항일 학생 결사 태극단 가입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3년 5월 - 이태원 태극단 활동으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43년 10월 - 이태원 대구 형무소에서 기소 유예로 출옥
추모 시기/일시 1963년 - 이태원 대통령 표창 수여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이태원 건국 훈장 애족장 수여
몰년 시기/일시 2012년 현재연표보기 - 이태원 생존
학교|수학지 대구상업학교 - 대구
활동지 의성군 단촌면
성격 인물
성별
대표 경력 독립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 운동가.

[활동 사항]

이태원(李兌遠)[1928~현재]은 1927년 의성군 단촌면에서 출신으로, 2012년 6월 현재 생존하고 있다. 대구 상업 학교 재학 중 1943년 4월에 동교생 이상호(李相虎)·김상길(金相吉)·서상교(徐尙敎) 등이 앞서 조직했던 항일 학생 결사 태극단(太極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5월에 결성된 태극단은 조국 독립을 위한 비밀 결사로서 전국적 조직을 통한 무력 항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따라서 단원들은 우선 조직 확대를 위해 동지 포섭 활동에 힘을 쏟았다. 1943년 5월에는 그동안 가입한 단원 전원이 대구 앞산 비파산(琵琶山) 약수터에 모여 결단식을 갖고, 구체적 투쟁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태극단의 조직은 크게 일반 조직과 특수 조직으로 나누었으며, 최고 의결 기관으로서 간부 회의를 구성하였다. 일반 조직은 다시 육성부(育成府) 아래 관방국(官房局)·체육국(體育局)·과학국(科學局) 등 3국을 두고 아래에 10여 부(部)를 두어 조직을 체계화하였으며, 특수 조직은 건아대(健兒隊)라 칭하여 중학교 1·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을 대원으로 가입시켜 장차 단원으로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비서관[과학국장]을 맡았다.

태극단의 강령은 조선 민족의 이상적인 단결과 능률로써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나아가 세계 인류의 영원한 평화·자유·평등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태극단의 투쟁 방략은 조직 확대를 통하여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여론을 환기시키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것인데, 만약 국내에서의 투쟁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그곳에서 항쟁을 계속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태극단의 단원들은 용두산(龍頭山)·비파산 등 비밀 장소를 이용하여 학술 연구 토론회, 각종 체육회를 개최하여 동지 간의 유대 의식과 민족적 교양의 함양 및 체력 증강에 힘을 쏟았다. 또한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여 군사 관계 서적의 번역,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43년 5월 배반자의 밀고로 태극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경에 발각되었다.

이태원은 학교에서 수업 도중 다른 단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피체되었다. 이태원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10월 대구 형무소에서 기소 유예로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고,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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